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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판은 켄타 키요노부 六단과의 대국이었다. 미리 이야기를 하면 이 대국은 대회 전체에서 내 모든 능력을 쏟아부은 대국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출전한 세 대회에서 모두 마지막 판에 아쉬움이 남았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대국 당시에는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고, 체력 부족과 패배에서 받은 충격에 반쯤 머리가 멍해있던 상태였다.

내가 흑을 잡고 Rose-Tamenori/Rose-Birdie로 이어졌다. 17수까지는 상호 최선 진행으로 이어졌고 18수 백 E2는 왕중왕전 때 동권 님께서 두신 수였다. 이 진행에서 실수를 한 적이 있었기에 최선 수순을 조금 더 봐 뒀다. 그래서 23수까지는 확실히 알던 최선 진행으로 갔다. 24수 백 A6 이후에는 최선 진행을 기억하지 못하였으나 25수 흑 A5는 최선수였고, 상대가 익숙한 길이여서 그런지 바로 최선수인 26수 백 A4로 응수하였다. 이 때 상대 B6가 여유수로 남아있는 상황이 껄끄러웠고 내 여유수인 C2를 아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C2를 두면 내가 상변에 둘 수 없기에 추후 공격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생각한 곳은 27수 흑 C7으로 이후 28수 백 B6로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실전의 진행도 동일하였는데 -6짜리 차선수였다.

이 다음도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는데 이 때 역시 C2를 아껴야겠다고 생각했다. X 스퀘어인 B7도 무모하게 느껴져서 29수 흑 D8로 G4를 노리는 방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D8은 -8으로 차선이었고 C2와 F7이 -6짜리 최선이었다. 특히 F7을 뒀을 때 백이 E7을 둘 수 없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상대는 D8에 +6 차선인 30수 E7으로 응수했고 G4로 바로 들어갈 경우 상대에게 F7로 들어갈 길을 열어주기에 31수 흑 E8을 택하였다. 하지만 이는 -10짜리 차차선으로 흑 G7, 백 F7 이후 흑 F8을 두면 백은 하변에 둘 곳이 E8 밖에 없어지고 E8을 둔 이후 흑 대응도 어렵지 않다는 것을 간과하였다. 반대로 흑 E8에 백 F7, 흑 G4로 대응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착수하였으나 그 이후 백이 F8에 착수하면 흑 입장에서는 갑갑해지게 된다.

 

하지만 백은 +8인 32수 F8으로 응수했고 33수 흑 G4를 착수하면서 34수에 백이 F7을 둔다고 해도 35수 흑 G8을 대각 방향으로 뒤집어지는 돌 없이 둘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불균형한 변이기는 하지만 스토너 트랩 등으로 바로 공격당하지 않기에 선택을 하였다. 35수까지 위와 같이 진행되었고 최선 수순이었다. 36수에서 최선수인 백 H5를 택하였는데 이는 한 방향으로만 돌을 바꾸는 조용한 수이기 때문이다. 이 때 C2 또한 C6를 열어주기에 위험 부담이 있다고 판단하였고, -10으로 최선인 37수 흑 H4를 뒀고, 백이 H6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수를 두면서 38수 백 G7이 최선일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X 스퀘어를 찔리자 내 부족함을 간파당한 듯 마음 한 구석 역시 쿡 찔리는 느낌이었다. 이 시점에서 가장 긴 장고가 시작되었다. 

39수로 처음 고려했던 수는 B7이었다. 백이 바로 A8을 공격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렘 님도 B7을 이야기 하시면서 X 스퀘어를 먼저 찔러주고 상대 대각을 자르는게 상대를 더 괴롭힐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B7, C7, D7, D8을 흑이 감싸게 되면서 추후에 하변이나 좌하쪽에서 돌을 많이 잃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다음 후보수로 넣은 곳은 A7이었다. A7으로 D4 돌을 흑으로 바꾼 다음 다음 수에 H8으로 들어갈 심산이었다. 그 때 내가 예상한 진행은 39수 흑 A7, 40수 백 A8, 41수 흑 H8, 42수 백 B8, 43수 흑 C2, 44수 백 C8, 45수 흑 B7이었고 이는 실전에서 그대로 진행되었으며 최선이었다. 처음 생각했던 B7은 -12로 차선이었고 또 다른 최선에는 A2, A3가 있었다.

 

당시에는 40수로 백 A8이 자명하다 생각하였으나 차선인 C8도 충분히 가능한 수였다. 41수 흑 H8로 우하귀를 먹은 이후에는 다른 곳으로 발 빼기 어렵다 판단하였고 좌하쪽 세 칸 중 하나로 갈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 중 B8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42수로 백 B7은 B8, C8을 백이 둘 수 없게 만들기에 불리하다 생각하였는데 B8과 함께 최선이었다. 이 때 제 때 못 쓰고 아껴뒀던 C2를 43수로 두면서 백으로 하여금 좌하쪽 두 칸 또는 우하쪽 두 칸으로 가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백이 44수로 F2를 두면 B7을 둘 수 없게 되므로 후보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수 역시 C8과 함께 44수 상황에서 최선이었다. 44수 백 C8, 45수 흑 B7까지 내 수 읽기를 따라 최선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때 깨달은 점은 B7부터 F3까지 전부 흑이여서 추후 대각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상대는 조용한 수인 46수 백 F2를 택하였고, 둘 만한 곳이 A3 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48수에서 백의 최선은 H3로 흑이 둘 수 있는 곳을 말려가는 선택이다. H3 이후 흑이 우변의 두 칸에 두지 않으면 좌상을 내줄 수 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상대는 +4 차선인 48수를 택하였다. 이 때 49수 흑 B2를 두면 화이트 라인 대각을 흑이 차지하고 백이 끊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착수를 하였다. 상대는 흑이 상변을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인 50수 백 D1을 뒀다.

 

이 때까지는 나름 잘 버티면서 접전으로 끌고 왔지만 이후 실수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51수 상황에서 다른 곳은 두면 안되고 A2 아니면 B1이었는데 -10인 차선 B1을 뒀던 것이다. 지금 보면 너무 당연하게 A2를 뒀을 것인데 대회 막바지여서 그런지 생각을 제대로 못 한 것 같다. G1은 흑, 백 모두 두기 껄끄러운 곳인데 흑이 B1을 두면서 백은 A1으로 상변을 차지하게 되고 G1 역시 두기 편해졌던 것이었다. A2를 뒀으면 G1은 서로 두면 불리한 곳으로 남았을 것이다. 만약 흑이 51수로 A2를 뒀을 경우, 백의 최선은 H2로 흑이 스스로 F3의 돌을 흑으로 바꾸게 하여 백이 G2로 대각을 차지하게 만드는 수순이다. 이후 수순은 서로 최선으로 이어져 27-37의 아쉬운 패배로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 판을 두고 나서 대회가 끝났다는 점에서 후련하기도 하면서 대국에 대한 후회는 다른 판에 비해 더하였다. 다른 판에 비해 점수 차가 적은 석패였다는 것도 이유지만 다른 판에 비해 좀 더 수읽기가 명료하게 됐다는 것과 치명적인 악수가 없었다는 것이 내 마음에는 의미있게 다가온 것 같다.

내 대국이 끝난 이후에도 쿨러 님 판이 끝나지 않았었다. 쿨러 님은 비교적 빨리 두기에 늦게 끝나는게 의아했지만 7판을 내리 두고 지쳐서 대국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관전자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고 그 경기의 결과는 2017년 세계 대회 5위의 후쿠나가 코하치 7단을 상대로 33-31로 신승을 거뒀다. 이 1승은 한국 오델로계의 저력 또는 잠재력을 보여주는 한 판이었다.

 

모든 대국이 끝난 이후 한국 팀 선수 및 관계자들 모두 허탈해보였다. 1회 한일전의 6.5승에 비교하면 적은 4승이라는 결과 때문일 수도 있고 세계 최상위권 / 상위권 기사와의 격차를 온몸으로 느껴서였을지도 모른다. 대회가 끝나고 일본팀에 단체상 수상이 있었다. 상패와 함께 금박 초콜렛으로 만든 메달 수여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웃으면서 지켜보기는 어려웠다. 아래 단체 사진만 봐도 표정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차이가 보인다. 폐회사에서 한일전은 2회로 마무리되고, 내년부터는 동아시아컵으로 대회를 확대해서 개최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괜히 한국팀의 경쟁력이 떨어져 한일전이 없어지는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찔렸다.

 

 

대회가 끝나고 호텔 옆쪽의 한식집에서 뒷풀이가 있었다. 테이블 중 절반에는 감자탕, 나머지 절반에는 부대찌개가 있었다. 돼지 뼈를 뜯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감자탕 테이블에 일본 선수들이 다 앉아서 부대찌개로 마음을 바꿨다. 좀 더 적극적인 성격이었으면 누구 한 두 명이라도 붙잡고 테이블에 낑겨들어가 부족한 영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는데 대회에서 너무 못 뒀다는 생각이 앞서 그냥 익숙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같은 테이블에 야마카와 타카시 七단과 타츠미 유키코 六단이 있었다. 식사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친선전을 하면서 대회의 여운을 정리하였다.

사실 저녁 식사가 끝날 때까지 마지막 판 기보를 확보하지 못하였다. 진 판에 대한 창피함 때문에 직접 물어보기 부끄러웠다. 하지만 해산할 때 켄타 키요노부 六단을 붙잡고 복기를 부탁드렸다. 이 순간이 지나면 기보를 복기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판 기억나냐는 말로 운을 띄운 다음, 내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잘 둔 판이라고 하면서 복기를 부탁하며 핸드폰을 건냈다. 간단히 그렇다는 대답과 함께 바로 대국을 복원하였다. 아직도 복기를 못하는게 답답하기도 하고 복기 가능한 사람을 보면 신기한 건 여전했다.

 

 

 

2017년 10월에 첫 대회를 참가한 이후 한일전 전까지 총 3번의 대회를 참석했다. 첫 대회 때에는 미지의 고수를 만나는 것 만으로도 긴장되고 압도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2회 수원 대회와 왕중왕전을 지나면서 한국의 고수들과 대회에서 만나는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렘 님은 무섭다.) 하지만 이번 한일전 때에는 세계 정상급 기사들을 상대해서 그런지 기가 죽은채로 대국을 한 것 같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어있는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 알아도 실전에서 마음을 다잡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일본 기사를 만나는 귀한 기회에서 내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한 것 또한 아쉽게 다가온다. 긴장해서 그런지 수읽기 했던 것을 잊기도 하고 수읽기를 했던 부분을 또 다시 생각하기도 했다. 이 역시 앞으로 오프라인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고쳐야 될 부분이다.

예전에 렘 님과 동권 님께서 고수와 계속 맞붙어야 고수를 상대할 수 있는 힘이 키워진다고 한 적이 있다. 앞에서 이야기 한 모든 부분이 결국 실전 경험에서 쌓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일본에 부러운 점이 많다. 대회가 끝나고 볼짱 님께서 타츠미 유키코 六단에게 일 년에 대회를 얼마나 나가는지 물어봤는데 30번 내외라고 답하였다. 대회에서만 두는 대국이 200판을 넘는다는 것이다. 아마 나는 일 년에 대회에서 30판 정도 두는게 전부일 듯 싶다. 다른 기사분들도 오프라인에서 두는 경험의 필요성을 크게 체감한 듯 싶다. 한일전 이후로 시간이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 매주 주말 오델로를 두고 서로 복기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이 자양분이 되어 더 큰 무대에서 고수들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실력 때문에 좋은 대국을 보여드리지는 못해드려서 죄송하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또한 대회에 참여하신 모든 선수분들과 양국 협회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나중에 일본 대회를 나가던, 국제 대회에서 만나던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세게 맞붙고 싶다.

 

*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유튜브에 한일전 각 대국에 대한 동영상을 올리다가 지금은 소식이 없는 상황입니다. 나중에 혹시나 제 대국에 대한 동영상이 올라오면 번외편으로 글을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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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나가 코하치 七단은 얌전한 느낌의 청년으로 세계 랭킹 8위의 일본 선수 중 가장 레이팅이 높은 사람이었다. 돌을 가린 결과 백이 나왔고 머리 속은 복잡해졌다. 이번 내 테이블로 볼짱 님이 오셨다. 이 경기가 중계가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중계가 되는만큼 좀 더 좋은 대국을 보여주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었다.

12수 백 D6까지 No-Kung 최선으로 진행하였으나 상대가 13수 흑 D3로 차선을 택하였다. No-Kung은 무난하게 받으면 심하게 불리해지는 경우가 적다는 것만 믿고 직감과 짧은 수읽기로 한 수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측 흑의 벽을 뚫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계속 진행하였는데 18수 A4는 +0, 20수 B6는 -2짜리 차선이었고 최선을 택하였다. 특히 상대 역시 21수 A6와 23수 E2가 -2, -7짜리 차선수로 진행하였다. 상대는 불리함을 느꼈는지 끙끙 거리는 소리와 함께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때는 내가 +7이었다는 상황을 몰랐고 비등비등하거나 살짝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심각해보이기에 내가 사고 한 번 치지 않을까하는 살짝의 기대도 생겼다. 상대는 대국 내내 계속 끙끙 거리는 소리를 내고 심각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후 내 실착이 이어지면서 고민하는 소리와 행동은 점점 줄어들었다. 상대가 무엇을 하던 신경을 안 써야 되는데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24수를 둘 때 고민이 된 부분은 F3와 F7이었다. 맨 처음에는 F7만 보였으나 흑이 E7으로 응수했을 때 흑의 우측 벽을 깨야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되었다. 그래서 좌우로 흑에 끼어 있는 형세 역시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여 실전에서는 F3를 택하였다. 하지만 이 곳은 +2 차선이었고 처음 생각했던 F7이 +7로 최선이었다. 25수에 흑이 E7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수치 차이가 거의 없는 차선이었고 최선은 상대가 택한 흑 G4였다. 평소였다면 26수에 E7을 뒀을 것이었으나 왠지 그 이후 흑이 F7으로 두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찾은 곳은 26수 백 F1이었다. 하지만 이는 -1짜리로 흑이 바로 27수로 E7을 두는 순간 이 곳을 선수로 둬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수도 찝찝한 수였는데 제일 먼저 생각한 곳은 G3였으나 이내 28수로 백 G5를 택하였다. 이후 흑 G3, 백 F2로의 진행을 생각하였으나 처음에 고민한 G3가 최선, 내가 택한 G5는 -6짜리 차선이었다. 또한 상대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29수 흑 F2를 택하였고 이는 내가 간과하고 있던 조용한 수이자 최선수였다.


이후에도 악수를 연발하였는데 아래쪽 흑의 벽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 30수로 백 G3를 택하였는데 이 때문에 우측으로 흑이 둘 곳이 많아졌다. 최선은 G6로 아래쪽에 백의 벽이 생겨도 흑이 뚫고 나오기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했다. 31수 흑 H5는 +8 최선이었다. 다음 32수 상황에서 E1과 H6를 고려하였고 백 H6, 흑 H7, 백 G6로 진행하면 우측 백의 벽이 두터워져서 운신이 어렵다는 생각에 32수 백 E1을 택하였으나 -16짜리 차선이었다. 최선인 33수 흑 H4 이후에도 고민의 연속이었다. H3는 F5라는 길을 열어줘 불리하다고 판단하였고 H6는 이후 하변에 벽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안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수는 34수 백 E8이었고 수치는 -26까지 떨어졌다. 이후 35수 흑 F7, 36수 백 H3, 37수 흑 H2, 38수 백 H6, 39수 흑 H7로 최선 진행이 이어졌다. 그 때 당시 둘 수 있는 선택지가 매우 적었기에 자명한 수순이었다.

이 이후에도 악수의 연속이었다. 오델로 대회에서는 승수가 같을 경우 돌 개수와 연관된 수치를 바탕으로 순위를 구분하기에 지더라도 최대한 돌을 많이 먹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승부가 크게 기울어졌을 때도 악수를 연발하면서 격차를 더 크게 벌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대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40수 상황에서 F6, F7이 흑이었고 이를 백으로 바꾸지 않는 편이 나았는데 최선 G2를 외면하고 -32인 40수 백 G6를 택하였다. 41수 상황에서 최선은 흑 G2였지만 우변을 통째로 내주는 전개가 꺼려져서 그런지 +18인 41수 흑 C1을 택하였다. 42수 상황에서도 역시 우상귀를 허무하게 내주고 싶지 않아서 백 C2를 택하였으나 이는 -22 차선이었고 우상 쪽을 먼저 정리하는 수순이 최선이었다. 다만 이 다음에도 흑의 최선은 G2였으나 +14인 43수 흑 B1을 택하였다.


이 때부터 특히 후반 정리하는 수순에 큰 아쉬움을 느낀다. 44수에서 최선 진행은 G2부터 시작하여 우상, 좌상 순으로 칸을 채우는 것이었다. 미리 우상에 대한 미련을 버렸어야했는데 실낱 같은 희망으로 생각하고 44수로 -24인 백 B2를 택하였고 흑은 최선인 45수 A1으로 응수했다. 46수 상황에서는 이미 승부가 기울어졌지만 최대한 수 읽기에 최선을 다해야했던 순간이었다. 실전에서는 급한 마음에 46수 백 A2를 택하였으나 흑이 47수 D1을 두면서 G열이 모두 흑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자기만 둘 수 있는 곳을 아껴두는 편이 좋다는 것을 망각하고 너무 안일하게 판단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우상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리해졌는데 생뚱맞게도 48수 백 G2를 택하였고, -46인 상태에서 최선으로 진행하다가 55수 흑 G7에 수치가 -38이 되고 51-13의 대패로 대국이 끝이 났다. 


대패를 당했기에 세계로 중계되는 경기에서 크게 졌다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5라운드에서는 범근 님께서 타카하시 히사시 3단에게 승을 하나 얻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복기 후에 느끼는 점은 이 판은 전반적으로 끈기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고수들도 분명히 틈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큰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빈틈이 생긴 순간을 놓치면 안된다. 만약 내가 불리한 상황이여도 꾸준히 버티다보면 승패가 뒤집어지지는 않더라도 격차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내 스스로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대국 직후에는 질 사람에게 졌다는 생각에 너무 침울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대국은 아직 두 번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다음 대국은 타츠미 유키코 六단으로 대회 이전부터 여러가지 악명으로 유명했다. 특히 인천 대회에서 소재영 四단께서 역전패를 당할 때의 일화를 후기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 판에서는 내가 흑을 잡고 Rose-Tamenori/Rose-Birdie로 진행하였다. 이 오프닝에서 진행되는 길 중 하나를 끝까지 최선 진행으로 외워뒀는데 상대도 이 길을 꽤 길게 알고 있는 듯 하였다. 나는 중간 중간 길에 익숙하지 않은 듯 잠깐씩 착수의 템포를 늦췄고 상대는 30수 넘어까지 즉각 응수를 하였다. 30수 이전까지는 상대가 틀 수 있는 분기점이 많아 걱정하였으나 특정 시점 이후부터는 흑백 모두 최선을 찾기 어려워져서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상대의 착수 또한 더뎌지기 시작했다.

속으로 내가 외운 것만 잘 기억하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외워둔 수순에 대한 의심과 판의 모양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수십 번을 뒀던 수순이기에 최선 수순에서 벗어났을 가능성은 낮은 것 같고 복기 때 비슷한 모양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봐서 잘못 뒤집어진 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상대가 큰 실착을 했는데 나도 큰 실착을 했던 것일수도 있다. 분명한건 먼저 대국을 끝낸 하야 님과 쿨러 님께서 관전을 하다가 내 착수에 크게 안타까워했고 내가 쉽게 이길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었다. 대국 결과는 22-42로 패배였다.

기가 막힌 일은 대국 이후에 있었다. 관전을 하던 하야 님께서 내가 패착을 둔 순간을 확인해보고 싶다고 복기를 해 달라고 하였으나 내 기억으로는 끝까지 복기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하야 님께서는 나를 데리고 타츠미에게 가서 유창한 일본어로 복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복기를 하고 싶으면 자기가 동대문에서 관광할 때 안내를 하라는 것이었다. 하야 님은 기가 막혀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복기는 흐지부지 되었다.

그 이후로도 복기를 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하였으나 판에서 봤던 모양이 다시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마 잘못 뒤집어진 돌이 있으니 복기가 안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잘못 뒤집은 돌 때문에 승패에 영향을 받으면서 복기를 거부하려고 핑계를 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혹시나 하며 복기를 시도했을 때 가능한 수순을 하나 찾기는 하였으나 기억이 오래되어 이 수순이 맞다는 확신을 갖기 어렵다. 그리고 지금 생각한 수순이 맞다는 생각보다 판에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 마음에 더 편할 듯 싶었다.

타카하시 히사시 三단을 이긴 이후로 아쉬운 수가 꼭 나오면서 내가 둔 대국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이 쌓였다.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대국이 없다는 것에 후회가 남기 시작했다. 내가 볼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좋은 수로 가면 지더라도 아쉬움이 덜하기 마련이다. 마지막 대국을 앞두고, 패배한 다섯 판에서의 아쉬움은 응축되어 불타는 전의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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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대국의 시작은 야마카와 타카시 七단과의 대국이었다. 그의 첫인상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의 괴짜스러움과 선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대국 시작 전 5번 테이블에 있었던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서울대 대 동경대 매치라는 이야기를 했고 첫인상에서 느껴지는 촉이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델로는 다른 문제였다. 야마카와 타카시 七단이 돌 하나를 붙잡았다. 이 순간은 사실 뜸 들일 이유가 전혀 없지만 돌 고르는 순간은 떨리기에 위, 아래 선택하는 것을 망설였다. 내 개인적으로 흑을 잡으면 꿈틀거리기는 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백을 잡으면 꿈틀거리지도 못하고 말라 죽을 것 같았다. 이번 대국에서 내가 선택한 쪽은 백이었다.

 

Stephenson에 이은 나의 선택은 8수 백 G5로 준비해뒀던 No-Kung으로 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상대가 언제 어디에서 최선이 아닌 길로 틀지였는데 9수 흑 C6로 -2 차선으로 바로 틀어버렸다. 이전에 이 수에 엉뚱하게 대응하여 대패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차선 진행도 살펴보기는 하였으나 최선 진행만큼 길게 알고 있지 않았기에 이후 진행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11수 백 E3 최선 대응에 이은 12수 흑 F2 역시 놀랄 수 밖에 없었던 수로 이 역시 차선이었다. 그 이후 차선 진행을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한 대응책으로 또 한 번 틀어버리는 것을 준비했던 것 같다. 이에 최선 E2를 놓치고 +0인 백 F3를 12수로 택하였고, 이후 13수 흑 D2, 14수 백 C5, 15수 흑 G6 모두 최선이었다. 

16수로 백의 최선은 F1이었으나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수이다. 이후 최선 진행을 살펴본 결과 상변을 먼저 들어가는 과정에서 흑이 좌하쪽에 착수하게 만들고 추후에 백이 착수 지점이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가운데에서 크게 벗어나기에 감각적으로 꺼려지는 감이 있어 -4 차선인 16수 백 B4를 택하였다. 상대가 최선인 17수 흑 E2로 대응하였을 때 백 입장에서는 그나마 B3가 둘 만한 곳으로 판단했다. 상대가 C2나 B6로 들어와도 어느 정도 무난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생각이었고 18수 백 B3는 최선이었다. 19수 흑 E6는 +0 차차선으로 C2, B6 이후 무난한 진행을 피하기 위한 흔들기로 생각된다. 하지만 20수 백 D7를 착수하면서 D6의 흑돌만 백으로 바꾸고 이를 다시 상대가 건드리기 까다롭다고 판단했다. 

 

21수에서 흑의 최선은 G3와 C7이었으나 상대는 -4인 B6를 택하였다. 이 상황에서 최선은 백 E7이었으나 22수 백 B5 이후 23수 흑 C2로 흑의 내부 세력을 견고하게 만들어버렸고 잠깐의 우위는 +0으로 회귀하였다. 22수 상황 때도 그렇고 24수에서도 간과하고 있었던 수는 E7이었다. E7으로 아래쪽에 벽이 형성되도 상대가 그 벽을 바로 뚫고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이후 흑이 F7을 두면 G4로 대응이 가능하고, 흑이 G3로 대응하면 백은 F7으로 대립하는 형세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읽지 못하고 -9인 A6라는 악수를 뒀다. 상대를 좌측으로 유도할 생각이었으나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25수 흑 H5는 백의 착수 가능한 지점을 최소화하는 수로 최선수이다. 

이 때부터 형세를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백 26수에 최선은 G4였으나 형세를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차선인 E1에 착수했고 27수 흑 A1 최선으로 응수했다. 28수로 최선인 G4를 택하면서 흑이 29수로 E7을 둬 주기를 바랬고 상대도 이에 응하였다. 흑의 29수로 최선은 H4이나 수치 상으로는 큰 차이는 없었다. 다음으로 흑이 좌측이나 아래쪽으로 착수하기 위한 전초 단계로 30수 백 F8을 택하였고 이는 -10 차선이었다. 최선은 백 G3로 -8이다. 두 수의 차이는 흑이 H3에 착수할 때 여유수가 하나 더 늘어나는 효과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31수 흑 H4는 +6짜리 차선이었다. 이 상황에서 우상 쪽에서 흑이 착수 가능한 곳을 없애는 방향으로 정리하는 것을 우선이라 생각하여 32수로 백 H3를 택하였는데 이는 -14짜리 실착이었다. 만약에 앞에서 서술한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면 G3가 더 적합했고 최선은 F7으로 흑이 G3를 두게 하여 대립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했다. 그 이후 33수 흑 H2, 34수 백 G3의 최선 진행으로 이어졌고 35수에서 흑의 실착이 나왔다. 

 

35수로 흑의 최선은 F1이었다. 만약 백이 D1으로 응수하면 D열이 모두 백이 되어 흑이 D8에 착수하는데 부담이 줄어들고 백이 G1을 두면 흑이 A3를 뒀을 때 불리한 지점만 착수가 가능하게 된다. 그렇다고 흑이 상변에 균형 변을 만들게 할 수도 없기에 난감한 수이다. 그러나 35수 흑 G1은 +6으로 우위를 좁히는 수였다. 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36수로 여유수인 F7를 선택했다. 37수 흑 A3는 여유수로 백의 착수 지점을 최소한으로 늘이는 최선수이다. 이 상황에서 백은 A2, B2, H7이라는 최선수가 있었는데 그 중 38수로 맨 마지막을 택하였다. H1 코너를 얻은 이후 끼워넣기 당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지만 흑이 바로 H6에 착수할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뒀다. 

흑에게는 39수로 A4를 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 이후 A4, A5, D1, F1, A7으로 진행하면서 흑 입장에서는 끼워넣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서 G2에 흑만 착수하도록 설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흑은 바로 끼워넣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는지 39수로 +2짜리 흑 C7을 택하였다. 누구나 실수를 하게 되어있지만 상대의 실수를 잡지 못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이 상황에서 흑의 상변을 불규칙변으로 만들고 끼워넣기를 할 준비를 하기 위해 40수 백 F1을 택하였는데 이는 -10짜리 수였고 최선은 D1과 D8이었다. D8의 경우에는 상변에 최대한 늦게 들어가면서 흑이 착수 가능한 지점을 늘여주는 걸 기다리고 끼어넣기를 성공시키는 진행이다. F1과 D1의 차이는 블랙라인의 상태와 연관이 있다. D1에 착수할 경우 블랙라인에 백돌 2개가 띄어져 있어 블랙라인을 흑이 차지하는 경우가 없지만 D1에 착수할 경우에는 블랙라인 가운데 4개 돌 중 하나만 백돌이 되고 추후에 대각을 빼앗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추후 최선 진행을 비교하면서 알아낸 차이로 이 시점에서 바로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41수 흑 D1은 자명한 수이다.

 

이 시점부터 악수와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부족한 면도 있었겠지만 이 부분을 좀 더 깊게 생각했으면 어땠을까하는 후회가 남는다. 42수에서 백의 최선은 D8이었고 끼어넣기를 의식했으면 바로 A2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엉뚱하게 42수 백 C8을 착수하였고 수치는 -10에서 -24로 급락했다. 43수 흑 A4에 여유수 A5을 내주고 둘 수 있는 곳은 네 군데 밖에 남지 않았다. 이 때 G2를 두면 잠시나마 블랙라인을 차지하고 흑이 확실하게 대각을 끊는 방법은 G8 밖에 없기에 H8을 백이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블랙라인을 차지해도 흑이 다시 끊을 것이라는 생각에 A2로 끼어넣기를 시도했고 이 때 -24의 수치는 -30으로 바뀌었다.

흑은 바로 A1을 먹어줄리가 없었고 45수 흑 A5로 끼어넣기를 하였다. 이 때 B2를 두면 끼어넣기조차 할 수 없기에 46수 백 G2에 착수하였고 상대는 47수 흑 B7로 응수했다. 48수에서 최선은 B8이었으나 -32짜리 차선 B2에 착수했다. 그 이후 49수 흑 A7에 끼어넣기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받아드릴 수 밖에 없었고 B1, A1, B2, E8, D8, H1, G8, B8의 최선 진행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에 세 칸 남은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하지 못하고 -40인 50수 H6를 택하였다. 결과는 52-12로 대패였다.

 

 

대국 직후에는 서서히 밀리다가 격차가 꾸준히 커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글을 쓰면서 복기를 해보니 격차가 -10 언저리로 유지되고 -2까지 좁혀졌다가 갑자기 확 커져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허탈해졌다.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 필요한데 초중반에 힘을 많이 쓰면서 후반에 허망하게 무너져버렸다. 중반과 후반은 스스로도 보완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대회 당시에는 대패에 대한 충격만 머리를 사로잡고 있었고 다음 판에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대패만큼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번 판도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복기 요청을 못하고 나중에 기록지를 보고 기보를 발췌하였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수 읽기가 치밀하고 서로의 수읽기가 맞아들어가서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면 복기가 되기 쉬워지는데 아직은 자연스럽게 복기가 되지 않는다. 이 역시 내 실력이 부족함을 탓할 문제이다. 4라운드도 한국의 전패였기에 좀 더 분발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다음 상대는 작년 세계 대회 5위의 후쿠나가 코하치 七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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