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델로 일상(?)] 돌 헤는 밤

2018. 3. 12. 00:05 | Posted by 태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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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헤는 밤


원작 : 별 헤는 밤 (윤동주)

김태연


녹음이 우거지는 판 위에는

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판 위의 돌들을 다 헬 듯합니다.


판 위에 하나 둘 놓여있는 돌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오늘 많은 대국을 한 까닭이요,

내일 둘 대국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내 실력이 충분치 않은 까닭입니다.


돌 하나에 오프닝과

돌 하나에 트랩과

돌 하나에 실착과

돌 하나에 패리티와

돌 하나에 승패와

돌 하나에 재영님, 재영님,


재영님, 나는 돌 하나에 오프닝 이름 하나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처음으로 했던 오프닝의 이름과, Heath, Brightwell, Rose, 이런 이국 사람들의 이름과, 벌써 최선 진행을 다 외운 오프닝의 이름과, 소, 말, 토끼, 쥐, 뱀, '무라카미 타케시', '타메노리 히데시' 이런 오델로 플레이어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높이 있습니다.

제 레이팅이 너무나도 낮듯이.


재영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무안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돌들이 놓여진 판 위에

새 리워 계정을 만들고

몇 판 두고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서 둔 판이

부끄러운 실착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2000을 지나고 나의 계정에도 2400이 온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계정이 묻힌 리워 위에도

자랑처럼 랭킹에 올라갈 거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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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라운드 상대는 타카하시 히사시 三단이었다. 건장한 체격에 강렬한 인상의 소유자로 보면 살짝 움츠러들 정도의 느낌이었다. 대국 전에 볼짱 님이 테이블 옆으로 오셨다. 라이브 오델로 중계 때문이었다. 돌을 가린 다음 다른 테이블은 대국을 시작하였으나 인터넷 중계 세팅 때문에 볼짱님께서 잠깐 기다려달라고 하였다. 이번에는 내가 흑이었다. 상대가 직각을 가기를 빌며 중계 세팅이 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상대 백은 대각을 택하였고 준비한대로 Buffalo 오프닝으로 진행하였다. 상대 리버시워 기보 분석을 통해 최선수 중 6수 백 E2로 받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한 상황이었고 9수까지 서로 최선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상대는 준비된 오프닝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수치 상 -4인 10수 백 F5를 택하였다. 상대가 추후에 F4로 들어올 상황을 생각하여 11수 흑 F3를 택하였고 바로 12수에 백 F4에 착수하고 13수 흑 E6로 상대 진영 안 쪽으로 파고들어도 상대가 내부의 흑 돌을 바꾸기 껄끄럽게 만들었다. 14수 백 G4 역시 최선이고, 15수로 흑 C6를 두며 상대가 C7, D7, E7, F7 모두 들어오기 힘든 모양이 된다고 판단했고 상대가 F2를 두면 G5으로 대응할 생각을 했다. 실전 역시 이와 동일했다. 

18수에서 본인은 백에게 상당히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고 있었다. 최선수는 C7이나 벽을 넓힌다는 점에서 꺼려지기는 하나 착수 가능한 모든 지점이 유사한 불리함을 갖고 있다. 최선 진행은 백 C7, 흑 E1, 백 F1으로 이 진행 이후에는 흑이 위쪽에서 착수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여기서 18수 백 E1을 택하면서 수치는 -7이 되고 위쪽 벽이 더 생겼고 이 벽을 유지하기 위해 19수 흑 H4를 선택했다. 20수 백 D7은 C7과 함께 최선수로 흑의 돌을 최소한으로 뒤집어 흑의 선택지를 많이 늘이지 않으면서도 G3로 들어갈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의미로 판단했다. 이 의도를 무너트리고자 21수 흑 G3로 선수를 쳤고, 22수 백 E7으로 흑의 진영을 갈랐다.

 

나는 22수 백 E7을 흑으로 하여금 백을 가로지르면서 본인의 기회를 얻으려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이와 반대되는 성격의 수인 23수 흑 F1을 택하였다. 하지만 이 경우 B4로 상대 진영을 갈라버리는 것이 더 낫다. 상대의 벽을 가르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가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돌로 바뀐 안쪽의 돌이 다시 상대방의 돌로 뒤집어질 때 발생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 B4에 착수하면 D3, E4, F5가 모두 흑이여서 대각 방향으로 백이 뒤집을 방법이 없고 다른 백의 수도 B5로 다시 안쪽을 흑으로 바꾸는 선택지가 있다. 흑 F1 이후 백의 최선은 C2이나 24수는 백 G6였다. 이 때 백이 C2로 들어가기 쉽다고 판단하여 이를 악화시키기 위해 25수 흑 C1을 택하였다. 이 때 백이 C2로 바로 들어가면 D1을 둬서 상대가 착수 가능한 지점이 우측으로 좁혀지고, D1으로 둘 경우 백은 C2 착수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상대는 예상하지 못한 26수 G1으로 갔는데 이 수 역시 백 자신의 C2 착수를 불리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다음으로 C7과 F7, 두 조용한 수 중에 하나를 고민했는데 상대가 좌측에서 길을 찾지 못하도록 27수 흑 F7을 택하였으나 최선은 C7이었다. 28수에서 백이 H6로 대응했으면 어느 지점에 착수를 하더라도 흑의 벽이 생기면서 상대에게 활로를 만들어주는데 백은 28수를 E8으로 갔다. 이 다음에 앞에서 고민했던 또 다른 조용한 수인 C7를 흑의 29수로 선택했고 백은 안쪽에 자신의 돌을 만들고자 30수 백 H5로 갔다. 이 수에 반사적으로 우변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에 31수 흑 H6로 갔으나 우변 쪽에 흑이 착수 가능한 지점이 사라지면서 형세가 불리했다. 이 때 수치가 +8에서 0으로 회귀하였다. 

 

백은 이 때 G2로 X를 찌르는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으나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니다. 상대는 차선으로 32수 백 B8을 택하였다. 이 때 눈이 들어온 곳은 B3로 대각 방향으로 돌이 바뀌지 않아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이 때문에 31수 상황에서도 B3가 최선수였다. 33수 흑 B2 이후 백은 위쪽이나 오른쪽으로 들어가기에 껄끄러웠기에 34수 백 B5를 택하였다. 이 상황에서 흑은 조용하게 B4나 B6로 내부로 들어가는게 편한 방법이었으나 그 이전에 F8로 가면 백은 G8으로 받을 수 밖에 없고 그 다음 B4나 B6로 가면 된다는 생각에 35수를 F8로 택하였다. 그러나 이는 최선 진행은 아니었고 미세한 우세가 -2로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만약에 흑이 C8이나 D8에 둘 경우 백은 하변에 균형 변을 만들 수 있고 C7부터 F7까지 백돌이 있는 상황 역시 흑으로 하여금 변을 공격하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하게 만든다. 

백은 예상대로 36수 G8으로 진행하였고, 상대 수를 좌상과 우측으로 몰아가고자 37수 흑 B5로 택하였으나 이는 -4짜리 차선이었다. 백이 38수에 G2를 공격하면서 C6부터 G2까지 이어지는 블랙라인을 전부 백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실전도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최선은 B6였다. 하변의 두 개의 빈칸은 늦게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백의 B6 착수를 허용하지 않는 수로 39수 흑 A6를 택하였다. 이후 백이 H3를 착수하면 흑 D8, 백 C8, 흑 H1 이후 백이 H2로 끼어 넣으면서 우변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과 함께 2행을 공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40수로 백 A4로 진행하면서 상황이 +4로 다시 역전되었다. 좌하측 백의 벽을 최대한 건들지 않기 위해 41수로 D8을 택하였고 다음 42수 백 C8은 자명한 수이다.

 

이 때 불안하다는 생각에 바로 43수로 H1에 바로 들어갔는데 이 역시 차선이었다. 최선은 A3였으나 그 당시에는 전혀 후보수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대각을 다시 내 줄 가능성이 없었기에 H1을 바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A3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44수 백 D1 끼워넣기는 상변을 지키기 위한 자명한 수이고, 좌하쪽 백의 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선택한 45수 흑 C2 역시 +0짜리 최선이었다. 다음 수 46수 백 A2 역시 최선으로 다른 수들의 불리함이 뚜렷하게 보여 선택한 수로 추정한다. 이 상황에서 최선수는 흑 G7로 이후 최선 진행은 백 B2, 흑 A5, 백 B6, 흑 A1, 백 B1, 흑 A3이다. 이 진행의 핵심은 흑만 들어갈 수 있는 A3를 최대한 늦게 들어가는 것이 첫째, 우측 정리를 하고, 백이 B6를 두게 만들면서 좌하에서 패스 1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 둘째였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47수 흑 A3라는 -2 차선을 택하였다. 이 때 상변과 우변 절반, 좌변 절반 정도를 백에게 내줄 진행이 보이기는 하였으나 내줄건 내줘야 된다고 판단하고 착수하였다. 좌변을 뺏기지 않기 위한 48수 백 A5는 자명한 수이고 좌상귀를 정리하기 위해 49수 흑 A1을 둘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백은 48수에 -4짜리 B6를 뒀다. 이 수로 인해 B7은 흑만 둘 수 있는 곳이 되고 결국 마지막 수에서 패스가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49수 흑 A1으로 코너를 확보하였고 50수에서 백은 최선 B1 대신 -8 차선인 A5를 택하였다. 그 이후 51수부터 G7, H8, H7, H3, H2의 최선진행으로 우하와 우상을 정리하고, 56수 백 A7, 57수 흑 A8까지 최선이었다. 그러나 흑은 58수에서 최선 B2 대신 -14 차선 B1을 택하였는데, 이는 화이트라인을 따라 백이 뒤집어지는 것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흑 B2, B7 연타로 39-25로 이기게 되었다.

 

게임이 상대적으로 일찍 끝났기에 이 판에서의 승리는 한국팀의 첫 승이 되었다. 경기 이후 오델로 기사 카톡방을 보니 대국이 진행되는 동안 일로 바쁘신 영구 형님과 그린 님께서 응원을 해주셨다. 라이브 오델로 중계를 보니 Green이라는 닉네임으로 "Great Moves"라는 코멘트가 남겨져 있었다. 한국 팀에게는 1승 하나가 소중하고 의미가 크기에 마음 속에 뭉클하게 남았다. 특히 해외에 중계되는 경기에서 이긴 것은 해외 사람들에게 한국이 강자인 일본에게 당하지만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경기 중 범근 님의 판이 접전으로 진행되었으나 아쉽게도 패하면서 2라운드에서의 한국팀 성적은 1승이 되었다. 라이브 오델로에서 기보를 복사하여 복기를 하였더니 경기 진행은 내 생각과 괴리가 있었다. 초 중반에 유리한 고지를 밟아서 그런지 종반까지 격차가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마이너스 수치로 두 번 내려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의 실수를 바라는 것은 하수의 요행이다. 그리고 남은 경기에서 이런 행운이 찾아올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3라운드 상대는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었다. 대회 참가한 일본 측 선수 중 가장 단수가 높았고 경력 또한 가장 길다. 그러나 그를 빛나게 하는 것은 실력이 아니었다. 매일 문제가 업로드되고 다양한 자료를 수록한 Othello! Japan 사이트를 만드는 등 오델로 교육과 보급에 힘써서 일본을 오델로 최강국으로 만든 그의 업적이 진정으로 그를 빛나게 만들었다. 그는 밖에서 담배 한 대를 태우고 들어와 내 맞은 편에 앉았다. 그의 첫 인상은 따뜻한 정을 보여줄 것 같은 삼촌 같은 이미지였다. 그가 꺼낸 첫 말은 하야 누님한테 서울대 출신이고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살짝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오델로를 질 수 없었기에 아니라고 부정을 했다. 그는 자기 핸드폰으로 판을 찍고 싶다고 했고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했다. 나는 영어로 이름 나이를 이야기 하고 무슨 말을 할지 고민했는데 그가 대국을 임하는 각오 같은걸 이야기 해 달라는 부탁이 생각났다. 직접 눈 앞에서 만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인 나카지마 테츠야 8단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까? 잠깐 고민을 하였으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한 마디 뿐이었다.

"I'll do my best in this game."

이 판에서도 흑을 잡고 상대가 직각으로 가면서 Rose로 가기 위해 Rabbit으로 갔으나 백은 Ralle로 진행하였고 최선으로 받은 다음에 백은 -2 길로 진행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중반 이후에는 숨을 막는 듯한 답답함으로 바뀌었다. 결국 10-54의 대패를 당하였다. 기억나는 건 대국 내내 조그맣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게 특이하게 느껴졌다는 것 뿐이었다. 결과가 부끄러워 차마 복기를 요청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세한 대국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카지마 테츠야 8단은 이틀 전부터 한일전 경기에 대한 해설을 한 경기 씩 올리기 시작했다. 다만 3라운드에 있었던 내 경기 영상이 올라오려면 오래 기다려야 될 것 같아서 내 시각에서의 복기는 추후에 글로 남길 것 같다. 영상의 내용을 해석할 수 있다면 그의 설명과 그 때 당시 내 생각을 비교하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내 대국은 처참하게 패배하였지만, 다행히 3라운드에서는 하야 누님이 타츠미 유키코 6단을 상대로 34-30 승리를 얻어냈다. 3라운드 이후 호텔 1층에서 점심 식사가 있었다. 메뉴는 불고기로 속을 자극하지 않는 음식이라 생각하여 만족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대회장으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였으나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 남은 네 개의 라운드가 앞의 세 라운드보다 어려우면 어렵지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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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될 지 궁금하였는데 한국 선수의 테이블이 정해져있고 일본 선수들이 상대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각 기사가 상대팀 기사를 모두 만나기 때문에 페어링을 미리 짜 두고 점수 기록표와 순서표를 이미 작성해둔 상태였다. 1라운드부터 마지막 라운드까지 카미쿠라 다이스케 六단, 타카하시 히사시 三단,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 야마카와 타카시 七단, 후쿠나가 코하치 七단, 타츠미 유키코 六단, 키요노부 켄타 六단 순서였다. 다만 시작 전 색깔 정하는 것에 대해 혼선이 있어서 이를 확정하느라 시간이 약간 지체되었다. 돌 개수 홀짝 맞추기와 윗면 아랫면 선택하는 방법 중 후자로 결정되었다. 단이 높은 사람이 돌을 잡고 낮은 사람이 위, 아래 선택권을 가졌다. 개인적으로 흑을 좀 더 선호했기에 운이 따르기를 간절하게 빌었다.

카미쿠라 다이스케 六단이 내 맞은 편에 앉았다. 세련되고 젠틀한 느낌의 청년이었다. 일본어를 거의 못하기 때문에 영어로 간단하게 인사하였고 그는 나에게 몇 단인지 물어봤다. 초단이라고 하니 돌 하나를 집었고, 내가 고른 면은 흰색이었다. 대국을 시작하면서 평소에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되는데 외국인이니 뭐라고 해야 될지 고민했는데 케익 님의 세계 대회 후기에서 상대가 'Good luck'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모기만한 목소리로 'Good luck'이라고 했고 상대는 일본어로 인사를 했다. 이 말을 하면서도 실력이 한참 우위에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행운을 빈다고 말한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이 때 왜 나는 그린오델로에 볼짱 님이 쓰신 오델로 관련된 일본어 모음이 올라왔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카미쿠라 다이스케 단의 경우에는 흑을 잡고 백이 직각으로 받았을 때 로즈빌 정석으로 가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8수 백 B4로 Banana 오프닝으로 틀었고 14수까지는 알고 있던 최선수로 진행하였고, 23수 흑 C2까지 수 읽기로 최선 진행을 찾아갔다. 그러나 24수 백 A2는 -3으로 팽팽하던 균형을 깨버린 수로 상대의 벽을 깨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F3를 두는 것이 상대로 하여금 내 가능수를 늘이게 하는 방법이었다. 흑은 25수로 F3를 택하였고, 흑이 추후에 E7이라는 조용한 수를 둘 수 있는 것이 크게 보여 E2 대신 B6에 착수를 하였으나 차선이었다. 흑은 27수 C1으로 응수하였고, 우측에 착수할 경우 상대의 벽을 깨면서 수를 많이 늘여준다는 생각에 상변의 E1을 28수로 선택하였으나 G5도 좋은 선택지였다. 흑은 상변이 아닌 다른 곳으로 두면 백에게 수를 열어주는 효과가 더 크기에 29수로 E2를 택하였고 이는 D1과 함께 최선이었다.

흑 29수에 대한 최선수는 G3이다. 이후 최선수는 흑 G4, 백 E7으로 흑이 F7, F8을 착수하기 어렵게 만들면서 백의 착수 지점을 넓혀가는 진행이었다. 그러나 상변을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에 30수 백 F1을 뒀고 31수 흑 D1, 32수 백 B1으로 불균형 변이 형성되었다. 30수가 차선이기는 하였으나 최선과 8석 차이가 나기에 그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흑은 33수 A7으로 내 남은 수를 소진시키려고 하였고 벽을 깨기 싫어서 선택한 34수 E7은 최선이었다. 흑은 A8을 백에게 내주어도 끼워 넣기로 좌변과 상변을 얻을 수 있기에 35수 B7으로 압박을 시작하였고 벽을 최소한으로 건드리는 선에서 선택 가능한 수인 G6를 36수로 택하였다. 37수 흑 C8은 +16 차선으로 진행하였고, 어차피 끼어넣기를 허용할거면 블랙 라인을 빼앗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나중에 A8으로 들어가자는 생각으로 38수 G5를 택하였다. 

 

39수 흑 A3는 생각하지 못한 수였고 H5와 함께 최선수 중 하나였다. 내가 예상한 수순은 39수로 흑 E8, 백 A8, 흑 A3로 끼워 넣기, B8 이었는데 백이 하변에서 F1이나 G1이라는 여유수 하나를 얻는다는 것을 고려하여 좌변을 내주고 (40수 백 A8) 하변에 끼워넣는 (41수 흑 B8) 선택을 한 것 같다. 42수 백 G4로 벽을 만드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43수 흑 H5는 백의 착수 지점을 최소화하면서 벽을 뚫는 최선수였다. 다음 수로 H6를 둘 경우 흑이 H7을 둘 시 착수 가능한 지점이 B2와 G7이라는 두 X밖에 남지 않아 44수 백 H4로 진행하였다.

여기에서 흑의 실수가 하나 나왔는데 흑이 45수로 H6 대신 H3로 진행한 것이었다. 흑이 H6로 진행하고 백이 우상쪽 착수를 못하도록 막으면서 수를 소진시키면 무난하게 A1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45수 흑 H6는 +8로 최선에서 8석을 잃는 선택지였다. 46수 백 G3은 자명한 수였고 이후 최선진행은 흑 H2, 백 B2, 흑 E8으로 그 과정에서 패스가 한 번 발생하여 패리티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흑은 47수를 차선인 G7으로 택하였고 여기에서 장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착수 가능한 지점은 적었으나 미래가 암담하게만 느껴졌다.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추후 진행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았고, 48수로 앞으로 절대로 반복하면 안되는 실수를 했다. 사실 저 상황에서 감각적으로 바로 떠오르는 최선수는 F7이었다. 다만 F7으로 대각을 잘라도 흑 H6로 화이트 라인을 계속 흑으로 유지하고 H8을 내주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진행을 생각해보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간과한 것은 흑에게는 우하가 먼저 가야될 필요가 있는 곳이 아니었고 우상이나 상변 쪽에 백의 수를 유도하는 진행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심리가 묘하게 무난하게 패하는 길을 꺼리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름 흔들기랍시고 48수로 G8을 택하였다. F7이나 G8이나 지는 건 똑같을 거 같다는 생각과 엉뚱한 수읽기가 낳은 참사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때 상대가 바로 H8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하를 모두 정리하고 수가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 진행의 경우에는 나중에 화이트라인이 모두 흑돌로 바뀌는 진행이 존재해서 흑이 무리 없이 B2에 착수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흑은 +10인 49수 H2를 택하였고 이 때부터는 시간도 얼마 없어서 실착의 연속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수를 둬서 그런지 수읽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50수 백 B2는 최선 진행에서 10석을 잃는 -20이었고, 51수 최선 흑 F8에 이은 52수 백 E8은 -24 차선이었다. 다만 흑이 여기에서 53수를 +16인 F7을 택하였고 그 이후 최선 진행으로 게임이 마무리 되었다. 

 

복기를 하면서 아쉬운 수는 24수와 48수였다. 24수의 실수로 판세가 기울어졌다. 흑이 백의 착수 지점을 줄이면서 강하게 압박하는 바람에 중반에는 선택지가 줄어들어 수 읽기가 수월해졌고 상대의 실수가 발생하며 격차가 좁아졌으나 그 기회를 걷어 차 버린 것이 48수였다. 바둑에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있는데 오델로도 똑같은 것 같았다. 실력 부족 때문이던지 심리적 압박 때문이던지 뚜렷한 수 읽기를 바탕으로 한 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경우 장고가 악수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협회장님도 장고하는 경우 처음에 감각적으로 생각한 수가 나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대국이 끝나고 나서 화장실이 급한 관계로 복기를 하자는 이야기를 못했다. 아니 화장실은 그냥 핑계고 졌다는 것이 싫어서, 내 실수를 그대로 마주하기 싫어서, 내 그릇이 좁아 복기를 피한 것이다. 나중에라도 상대의 수를 상대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꼭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복기를 어려워하기에 상대방에게 복기를 부탁해야 되는데 이 역시 부끄럽게 느껴져서 상대가 수순을 적은 기록지를 몰래 사진으로 찍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행동이 너무나도 옹졸하게 보인다. 1라운드는 한국의 전패로 마무리되었다. 첫 경기에서 다가온 느낌은 수읽기가 생각이 최상 컨디션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생각이 폭이 살짝 좁은 느낌이었고 '여기를 두면 어떻게 되고 상대가 어디를 둘 수 있을까?'라는 일련의 수읽기 과정이 생각만큼 빨리 되지 않았다. 다음 경기가 두려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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