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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나가 코하치 七단은 얌전한 느낌의 청년으로 세계 랭킹 8위의 일본 선수 중 가장 레이팅이 높은 사람이었다. 돌을 가린 결과 백이 나왔고 머리 속은 복잡해졌다. 이번 내 테이블로 볼짱 님이 오셨다. 이 경기가 중계가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중계가 되는만큼 좀 더 좋은 대국을 보여주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었다.

12수 백 D6까지 No-Kung 최선으로 진행하였으나 상대가 13수 흑 D3로 차선을 택하였다. No-Kung은 무난하게 받으면 심하게 불리해지는 경우가 적다는 것만 믿고 직감과 짧은 수읽기로 한 수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측 흑의 벽을 뚫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계속 진행하였는데 18수 A4는 +0, 20수 B6는 -2짜리 차선이었고 최선을 택하였다. 특히 상대 역시 21수 A6와 23수 E2가 -2, -7짜리 차선수로 진행하였다. 상대는 불리함을 느꼈는지 끙끙 거리는 소리와 함께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때는 내가 +7이었다는 상황을 몰랐고 비등비등하거나 살짝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심각해보이기에 내가 사고 한 번 치지 않을까하는 살짝의 기대도 생겼다. 상대는 대국 내내 계속 끙끙 거리는 소리를 내고 심각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후 내 실착이 이어지면서 고민하는 소리와 행동은 점점 줄어들었다. 상대가 무엇을 하던 신경을 안 써야 되는데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24수를 둘 때 고민이 된 부분은 F3와 F7이었다. 맨 처음에는 F7만 보였으나 흑이 E7으로 응수했을 때 흑의 우측 벽을 깨야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되었다. 그래서 좌우로 흑에 끼어 있는 형세 역시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여 실전에서는 F3를 택하였다. 하지만 이 곳은 +2 차선이었고 처음 생각했던 F7이 +7로 최선이었다. 25수에 흑이 E7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수치 차이가 거의 없는 차선이었고 최선은 상대가 택한 흑 G4였다. 평소였다면 26수에 E7을 뒀을 것이었으나 왠지 그 이후 흑이 F7으로 두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찾은 곳은 26수 백 F1이었다. 하지만 이는 -1짜리로 흑이 바로 27수로 E7을 두는 순간 이 곳을 선수로 둬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수도 찝찝한 수였는데 제일 먼저 생각한 곳은 G3였으나 이내 28수로 백 G5를 택하였다. 이후 흑 G3, 백 F2로의 진행을 생각하였으나 처음에 고민한 G3가 최선, 내가 택한 G5는 -6짜리 차선이었다. 또한 상대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29수 흑 F2를 택하였고 이는 내가 간과하고 있던 조용한 수이자 최선수였다.


이후에도 악수를 연발하였는데 아래쪽 흑의 벽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 30수로 백 G3를 택하였는데 이 때문에 우측으로 흑이 둘 곳이 많아졌다. 최선은 G6로 아래쪽에 백의 벽이 생겨도 흑이 뚫고 나오기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했다. 31수 흑 H5는 +8 최선이었다. 다음 32수 상황에서 E1과 H6를 고려하였고 백 H6, 흑 H7, 백 G6로 진행하면 우측 백의 벽이 두터워져서 운신이 어렵다는 생각에 32수 백 E1을 택하였으나 -16짜리 차선이었다. 최선인 33수 흑 H4 이후에도 고민의 연속이었다. H3는 F5라는 길을 열어줘 불리하다고 판단하였고 H6는 이후 하변에 벽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안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수는 34수 백 E8이었고 수치는 -26까지 떨어졌다. 이후 35수 흑 F7, 36수 백 H3, 37수 흑 H2, 38수 백 H6, 39수 흑 H7로 최선 진행이 이어졌다. 그 때 당시 둘 수 있는 선택지가 매우 적었기에 자명한 수순이었다.

이 이후에도 악수의 연속이었다. 오델로 대회에서는 승수가 같을 경우 돌 개수와 연관된 수치를 바탕으로 순위를 구분하기에 지더라도 최대한 돌을 많이 먹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승부가 크게 기울어졌을 때도 악수를 연발하면서 격차를 더 크게 벌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대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40수 상황에서 F6, F7이 흑이었고 이를 백으로 바꾸지 않는 편이 나았는데 최선 G2를 외면하고 -32인 40수 백 G6를 택하였다. 41수 상황에서 최선은 흑 G2였지만 우변을 통째로 내주는 전개가 꺼려져서 그런지 +18인 41수 흑 C1을 택하였다. 42수 상황에서도 역시 우상귀를 허무하게 내주고 싶지 않아서 백 C2를 택하였으나 이는 -22 차선이었고 우상 쪽을 먼저 정리하는 수순이 최선이었다. 다만 이 다음에도 흑의 최선은 G2였으나 +14인 43수 흑 B1을 택하였다.


이 때부터 특히 후반 정리하는 수순에 큰 아쉬움을 느낀다. 44수에서 최선 진행은 G2부터 시작하여 우상, 좌상 순으로 칸을 채우는 것이었다. 미리 우상에 대한 미련을 버렸어야했는데 실낱 같은 희망으로 생각하고 44수로 -24인 백 B2를 택하였고 흑은 최선인 45수 A1으로 응수했다. 46수 상황에서는 이미 승부가 기울어졌지만 최대한 수 읽기에 최선을 다해야했던 순간이었다. 실전에서는 급한 마음에 46수 백 A2를 택하였으나 흑이 47수 D1을 두면서 G열이 모두 흑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자기만 둘 수 있는 곳을 아껴두는 편이 좋다는 것을 망각하고 너무 안일하게 판단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우상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리해졌는데 생뚱맞게도 48수 백 G2를 택하였고, -46인 상태에서 최선으로 진행하다가 55수 흑 G7에 수치가 -38이 되고 51-13의 대패로 대국이 끝이 났다. 


대패를 당했기에 세계로 중계되는 경기에서 크게 졌다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5라운드에서는 범근 님께서 타카하시 히사시 3단에게 승을 하나 얻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복기 후에 느끼는 점은 이 판은 전반적으로 끈기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고수들도 분명히 틈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큰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빈틈이 생긴 순간을 놓치면 안된다. 만약 내가 불리한 상황이여도 꾸준히 버티다보면 승패가 뒤집어지지는 않더라도 격차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내 스스로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대국 직후에는 질 사람에게 졌다는 생각에 너무 침울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대국은 아직 두 번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다음 대국은 타츠미 유키코 六단으로 대회 이전부터 여러가지 악명으로 유명했다. 특히 인천 대회에서 소재영 四단께서 역전패를 당할 때의 일화를 후기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 판에서는 내가 흑을 잡고 Rose-Tamenori/Rose-Birdie로 진행하였다. 이 오프닝에서 진행되는 길 중 하나를 끝까지 최선 진행으로 외워뒀는데 상대도 이 길을 꽤 길게 알고 있는 듯 하였다. 나는 중간 중간 길에 익숙하지 않은 듯 잠깐씩 착수의 템포를 늦췄고 상대는 30수 넘어까지 즉각 응수를 하였다. 30수 이전까지는 상대가 틀 수 있는 분기점이 많아 걱정하였으나 특정 시점 이후부터는 흑백 모두 최선을 찾기 어려워져서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상대의 착수 또한 더뎌지기 시작했다.

속으로 내가 외운 것만 잘 기억하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외워둔 수순에 대한 의심과 판의 모양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수십 번을 뒀던 수순이기에 최선 수순에서 벗어났을 가능성은 낮은 것 같고 복기 때 비슷한 모양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봐서 잘못 뒤집어진 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상대가 큰 실착을 했는데 나도 큰 실착을 했던 것일수도 있다. 분명한건 먼저 대국을 끝낸 하야 님과 쿨러 님께서 관전을 하다가 내 착수에 크게 안타까워했고 내가 쉽게 이길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었다. 대국 결과는 22-42로 패배였다.

기가 막힌 일은 대국 이후에 있었다. 관전을 하던 하야 님께서 내가 패착을 둔 순간을 확인해보고 싶다고 복기를 해 달라고 하였으나 내 기억으로는 끝까지 복기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하야 님께서는 나를 데리고 타츠미에게 가서 유창한 일본어로 복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복기를 하고 싶으면 자기가 동대문에서 관광할 때 안내를 하라는 것이었다. 하야 님은 기가 막혀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복기는 흐지부지 되었다.

그 이후로도 복기를 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하였으나 판에서 봤던 모양이 다시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마 잘못 뒤집어진 돌이 있으니 복기가 안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잘못 뒤집은 돌 때문에 승패에 영향을 받으면서 복기를 거부하려고 핑계를 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혹시나 하며 복기를 시도했을 때 가능한 수순을 하나 찾기는 하였으나 기억이 오래되어 이 수순이 맞다는 확신을 갖기 어렵다. 그리고 지금 생각한 수순이 맞다는 생각보다 판에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 마음에 더 편할 듯 싶었다.

타카하시 히사시 三단을 이긴 이후로 아쉬운 수가 꼭 나오면서 내가 둔 대국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이 쌓였다.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대국이 없다는 것에 후회가 남기 시작했다. 내가 볼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좋은 수로 가면 지더라도 아쉬움이 덜하기 마련이다. 마지막 대국을 앞두고, 패배한 다섯 판에서의 아쉬움은 응축되어 불타는 전의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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