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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EGP Rome 이후 한 동안 오델로 공백기가 있었다. 현재 군 대체복무 중이기 때문에 4주 간 기초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로마 대회에서 돌아오는 날은 5월 19일, 기초군사훈련 기간은 5월 31일부터 6월 28일까지였다. 현역에 비해 턱없이 짧지만 훈련소에 있을 생각에 로마 대회 이후로 계속 의욕 없이 멍하게 지냈다. 훈련소 들어가는 것 자체도 걱정거리였지만 오델로 공백기가 생기는 것 역시 신경이 쓰였다. 스스로 오델로 실력이 안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씩 오델로를 못하는 시기가 있으면 레이팅이 떨어지고 실수가 잦아졌기에 꾸준히 연습을 하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바로 다음 대회가 7월 9일 명인전으로 훈련소 수료 이후 대회 준비하고 감각을 회복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소재영 四단 님이 비교적 최근에 4주 과정으로 훈련소에 갔다오셨고, 안에서 오델로를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참고해서 나도 훈련소 안에서 오델로 판을 만들기는 했다. 부식으로 초코칩 쿠키가 나왔는데 그 상자가 안쪽은 회색, 바깥쪽은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이었다. 아무 종이 한 장을 구해 뒷면에 가로 8칸 세로 8칸의 판을 그리고 쿠키 상자를 찢어 오델로 돌로 사용했다. 하지만 분대 내에 오델로를 아는 사람이 한 명 밖에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갖지 않아 나 혼자 둘 때만 사용했다. 또한 참고용으로 평소에 안 쓰던 Cow, Comp'Oth 등 오프닝을 적어가서 살펴봤다.


훈련소에서 나오고 대회까지는 일주일이 남았다. 수료하고 나온 날에 바로 대회 신청을 했다. 훈련소에 있는 기간 중에 신청이 시작되어 훈련소 나온 이후에 신청하려고 하면 마감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신청할 때에는 4명만 신청한 상황이었다. 3대 전국 대회 중 하나인데 참가가 저조한 것이 마음에 아팠다. 다행히 내가 신청한 이후 사람들이 신청하면서 총 참여 인원은 10명이 되었다. 이번 대회에는 유난히 사람들 일정이랑 맞지 않으면서 평소 뵙고 싶었던 재영 님, 범근 님, 하야 님, 쿨러 님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러나 다시 출근을 시작하면서 밀린 일을 처리해야했고, 그 주에 하필이면 교육이 잡혀있어서 정신 없는 나날을 보냈다. 훈련소에서 나온 다음 주를 쉴 틈 없이 보내다보니 어느새 대회 날이 다가왔다. 오델로 연습할 겨를 없이 감각이 애매한 상태에서 대회를 맞이하니 불안감이 몰려왔다. 평소처럼 시간을 넉넉히 잡고 출발하였는데 가는 길에 교통 사고와 도로 공사로 정체가 매우 심해 중간에 택시로 갈아탔다. 원래는 조금 일찍 도착해서 사람들이랑 안부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조금 늦게 도착했다. 오랜만에 뵙는 분들과 간단히 인사하고 대국 준비를 했다.


[1라운드 기보]

1라운드는 흑을 잡고 손진혁 무급과 상대하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나오고 난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인 판으로 두니 감회가 새로웠다. 상대 백이 직각으로 나오기에 Rose-Tamenori / Rose-Birdie까지 진행을 하였고 18수 백 E2는 -2짜리 차선으로 익숙치는 않았으나 꾸준히 최선을 유지했다. 상대가 22수 백 D8을 뒀는데 -11이었고 이 때부터 살짝 긴장이 풀어진 것 같다. 다음 23수로 최선은 H3인데 +3인 B6를 두고, 상대의 악수인 24수 백 A4에 대해서도 F8이라는 애매한 수를 뒀다. 상대의 빈틈은 여기까지였다. 29수 흑 D2부터 유불리가 뒤집어졌는데 굳이 백의 위쪽 벽을 뚫고 나갈 필요가 없었다.  33수 H6는 일찍 들어갈 필요가 없는 수였고, 35수를 둘 상황에서는 C2로 백의 F2 착수를 막는 것을 간과했다. 이후 서로 최선보다 차선으로 가면서 수치가 -4 ~ -8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42수까지 진행하였다.

승패를 좌우한 수가 43수 흑 A2로 최선은 E1이었으나 실전에서는 F2, G3가 모두 흑으로 바뀌는 게 꺼려서 피한 수였다. 48수 백 A7은 차선으로 최선 A6를 뒀으면 흑은 A1 코너와 블랙라인 중 하나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참 전부터 상황이 쉽지 않게 느껴져서 시간을 오래 쓰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해졌다. 이후 계속 차선으로 진행하다가 53수를 둘 상황에서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다. -30인 G2를 뒀는데 이는 백이 H1을 둬도 흑이 G1을 둘 수 없기 때문에 좋지 않은 수였다. 수 읽기를 하면서 이 부분을 생각했는데 장고하는 과정에서 이를 잊고 그냥 둬 버린 것이다. 시험 때 고민하다가 답을 바꿨는데 바꾸기 전 답이 정답일 때의 안타까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나는 착수하는 순간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탄식을 내뱉을 뻔 했다. 하지만 겨우 표정으로 드러나는 것을 참았다. 다행히 상대가 H1을 간과하며 25-39로 첫 경기에서 패하였다.


한일전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1라운드에서 패한 순간이었다. 대회 처음 출전하시는 진혁 님과 안태영 님이 1라운드에서 1승을 하는 파란을 일으키셨다. 반대로 나는 오랜만에 두니 생각의 폭이 좁고 수 읽기가 안되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스위스 방식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대회에서 1패를 안고 시작하니 불리함이 크게 다가왔다. 그런데 2라운드 상대는 껄끄럽게 생각했던 김용범 初단이었다.


[2라운드 기보]

내가 백을 잡았는데 평소처럼 직각으로 가지 않고 대각으로 갔다. Heath-Bat로 갈 것이라 예상했고 그대로 진행하였다. 이는 지난 전국선수권 대회 때 준비했던 것이었으나 늦게 쓰게 되었다. 대회 직전에도 이 이후 진행을 계속 준비했는데 초반에 실수를 했다. 10수에서 C1을 둬야하는데 -4인 C6를 둔 것이다. 이 때부터 서로 꼬이기 시작했다. 14수를 둘 상황에서는 F1을 뒀을 때 흑이 F2를 두면 흑의 두터운 벽을 뚫고 나가는데 불리해보였고, D6를 택하였는데 -8짜리 차선이었다. 여기에서 상대는 최선인 F2 대신 C1을 택하였다. 다음에 흑은 17수를 최선인 G4 대신 -4인 C2를 두면서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이후 24수까지 -2 ~ -4 사이에서 진행되었다.

승부는 25수에서 기울었다. 최선은 B6로 백이 B5를 못 두는 것을 이용하는 수인데 흑이 G5를 두면서 우변 쪽에 여유수가 생길 여지가 커졌다. 흑은 27수에서도 B6를 보지 못하고 G1를 두면서 불균형한 변을 만들었으며, 흑으로 하여금 좌상쪽 착수를 꺼리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서로 -14 ~ -22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53수까지 진행되었다. 1라운드의 패배 때문에 신중히 두다보니 시간이 부족하였고 +16인 최선수 A7, H1를 놔두고 최악수 +2인 C8으로 갔다. 생각을 잘못해서 A7을 두고 진행하다보면 하변을 흑에게 내준다고 착각한 것이 컸다. 대회가 끝나고 결과를 보니 내가 이 때 최선수를 뒀다면 등수가 달라지고, 승단까지 가능했다. (자세한 설명은 2편에 추가) 그렇게 대국은 31-33 신승으로 끝이 났다.


[3라운드 기보]

3라운드에 1승자를 만날 줄 알았는데 무승자인 홍형범 님을 만났다. 내가 흑을 잡았는데 상대가 평행 오프닝으로 진행했다. 대회에서 처음 본 오프닝으로 직각이나 대각 오프닝보다 불리하기에 실전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백 12수 F7, 백 14수 C2로 흑의 우측과 상측을 감싸고, 백 16수 D8으로 우측 백의 벽이 두터워지면서 승기가 기울었다. 특히 백 20수 B3로 백이 A4에 착수가 불가능해지면서 좌변에 여유수가 많이 생기는 Boscov swindle 모양이 나타났다. 이후 여유롭게 흑은 A7, A4, A2 순으로 착수를 이어갈 수 있었다. 38수를 두는 상황에서는 돌 배치에 대한 혼선으로 잠깐 대국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기록한 기보대로 복기를 하다가 47수 이후로 진행이 불가능하였는데 아마 돌 뒤집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최종 결과는 50-14로 흑 승이었다.


3라운드가 끝나고 점심 식사가 있었다. 점심 비용까지 협회에서 지원이 있었고 지난 선수권 대회 때 찾은 중국집을 다시 갔다. 4라운드가 남은 상황에서 어렵게 느껴지는 상대를 많이 만나지 못했다는 것에서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안중근 의사의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라는 말처럼 오델로도 꾸준히 두지 않으면 실력이 떨어지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지나온 3라운드보다 앞으로 갈 4라운드가 멀게만 보이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 : 제 4회 명인전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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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조절을 대차게 실패해서 양이 엄청 불어났습니다. 평소보다 길지만 천천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전 편 : EGP Rome 1편 / 2편 / 3편 / 4편


마지막 대국 이후에 점심 식사가 있었으나 힘이 쭉 빠져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식사 중간, 사람들이 페어링을 보여주는 컴퓨터와 모니터로 와서 자기 순위를 확인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상위권 순위가 궁금하여 위쪽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내 이름이 나올 때까지 한참 밑으로 내려가야 했다. 43명 중 28등이었다. 5승자 중에서는 중간 정도 순위였는데 아마 4라운드의 대패가 영향을 미쳐서 승수가 같은 사람들 중에서 순위가 밀린 것 같다. 대회 시작 전부터 잘 할거라는 기대는 없었지만, 만족스러운 성적도 아니었기에 없던 입맛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억지로 먹으면 체할거 같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대충 점심을 해결하였다.


점심 식사 이후 시상식이 있었다. 자세한 수상 내역은 모르지만 이번 대회가 EGP Rome과 더불어 이탈리아 내부의 그랑프리 대회를 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시상식 초반에는 이탈리아 선수들이 상을 많이 받았다. 홈페이지 설명에는 전체 1, 2, 3위, 여성, 어린이, 이탈리아 카테고리 A, B에서 1위를 한 사람이 상을 받는다고 나와있었다. (카테고리는 레이팅 등 실력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 같은데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시상식 때 설명을 이탈리아어로 하는 바람에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시상이 끝난 이후 EGP에 대한 수상이 시작하였다. 우선 각 국가 별로 최상위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 메달 수여가 있었다. 처음에는 한 두 명만 온 나라에도 메달을 줄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혼자 참석한 Imre Leader가 메달을 받는 것을 보고 나도 메달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조한 성적으로 메달을 받는게 창피했다. 하지만 메달에서 오델로 하나 때문에 국경을 넘어 온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배려한다는 것이 느껴졌고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내 성적에 만족을 못하는 마음도 컸기에 복잡미묘한 감정이 섞여 이상한 표정으로 메달을 받았다.

  


이후 수상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이 상을 받았다. 아직 결승전이 진행되지 않았기에 최종 1등은 아니었으나 일본인 중 예선 1위로 국가별 메달을 받은 것이다. 이후 일본 선수들이 준비한 선물을 유럽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은 유니클로에서 나온 오델로 판 디자인의 티셔츠 두 장을 줬는데 개인적으로는 입고 다니기 난해한 옷이라고 생각했다.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은 자신의 캐릭터와 '나이스 배틀'이라고 적혀있는 열쇠 고리를 10, 20, 30, 40등에게 줬는데 개인적으로 욕심이 나는 물건이었다.


수상식 이후 예선전에 사용한 판을 정리하고 결승전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한편에서는 인증서 같은 종이에 등수를 적어서 나눠주고 있었다. 28이라는 숫자를 보니 내 실력의 부족함이 다시 내 마음 한 구석을 찔렀다. 이 종이를 와신상담처럼 계속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내가 졌던 상대에게 복수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결승전은 시작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슬슬 한 두 명씩 빠져나갔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서로 대국을 하기도 했고 개인적인 일을 하기도 했다. 나는 대회에서 나랑 대국을 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먼저 간 사람들이 있어서 다 찍지는 못하였으나 찍은 사진을 보니 대국했던 순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결승전과 3, 4위전을 안 하는게 아닐까 의심이 들 때쯤 결선이 진행된다는 안내가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보니 이미 대국자들은 자리에 앉아있었고 대국실은 관전자로 가득 찼다. 결승 1번기는 프랑스의 Thierry Lévy-Abégnoli가 중계를 하였고, 3, 4위전은 스웨덴의 Benkt Steentoft가 기보 입력을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들어가 대국을 봤다. 하지만 판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불편하여 밖으로 나왔다. 지하의 큰 모니터에 Live Othello 사이트 화면을 띄우기는 하였으나 중간에 문제가 생겨 착수를 해도 자동으로 진행되지 않아 위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지하에서는 와이파이와 데이터 모두 사용할 수 없어서 Live Othello 사이트에서 중계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간간히 중계를 보면서 쉴 생각을 했고 1차전은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의 승리로 끝났다. 이어서 3, 4위 전에서 나랑 같이 첫째 날 연습 대국을 뒀던 Paolo Scognamiglio가 28-36으로 패배하여 4위를 하고, 3위는 Donato Barnaba로 결정되었다.



결승 2차전 때에는 비교적 자리가 넉넉해서 관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하의 공기가 탁하고 더워서 그런지 답답해서 대국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대국장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중반에 Live Othello 채팅에서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유리한 것 같다는 말이 나오길래 궁금해서 대국장 안으로 들어가봤다. 들어가기 직전에 중계 상에서는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8의 우위를 갖고 있었다. 이후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이 차선수를 한 번 두면서 27-37 백을 쥐고 있던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의 승리로 끝이 났다.

복기 결과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이 유리한 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견고하게 버틴 대국이었다. 승부가 갈라진 순간은 35수 흑 C1으로 -2인 E8 대신 -6인 자리를 택하면서 승부를 뒤집을 기회를 거의 상실했다. 만약 35수를 E8을 뒀다면 이후 백의 대응에 맞춰서 좌변, 상변, 하변 중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C1을 두면서 상변 쪽에서 흑이 운신할 폭이 좁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백에게 상변으로 갈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상태에서 하변으로 가야하기에 불리함이 존재한다고 본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이 미세한 차이를 인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실전에서는 흑에게 기회가 한 번 더 찾아왔다. 백이 42수 F1이라는 수로 +0이 되었다. 이 때 백의 최선수는 B2, D1, G2가 있는데 모두 바로 코너와 변을 내주게 된다. 나중에는 변 하나를 차지하거나 안쪽에서 이득을 보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는데 머리 속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바로 최선인 C1 대신 A3를 가면서 승부의 추가 백으로 기울어졌다. C1을 둘 경우 이후 백은 B7을 둬야 하고, 좌하의 두 칸을 들어가지 않고 백이 먼저 B8을 둬서 패리티를 뺏는 진행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흑이 A3로 가면서 네 변을 서로 나눠가지고 백이 패리티를 갖고 있는 상태로 대국이 마무리되었다.

내가 43수 흑이 둘 차례에서도 최선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종반, 변과 코너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다른 라인의 변화를 고려하지만, 내부의 변화를 세세하게 신경쓰기 어려워서 수읽기에 확신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중후반에서 어느 정도까지 수읽기를 하고 착수를 들어가야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또한 어떻게 해야 중후반의 어려움을 극복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결승 2국이 끝나고 바람을 쐬러 나갔는데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는 매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밖에서 담배를 폈다. 나는 그에게 감동적인 대국이었다고 하면서 3국도 잘 두기를 빈다고 하였다. 대국장에 관전자가 많아 서서 보는 것이 불편했기에 대국이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대국실으로 가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대국실로 들어가려던 찰라, 프랑스의 Marc Tastet이 자기 소개를 하면서 다가왔다. 내 기보를 찍어갈 수 있냐는 말에 잠깐의 고민을 했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기보가 기록으로 남는다고 하니 괴로워졌다. 나중에 그 기록을 마주하면 중학교 때 싸이월드에 남긴 글을 보는 것처럼 부끄러울 것 같다. 하지만 잘 두던 못 두던 어쨌든 대회의 기록이기 때문에 제공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먼 미래에 누군가가 나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기보를 본다면 내 실력을 과소평가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보를 전달하고 대국실에 들어가니 Live Othello 중계를 하는 Thierry Lévy-Abégnoli 외에 아무도 없었다. 대국실 옆 조그마한 방에서 혼자 쉬고 있던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이 먼저 들어왔고,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도 이어서 들어왔다. 이전 대국과는 달리 관전자가 나뿐이었다. 결승전을 하면서 다른 일정이 있는 사람들이 가면서 1/3 정도만 남아있는 상황이었고 그 중 대부분은 대회장 정리를 하고 있었다. 두 일본 기사는 이전 판 복기를 잠깐 하다가 대국을 시작하였다. 세계 최고의 오델로 플레이어인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의 대국을 바로 옆에서 관전하는 것 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내가 직접 대국을 하는 것처럼 흑, 백 입장에서 모두 생각을 하게 되었고 대국자가 둔 수와 내 수를 비교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흑을 잡았다.


흑은 Horse를 택하고 26수까지는 형세가 팽팽하였다. 이 때까지 나도 3~4수 정도 제외하고 똑같이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세 네 수의 차이가 승패와 실력을 가르는 요소이다. 오델로는 최선을 잘 찾는 것보다 실착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관전자는 부담이 없기에 수읽기를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반면, 대국자는 이후 진행 중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야 되기에 부담이 더 커지고 결정이 어렵다. 이 때까지만 해도 대국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팽팽하던 형세는 27수 흑 E8으로 -4, 31수 흑 B6로 -8, 37수 흑 A4로 -10이 되면서 흑에게 까다로운 상황이 되었다. 27수를 둘 상황에서 나는 관전하며 C2, F2 등 상변 위주로 생각을 했다. 그러나 흑이 E8를 두는 것을 보고 굳이 하변 쪽을 흑으로 꽉 찬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 외에 특별한 의구심이나 위화감이 든 상황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대국이 흑에게 불리해보였다.


백 38수 상황에서는 H6를 염두에 두고 상대 수를 줄이면서 몰아갈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은 B7을 택하였다. 나는 이 때 대각이 잘릴 방법이 있기에 B7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수 역시 최선이었다. 내 실력으로는 도대체 어떤 수 읽기를 하고 B7를 택하였는지 알 도리가 없다. 아직까지 나는 코너 주변의 모양이 종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수 읽기가 부족한 것 같다.

곧 이어 대국 전체에서 가장 충격적인 수가 나왔다. 바로 41수 흑 G7이었다. 41수를 둘 상황에서 G1 밖에 둘 곳이 없다고 봤고, G7을 두고 대각을 차지해도 곧바로 백이 H5로 자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백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착수를 했다. 나는 이 순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불리한지 궁금해서 조용히 대국실을 나와 Live Othello 채팅 반응을 확인해봤다. 역시 흑이 갑자기 불리해졌다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이 수로 -10이 -30으로 바뀌며 흑에게 남은 기회가 사라졌다. 이후 흑은 당황하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자포자기한 것처럼 허탈하게 웃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결승전 마지막 대국이 11-53으로 끝났다. Live Othello 채팅에서 관전하는 미국의 Ben Seeley는 "I imagine this game was Naka's worst game, really sucks to have it in the decisive game."라고 표현했다.


   

결승전이 끝날 때 쯤 Francesco Marconi와 Alessandro Di Mattei가 들어왔고, 결승 마지막 경기의 60번째 수가 놓여지자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을 들어올려 목마를 태웠다. 이틀 간의 EGP Rome 여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바로 1, 2, 3위에 대한 트로피 수여가 있었다.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은 트로피로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을 노리는 듯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트로피 수여식 할 때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먼저 간 상황이었다. 마지막에 네덜란드의 Jan C. de Graaf가 6월에 있는 EGP Rotterdam을 홍보했다. 그는 EGP 홍보 전단지를 주면서 못 올걸 알지만 그래도 오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북적북적했던 대회장이 한산해지는 것을 보니 세계인들과 오델로를 하며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다시 올 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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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풀이에는 다수의 이탈리아 선수와 프랑스 선수 세 명 (Takuji Kasiwabara, Marc Tastet, Thierry Lévy-Abégnoli), 일본 선수 두 명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 스웨덴의 Benkt Steentoft 그리고 나까지 참석했다. 뒷풀이의 백미는 Alessandro Di Mattei가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이 서로 흑백을 바꾸며 복기를 하는 것이었다. 타카나시가 상대가 뒀던 수가 아닌 최선수를 둘 때 Alessandro는 자기가 뒀던 수를 둬 달라고 했다. 반면 타카나시가 불리한 수를 뒀던 순간에는 Alessandro가 최선으로 두면서 이 길로 가보고 싶다고 하면서 앙탈(?)을 부렸다. 나는 주변에 앉아있었던 Benkt와 이탈리아 선수들과 담소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마쳤다.

식당 앞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데 오델로 생각만 하던 이틀이 끝났다는 사실에 허탈함을 느꼈다. 오델로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없기에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국경에 관계 없이 서로 동질감을 느낀 것 같다. 이틀 동안 오델로를 두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결과 역시 만족스럽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원 없이 오델로 둔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외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대국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어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되었을 건데 언어의 문제와 소극적인 성격 탓에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델로를 취미로 계속 깊게 파고들 사람으로서 국제 대회는 꿈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초 한일전을 참가하기는 했지만 여러 국적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국제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성과는 실망스러우나,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목표로 하는 입장에서 미리 매를 호되게 맞은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겪어보는 2일 간 11라운드 경기는 내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많이 되었다. 특히 이튿날 체력이 완벽하게 회복이 되지 않으면서 만족스러운 경기를 못했다. 시차 영향 역시 무시하지 못 할 요소인 것 같다. 만약에 유럽이나 아메리카 쪽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싶으면 체력 관리와 시차 적응 역시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평상시에도 컨디션에 영향을 크게 받는 느낌이 있어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일단 내린 결론은 아직 중반 수읽기의 요령과 실력이 부족하고 이를 그냥 무작정 가능한 경우를 최대한 생각해보려는 것이 이유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찾는 수도 놓치거나 형세 판단을 엉뚱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부분을 보완할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유럽 선수들과 상대하면서 세계 레이팅에 비해 실력이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가나 대륙 별로 세계 레이팅의 편차가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팅 편차가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전반적으로 내가 만난 모든 유럽 선수들이 중반 이후 수 읽기가 탄탄한 느낌을 받았다. 초반, 중반, 종반 모두 상대보다 강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다보니 운이 좋아 한국인 최초로 Othello European Gran Prix를 참가하게 됐는데 그에 걸맞는 성적을 내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EGP Rome이 세계 레이팅에 반영되면서 한국 선수들의 세계 레이팅이 일괄적으로 30정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 때문에 한국 오델로의 수준이 저평가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한국 선수들의 레이팅이 동반 상승한 경우도 있다고 하니, 나중에 발전된 실력으로 이번 실책을 만회하고 싶다. 


오델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은 좁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델로를 단순히 즐기는 것 이상으로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한국을 벗어나 보는 것도 추천을 하고 싶다. 한국, 일본, 유럽 간에 오델로 두는 스타일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선수들이 최선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고 깊게 연구한다는 것은 한일전에서 느낀 적이 있다. 유럽 선수들은 오프닝에서 최선을 따라가기보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유럽 선수 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체감하지는 못하였다. 만났던 상대 중 초중반에 거의 최선수로 대응하면서 나를 어렵게 만든 상대도 있었다. 내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일본 선수들과 유럽 고수들 모두 머나먼 구름 위의 신선처럼 느껴졌다. 아직 대회를 참가한지 1년도 안 됐으니 앞으로 꾸준히 고수들과의 간극을 좁힐 방법을 찾고 실천에 옮기며 부딪혀야 할 것이다.

(세계 연맹 홈페이지 대회 일정 캘린더)


아직 한국 오델로가 발전할 길이 남아있기에 외국 선수들과 교류하고 대회에서 같이 경쟁하는 것은 개인과 한국 오델로계에 모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선수들 레이팅을 30씩 깎아 먹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다만 세계 대회가 아닌 오델로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무리해서 아시아권을 벗어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해외를 방문할 일이 있을 때 추가적인 일정으로 오델로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부담이 덜 되고 재미있을 것이다. 세계 연맹 홈페이지나 방문할 국가의 오델로 협회 사이트에 들어가서 대회 일정을 확인해보면 된다. 만약 유럽으로 장기간 배낭여행을 간다면 European Grand Prix의 일정에 맞춰  여행 계획을 짜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이미 대학을 졸업하여 길게 여행을 못 가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앞으로 해외에 나갈 일이 있으면 그 나라 오델로 대회 일정과 겹치기를 간절히 바랄 것 같다.

오히려 세계 대회 이외의 다른 해외 대회를 나가고 싶다면 아시아권 대회를 추천하고 싶다. 특히 일본 대회를 참가하는 것은 일정과 비용 측면에서 무리가 덜 될 것이다. 올해 안으로 일본의 대회도 한 번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델로 최강국에서 스파링을 계속 하다보면 고수를 상대하는 힘이 생길 것이다. 일본 외에도 아시아권 나라 중에서 중국, 태국, 홍콩, 싱가폴 등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추가로 굳이 세계 대회가 아닌 외국 대회에서 실력을 키우거나 성과를 내야된다는 의무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오델로라는 공통 분모로 외국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고 친해지는 것도 해외 대회의 즐거움이다. 실제로 EGP Rome에서 만난 외국 사람들 때문에 해외 오델로 페이스북 그룹이나 페이지를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문제도 많이 풀고 SaioApp이라는 새로운 오델로 분석 어플을 알게 되었다.


말을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EGP Rome을 속담에 비유하면 서울까지는 아니고 광역시에 갔다고 할 수 있겠다. 갓 시골에서 도시로 발을 들인 26살 청년은 큰 물에서 호되게 데이고, 시원하게 깨졌다. 하지만 청년에게는 시간이 무기이다. 지금까지 오델로를 둔 시간보다 앞으로 오델로를 둘 시간이 더 길다. 그러기에 시골 총각은 지금부터 도시를 동경하면서 달려갈 것이다. 앞으로 달려가는 길에 빛이 있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동시에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여정을 함께하고 싶다.


(사진 출처 : Facebook page Othello Italy - Photo archive)


뒷이야기 1.

대회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기억에 깊게 남은 사람은 Leonardo Caviola와 Alessandro Di Mattei가 있다. 우선 Leonardo는 EGP 참가를 위해 연락했을 때 답을 해 준 사람으로 대회 전부터 대회 끝날 때까지 도움을 많이 줬고, 어색함을 느끼는 나에게 살갑게 다가와줘서 고마웠다. Alessandro 역시 대회장에 들어가 가만히 있던 나에게 먼저 다가와 연습 대국을 하자고 했으며 호탕하고 밝은 성격 때문에 같이 있는 사람도 힘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또 프랑스의 Thierry Lévy-Abégnoli는 첫인상에서 진중하고 조용할 것 같았는데 매우 유머러스 한 분이었다. 에피소드 중 하나로 단체 사진을 찍을 때 표정이 굳어있는걸 보더니 말 울음소리를 내서 모두를 웃겼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여류 기사들은 식당 등에서 이탈리아어를 몰라 고생할 때 영어로 설명해주면서 많이 도와줬다.


뒷이야기 2.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나에게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을 소개하면서 제 1회 한일전 때문에 한국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카지마 八단은 2회 한일전 때도 와서 두 번 왔어야 했는데 안 왔다고 하면서 타카나시 九단을 짓궂게 째려봤다. 그 눈빛에 난처한 눈치를 보이는 모습에서 인간미가 느껴졌다. (다만, 타카나시 九단은 2016년 2월에 제 25회 전국 오델로 선수권 대회 때 초청되어 온 적이 있기에 한국에 두 번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뒷이야기 3.

영국의 Imre Leader는 대회만 참가하러 온건지, 아니면 다른 일이 있어서 온 건지 물어봤다. 나는 학회 때문에 왔다고 대답을 했다. 이 대답에 Imre Leader는 대학 교수의 직업 때문인지 그 이후 어느 분야를 연구하냐, 대학원생이냐, 연구원이냐, 석사 과정이냐 박사 과정이냐 등 질문 폭탄을 던졌다. 아쉽게도 연구원으로 대체 복무를 한다고 대답하기에는 추가적으로 설명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뒷이야기 4.

테이블에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옆에 영국의 Imre Leader, 프랑스의 Takuji Kasiwabara, Marc Tastet, 호주의 George Ortiz가 있었다. George Ortiz가 인사를 하면서 말을 건냈고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보더니 2000년 대 초반에 한국에서 세계 대회 준우승한 사람이 있었는데 알고 있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2005년에 이광욱 님 (현재 九단, 준우승 이후 八단 승단)께서 준우승을 했다고 설명하며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볼짱 님께서 외국 오델로 선수들이 한국 사람을 보면 이광욱 九단을 아냐고 물어본다고 했는데 그 일이 그대로 일어났다. 오델로 기사 카톡방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광욱 九단의 제자라고 소개하라는 말도 있었는데 내 실력이 부족하여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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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편 : EGP Rome 1편 / 2편 / 3편

시차 때문에 1시에 한 번 일어났다가 5시 반 정도에 다시 일어났다. 아침은 미리 사 둔 모닝빵에 딸기잼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이상하게 저렴하게 구한 숙소는 똑같이 자고 일어나도 덜 개운한 느낌이 있었다. 또 숙소에서 이른 아침 시간에는 온수를 틀지 않아 늦게 씻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대회장이 가까워서 시간을 맞춰 가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대회장에 가니 대회 준비를 하는 이탈리아 선수들이 분주하게 판을 세팅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체력을 아끼기 위해 절전모드마냥 멍 때리면서 대회 시작을 기다렸다. 9시 반에 시작이라고 하였으나 대회장 세팅, 페어링 등으로 시작이 약간 지연되었다.



8라운드 상대는 Michele Diodati라는 이탈리아 선수였고 나는 백번이었다. 전날에는 Tiger (Many black)를 쓰는 사람이 없었는데 8라운드에 처음 나왔다. 나는 백 8수 E7을 두면서 Banana로 대응했다. 상대는 13수에서 최선인 F4 대신 -4인 E8으로 응수했다. 또한 흑 15수 C3 역시 악수였으나 백도 C5 ~ E7까지 대각을 신경쓰지 못해 최선인 B5 대신 F8을 택하였다. 또한 백이 22수를 둘 상황에서 E1을 뒀는데 이 때 상대 흑이 G3를 두면 C2, G6를 모두 못 둔다는 것을 간과했다. 하지만 상대 역시 -1인 F1을 다음 수로 택하였다. 상대 흑의 악수는 27수에서 나왔다. 최선인 D1 대신 H5를 택하였는데 우변 쪽에 기회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28수로 백은 C8을 뒀는데 상대가 C7을 두면 그냥 D8으로 하변에 돌 4개짜리 균형 변을 만들고, D8을 두면 C7, G6가 여유수가 되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흑이 우변 쪽을 두면 흑의 우측 벽이 두터워져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상대는 흑 29수로 G4를 뒀고 D8이 먼저 가야될 수라고 판단했다. 상대 흑은 31수에서 최선 G6 대신 C7을 뒀고 유리함이 유지될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유리함 속에서 백 34수 H3라는 큰 실착이 있었다. 이후 흑이 H4, 백 H7, 흑 G2로 진행하면 백은 우상에서 손을 빼고 다른 곳으로 갔어야 했다. 하지만 상대도 이 대응을 놓쳤고, 37수를 두고나서는 백의 우위가 +24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생각이 너무 짧았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그래도 들어맞았다. 백 D1, 흑 H1, 백 G2로 진행하면 백이 둘 곳이 극히 제한되고 벼랑 끝으로 몰린다는 것은 생각했으나 이렇게 된 이상 H7으로 끼워넣기하면 판이 더 커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고 구체적인 생각 없이 백 38수로 G7을 둔 것이다. 이 순간 +24의 우위는 무위로 돌아갔다. 이후 흑 D1, 백 B1, 흑 H8, 백 H7, 흑 G8, 백 H1, 흑 G2로 진행하는 것이 최선인데 변만 차지하고 내변에서 큰 손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상대 흑은 39수로 H8을 먼저 들어가는 차선수를 택하였다.

깊게 고민한 시점은 44수를 둘 때였다. 일단 B1보다는 B2가 2행을 차지하는 측면에서 나아보였다. 하지만 B8을 두지 않으면 백에게 G8 뿐만 아니라 B8이라는 여유수를 주게 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상대가 G8을 뒀을 때 백이 B8을 두는 것을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B2를 택하였으나 최선은 B8이었다. 이 이후 계속 장고를 하며 시간을 충분히 썼다. 이후의 착수는 행을 따라 백 돌을 확보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 하에 진행하였다. 상대 흑이 45수에서 최선 B8 대신 -4인 B3를 뒀고, 53수에서는 최선 B7 대신 -6인 B6를 뒀다. 마지막으로 흑 57수에 A6 대신 A5를 두면서 게임은 28-36으로 이기게 되었다. 상대는 마무리를 잘 했다고 하며 악수를 청하였다.


이제 세 경기 중 몇 승을 하느냐가 성적을 크게 좌우하는 상황이 되었다. 첫째날 경기에서 호되게 당해서 그런지 바짝 긴장이 되었다. 밖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몇 승 했냐고 물어보길래 5승이라고 대답했다. 질문에 답한 다음 5승, 5.5승, 6승, 6.5승, 7승이라 혼잣말을 하면서 가능한 승수를 읊어보았다. 0.5승이 증가함에 따라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랐다. 그 사이에 9라운드 페어링이 진행하였다. 자세히 살펴보는데 테이블 번호는 8번이었다. 낮은 테이블 번호는 그만큼 센 상대를 만난다는 것을 뜻했다. 눈으로 줄을 따라가다보니 위 아래로 움직이면서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는데 오래 걸렸다. 연습 대국 때 내 숨통을 조이는 듯한 느낌을 줬던 Alessandro Di Mattei가 다음 상대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재차 확인해봤지만 정해진 상대는 바뀌지 않았다.



내가 흑번이었는데 상대 백이 대각으로 받았다. 여기에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Buffalo로를 주력으로 쓰기는 했으나 깊게 아는 길은 많지 않아 모르는 길로 빠질 가능성이 높았고 이후에 악수로 판이 기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Cow로 진행했다. 그러나 7수에 Rose-v-Toth로 갈 자신감은 없었다. 그 쪽 길은 안 본지 오래 되어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 선수권 대회용으로 잠깐 봤던 Cow Bat / Bat / Cambridge를 택하였다. 이후 흑 11수 E6를 두며 Melnikov / Bat (Piau Continuation 1)로 진행하였고 백 20수 B3까지 상호 최선으로 진행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 기억이 희미하여 시간을 소비하면서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첫 실착은 흑 21수 B6로 최선은 B4였다. 하지만 상대도 여기에 최선이 아닌 차선 B4로 받았지만 바로 흑 23수 A4라는 -8짜리 수를 뒀다. 이는 좌하 쪽으로 백이 둘 수 있는 곳을 늘여서 불리하다 생각하며 최선은 A3였다. 이 때부터 잘못 두면 회복이 불가능한 사태까지 갈 것이라 생각하여 장고를 거듭하였다. 수치 상으로는 흑 29수 G3도 차선으로 최선은 D7과 G5였다. 하지만 상대 백이 30수 C6를 두니 둘 곳이 거의 없어보였다. 하변 쪽은 흑의 벽이 두터워지는게 꺼려졌고 장고 끝에 31수로 G2를 뒀다. 우상 쪽에 백이 두기 껄끄럽게 만들면서 나중에 A6를 두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때쯤부터 바로 응수하던 상대도 조금씩 착수가 늦어지기 시작했다. 상대는 내가 두고 싶었던 A6를 먼저 선수로 차지하였다.


상대 백의 34수 F7 이후 시간이 부족하지만 섣불리 두면 안된다고 생각하여 생각을 시작했다. F6에 두면 6행이 모두 흑으로 바뀌는게 꺼려져서 피했고 이후 백이 응수할 때 흑이 둘 곳이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E7을 뒀는데 전자가 최선이었다. 이 다음부터는 생각할 시간이 부족해서 충분히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백의 D8 대응을 생각하지 못하고 흑 37수로 E8을 바로 둬버렸다. 이 때 C8을 둘 경우 A7부터 F2까지 이어지는 X라인을 차지하여 상대가 G1을 두기 어렵게 만든다. 이후 둘만한 곳이 얼마 없어서 그냥 응수하다가 42수 상황에서 상대가 최선 G5를 놓치고 +8인 C7을 뒀다. G5를 둘 경우 흑이 F5를 둘 수 없기에 최선인 것 같았다.

만약에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면 이 지점에서 쓰고 싶었으나 충분히 수읽기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 때도 C8으로 C5 돌을 흑으로 바꿔 이후 G5에 착수해도 백이 G1에 두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급하게 선택한 수는 -30인 흑 B8의 경우 백이 최선 진행을 따라 가면 하변, 좌변, 상변을 모두 백에게 내주게된다. (흑 B8, 백 C8, 흑 G8, 백 G5, 흑 G7) 이런 진행을 피하려고 화이트라인의 흑돌을 지키려고 하면 흑이 G7을 둘 때 G열이 모두 흑으로 바뀌어 백이 G1을 두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흑 B8, 백 C8, 흑 G8, 백 G5, 흑 F5, 백 H6) 하지만 상대도 이 수를 찾지 못하였고 +16인 백 44수 H6를 택하였다.

이 때부터는 거의 노타임으로 뒀는데 흑 45수 G5는 -32로 흑이 F5를 못두는 걸 간과한 수이다. 상대 백도 최선 H5를 놓치고 +18인 F5를 뒀으나 블랙라인을 자세히 못 보고 흑 C8, 백 A8, 흑 B7를 생각하고 그대로 대국에서 이어졌다. 하지만 바로 백이 H1을 둘 때 대각이 모두 뒤집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흑 47수로 최선은 G7이었다. 그 이후 상호 최선 진행으로 이어지면서 13-51로 패배로 끝났다.


초반에 시간을 많이 써서 중후반에 시간이 부족한 건 아쉽기는 하였으나 그러지 않았으면 초반에서 실수를 하면서 판이 어려워졌기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결승전이 진행될 때 Alessandro Di Mattei는 나한테 대국을 제브라로 분석해봤냐고 물어보면서, 오프닝에서 내가 어느 정도 유리했냐고 물어봤다. 대국 내내 리드를 빼앗기지 않은 사람이 정반대로 물어보니 어리둥절해져서 다시 물어봤더니 제대로 들은 것이 맞았다. 내가 아니라 당신이 +8에서 +14 정도 유리했다고 대답을 했다. 상대가 오프닝에서 나한테 유리함이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냥 질 만한 사람한테 졌다는 생각을 하고 남은 두 판 중에서 1승이라도 거두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두 번째 판을 기점으로 체력과 집중력이 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첫째날 막바지보다 더 힘들다는 느낌이 들면서 초반에 실착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10라운드에서 나는 백번이었고, 상대는 전날 저녁 식사에서 한글을 할 줄 알았던 이탈리아 선수인 Paolo Tormene였다. 한 번 얼굴을 보기도 했고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밀감을 느껴서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오프닝은 8라운드와 동일한 Banana였다. 하지만 상대 흑은 8라운드 경기와는 달리 또 다른 최선인 9수 C6로 대응하였다. 흑 11수 F4는 +0짜리 차차선으로 이에 대한 대응을 잘 모르고 있었다. 백 D1, 흑 F3 같은 진행을 피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백 12수로 C3를 뒀으나 D1이 최선, C3는 -4였다. 하지만 상대 역시 여기에 최선으로 반응하지 않고 +1인 흑 13수 F3를 택하였다. 그러다가 19수에 상대 흑은 최선 F8 대신 -3인 D2를 뒀고, 다음에 백은 최선 G6를 놓치고 -4인 B6를 뒀다. 백이 20수로 G6를 둘 경우 대각으로 뒤집어지지 않으면서 G5를 흑이 당장 둘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득이다. 백 22수 G6를 두면서 이후 진행이 흑 E8, 백 G5, 흑 G4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되었으나 이 수는 차선이었고 최선은 흑의 벽을 건드리지 않는 E1이었다.

백 26수를 둘 때에는 C2, C8, H3에서 고민을 하다가 H3를 택하였는데 셋 사이에 수치 차이는 거의 없었다. 이 때 상대는 견고하게 내 수에 응수를 하는데 나는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생각의 깊이가 얕아지기 시작했다. 이후 진행에서 다른 곳이 다 나쁘게 보여서 그런지 계속 최선 진행이 이어졌으나 질질 끌려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악수는 백 34수였다. 아래쪽 흑 벽을 건드리는 것을 신중히 해야 된다는 생각에 G3를 택하였는데 최선은 C8이었다. 또한 이후 막연하게 흑의 아래쪽 벽을 뚫는데 신중해야 된다는 생각에 36수 백 E1이라는 악수를 또 뒀다. 이 때까지 계속 악수를 두면 최선수 대비 -2 ~ -4 씩 수치를 깎아먹었고, 어느새 격차가 커져 -18까지 됐고, 착수할 곳이 한정적이여서 -18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46수 백 G7은 -22짜리 차선이었고 승부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기울어 질 것이라 판단했다.


상대의 몇 안되는 실착 중 하나는 49수 흑 C1이었다. +22였던 우세를 +8로 줄이는 수로 상대 입장에서는 아프게 다가올 실수일 것이다. 상대 입장에서는 최선은 H1을 두면서 H2를 둘 수 없는 상황이 꺼려졌을 수도 있으나 백이 둘 수 있는 곳이 워낙 제한적이여서 흑이 패리티를 뺏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후 52수를 둘 상황에서 최선 A2, B1 대신 -10 짜리 차선 A3를 두면서 대국은 37-27로 백승으로 끝났다.

상대 역시 크게 유리한 판이 생각보다 대승으로 끝나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Shimax로 복기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49수를 착수하니 그 자리를 손가락으로 톡톡치면서 여기가 아쉬웠다는 말을 남겼다. 이제 남은 건 5승이냐 6승이냐를 결정하는 마지막 대국이었다. 하지만 체력과 집중력이 고갈되어 그냥 숙소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11라운드가 마지막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 판은 대패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국을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토너먼트를 제외하고 마지막 라운드에서 져 본 적이 없기에 마지막 희망의 끈 한 가닥을 붙잡고 대국에 임하였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오델로 기사 카톡방에 알리니 그린 님께서 마지막 라운드 상대가 벵크트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는 스웨덴 선수로 World Othello Federation (오델로 세계 연맹)의 Secretary & Event Manager였다. 5.5승이기에 만날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5승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운명이 장난이라도 치듯 11라운드의 상대는 카톡방에서는 한 번 해 볼만한 상대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인천 대회 때 하야 님이 상대해서 이긴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틀 간 11라운드의 대장정의 마지막에 서니 기진맥진하여 이길 수 있는 상대도 못 이길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가 흑을 잡고 상대가 직각으로 가니 Rose로 갈 생각이었는데 10수 백 G4는 -4짜리 수로 전혀 생각하거나 대비해본 적이 없었던 수였다. +4라는 우위는 참 애매한 우위이다. 상대는 절대로 그 우위를 내 주지 않는데 나는 너무나도 쉽게 내주기 때문이다. 우선 15수 흑 H4는 +2짜리 차선으로 최선은 H3였다. 다음은 흑 19수로 E1은 +0짜리 수로 최선은 G3였다. 바로 다음에 상대가 20수 백 H5라는 악수를 둬서 유리함을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반부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고 어이없는 악수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우선 상대가 20수 백 H5라는 악수를 둬서 유리함을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반부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고 어이없는 악수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우선 25수 흑 H6는 흑에게는 아래쪽의 선택지를 줄여버리고, 백에게는 기회를 만들어 준 수로 이 시점으로 유불리가 뒤집어졌다. 그 이후로 한 동안은 최선 대신 차선을 고르면서 격차가 -8까지 벌어졌지만, 자그마한 승의 가능성을 걷어 차 버린 수는 35수 흑 A5이다. 쓸데없이 좌측의 벽을 뚫고 나가면서 형세는 크게 불리해졌다. 최선수였던 D7을 고려하기는 하였는데 왜 저런 수를 택하였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이후에 또 다시 악수가 나왔는데 바로 37수 흑 E8이다. 이 수 때문에 백이 D7에 착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백이 D7을 둘 수 없는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야 했는데 이를 너무 쉽게 포기해버렸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으니 거의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뒀다. 게다가 평소에 불리한 판에서 한 번 삐끗한 이후 최대한 버텨야되는데 오히려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잦았는데 이 대국 역시 그러했다. 흑 41수 A3로 스스로 관뚜껑에 못질을 해버렸다. 

이후 흑 43수 H2, 흑 49수 B3로 격차는 더 벌어졌고 상대도 최선수로만 진행하지 않아서 12-52로 대회 마지막 판을 아쉽게 마무리하였다. 워낙 체력적으로 힘들어했기에 내가 못 둔 것에 대한 아쉬움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 대회라는 귀중한 기회를 너무 쉽게 끝내버렸다는 것은 계속 아쉬움으로 남았다. 개그맨 양세형이 무한도전에서 피겨 선수 김연아를 만났을 때 앞으로 다시 만날 기회가 없다는 촉이 와서 안타깝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 EGP를 참가할 가능성이 낮기에 나의 대회가 5승 6패로 끝났다는 것이 허망하게 다가오면서 계속 안타까움만 머리 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아직 EGP Rome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남은 대회의 여정을 관전자로 걸어갈 생각이었다.


다음 편 : EGP Rome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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