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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 제 2회 한일전 1편 2편

 

2라운드 상대는 타카하시 히사시 三단이었다. 건장한 체격에 강렬한 인상의 소유자로 보면 살짝 움츠러들 정도의 느낌이었다. 대국 전에 볼짱 님이 테이블 옆으로 오셨다. 라이브 오델로 중계 때문이었다. 돌을 가린 다음 다른 테이블은 대국을 시작하였으나 인터넷 중계 세팅 때문에 볼짱님께서 잠깐 기다려달라고 하였다. 이번에는 내가 흑이었다. 상대가 직각을 가기를 빌며 중계 세팅이 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상대 백은 대각을 택하였고 준비한대로 Buffalo 오프닝으로 진행하였다. 상대 리버시워 기보 분석을 통해 최선수 중 6수 백 E2로 받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한 상황이었고 9수까지 서로 최선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상대는 준비된 오프닝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수치 상 -4인 10수 백 F5를 택하였다. 상대가 추후에 F4로 들어올 상황을 생각하여 11수 흑 F3를 택하였고 바로 12수에 백 F4에 착수하고 13수 흑 E6로 상대 진영 안 쪽으로 파고들어도 상대가 내부의 흑 돌을 바꾸기 껄끄럽게 만들었다. 14수 백 G4 역시 최선이고, 15수로 흑 C6를 두며 상대가 C7, D7, E7, F7 모두 들어오기 힘든 모양이 된다고 판단했고 상대가 F2를 두면 G5으로 대응할 생각을 했다. 실전 역시 이와 동일했다. 

18수에서 본인은 백에게 상당히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고 있었다. 최선수는 C7이나 벽을 넓힌다는 점에서 꺼려지기는 하나 착수 가능한 모든 지점이 유사한 불리함을 갖고 있다. 최선 진행은 백 C7, 흑 E1, 백 F1으로 이 진행 이후에는 흑이 위쪽에서 착수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여기서 18수 백 E1을 택하면서 수치는 -7이 되고 위쪽 벽이 더 생겼고 이 벽을 유지하기 위해 19수 흑 H4를 선택했다. 20수 백 D7은 C7과 함께 최선수로 흑의 돌을 최소한으로 뒤집어 흑의 선택지를 많이 늘이지 않으면서도 G3로 들어갈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의미로 판단했다. 이 의도를 무너트리고자 21수 흑 G3로 선수를 쳤고, 22수 백 E7으로 흑의 진영을 갈랐다.

 

나는 22수 백 E7을 흑으로 하여금 백을 가로지르면서 본인의 기회를 얻으려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이와 반대되는 성격의 수인 23수 흑 F1을 택하였다. 하지만 이 경우 B4로 상대 진영을 갈라버리는 것이 더 낫다. 상대의 벽을 가르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가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돌로 바뀐 안쪽의 돌이 다시 상대방의 돌로 뒤집어질 때 발생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 B4에 착수하면 D3, E4, F5가 모두 흑이여서 대각 방향으로 백이 뒤집을 방법이 없고 다른 백의 수도 B5로 다시 안쪽을 흑으로 바꾸는 선택지가 있다. 흑 F1 이후 백의 최선은 C2이나 24수는 백 G6였다. 이 때 백이 C2로 들어가기 쉽다고 판단하여 이를 악화시키기 위해 25수 흑 C1을 택하였다. 이 때 백이 C2로 바로 들어가면 D1을 둬서 상대가 착수 가능한 지점이 우측으로 좁혀지고, D1으로 둘 경우 백은 C2 착수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상대는 예상하지 못한 26수 G1으로 갔는데 이 수 역시 백 자신의 C2 착수를 불리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다음으로 C7과 F7, 두 조용한 수 중에 하나를 고민했는데 상대가 좌측에서 길을 찾지 못하도록 27수 흑 F7을 택하였으나 최선은 C7이었다. 28수에서 백이 H6로 대응했으면 어느 지점에 착수를 하더라도 흑의 벽이 생기면서 상대에게 활로를 만들어주는데 백은 28수를 E8으로 갔다. 이 다음에 앞에서 고민했던 또 다른 조용한 수인 C7를 흑의 29수로 선택했고 백은 안쪽에 자신의 돌을 만들고자 30수 백 H5로 갔다. 이 수에 반사적으로 우변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에 31수 흑 H6로 갔으나 우변 쪽에 흑이 착수 가능한 지점이 사라지면서 형세가 불리했다. 이 때 수치가 +8에서 0으로 회귀하였다. 

 

백은 이 때 G2로 X를 찌르는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으나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니다. 상대는 차선으로 32수 백 B8을 택하였다. 이 때 눈이 들어온 곳은 B3로 대각 방향으로 돌이 바뀌지 않아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이 때문에 31수 상황에서도 B3가 최선수였다. 33수 흑 B2 이후 백은 위쪽이나 오른쪽으로 들어가기에 껄끄러웠기에 34수 백 B5를 택하였다. 이 상황에서 흑은 조용하게 B4나 B6로 내부로 들어가는게 편한 방법이었으나 그 이전에 F8로 가면 백은 G8으로 받을 수 밖에 없고 그 다음 B4나 B6로 가면 된다는 생각에 35수를 F8로 택하였다. 그러나 이는 최선 진행은 아니었고 미세한 우세가 -2로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만약에 흑이 C8이나 D8에 둘 경우 백은 하변에 균형 변을 만들 수 있고 C7부터 F7까지 백돌이 있는 상황 역시 흑으로 하여금 변을 공격하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하게 만든다. 

백은 예상대로 36수 G8으로 진행하였고, 상대 수를 좌상과 우측으로 몰아가고자 37수 흑 B5로 택하였으나 이는 -4짜리 차선이었다. 백이 38수에 G2를 공격하면서 C6부터 G2까지 이어지는 블랙라인을 전부 백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실전도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최선은 B6였다. 하변의 두 개의 빈칸은 늦게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백의 B6 착수를 허용하지 않는 수로 39수 흑 A6를 택하였다. 이후 백이 H3를 착수하면 흑 D8, 백 C8, 흑 H1 이후 백이 H2로 끼어 넣으면서 우변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과 함께 2행을 공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40수로 백 A4로 진행하면서 상황이 +4로 다시 역전되었다. 좌하측 백의 벽을 최대한 건들지 않기 위해 41수로 D8을 택하였고 다음 42수 백 C8은 자명한 수이다.

 

이 때 불안하다는 생각에 바로 43수로 H1에 바로 들어갔는데 이 역시 차선이었다. 최선은 A3였으나 그 당시에는 전혀 후보수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대각을 다시 내 줄 가능성이 없었기에 H1을 바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A3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44수 백 D1 끼워넣기는 상변을 지키기 위한 자명한 수이고, 좌하쪽 백의 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선택한 45수 흑 C2 역시 +0짜리 최선이었다. 다음 수 46수 백 A2 역시 최선으로 다른 수들의 불리함이 뚜렷하게 보여 선택한 수로 추정한다. 이 상황에서 최선수는 흑 G7로 이후 최선 진행은 백 B2, 흑 A5, 백 B6, 흑 A1, 백 B1, 흑 A3이다. 이 진행의 핵심은 흑만 들어갈 수 있는 A3를 최대한 늦게 들어가는 것이 첫째, 우측 정리를 하고, 백이 B6를 두게 만들면서 좌하에서 패스 1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 둘째였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47수 흑 A3라는 -2 차선을 택하였다. 이 때 상변과 우변 절반, 좌변 절반 정도를 백에게 내줄 진행이 보이기는 하였으나 내줄건 내줘야 된다고 판단하고 착수하였다. 좌변을 뺏기지 않기 위한 48수 백 A5는 자명한 수이고 좌상귀를 정리하기 위해 49수 흑 A1을 둘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백은 48수에 -4짜리 B6를 뒀다. 이 수로 인해 B7은 흑만 둘 수 있는 곳이 되고 결국 마지막 수에서 패스가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49수 흑 A1으로 코너를 확보하였고 50수에서 백은 최선 B1 대신 -8 차선인 A5를 택하였다. 그 이후 51수부터 G7, H8, H7, H3, H2의 최선진행으로 우하와 우상을 정리하고, 56수 백 A7, 57수 흑 A8까지 최선이었다. 그러나 흑은 58수에서 최선 B2 대신 -14 차선 B1을 택하였는데, 이는 화이트라인을 따라 백이 뒤집어지는 것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흑 B2, B7 연타로 39-25로 이기게 되었다.

 

게임이 상대적으로 일찍 끝났기에 이 판에서의 승리는 한국팀의 첫 승이 되었다. 경기 이후 오델로 기사 카톡방을 보니 대국이 진행되는 동안 일로 바쁘신 영구 형님과 그린 님께서 응원을 해주셨다. 라이브 오델로 중계를 보니 Green이라는 닉네임으로 "Great Moves"라는 코멘트가 남겨져 있었다. 한국 팀에게는 1승 하나가 소중하고 의미가 크기에 마음 속에 뭉클하게 남았다. 특히 해외에 중계되는 경기에서 이긴 것은 해외 사람들에게 한국이 강자인 일본에게 당하지만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경기 중 범근 님의 판이 접전으로 진행되었으나 아쉽게도 패하면서 2라운드에서의 한국팀 성적은 1승이 되었다. 라이브 오델로에서 기보를 복사하여 복기를 하였더니 경기 진행은 내 생각과 괴리가 있었다. 초 중반에 유리한 고지를 밟아서 그런지 종반까지 격차가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마이너스 수치로 두 번 내려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의 실수를 바라는 것은 하수의 요행이다. 그리고 남은 경기에서 이런 행운이 찾아올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3라운드 상대는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었다. 대회 참가한 일본 측 선수 중 가장 단수가 높았고 경력 또한 가장 길다. 그러나 그를 빛나게 하는 것은 실력이 아니었다. 매일 문제가 업로드되고 다양한 자료를 수록한 Othello! Japan 사이트를 만드는 등 오델로 교육과 보급에 힘써서 일본을 오델로 최강국으로 만든 그의 업적이 진정으로 그를 빛나게 만들었다. 그는 밖에서 담배 한 대를 태우고 들어와 내 맞은 편에 앉았다. 그의 첫 인상은 따뜻한 정을 보여줄 것 같은 삼촌 같은 이미지였다. 그가 꺼낸 첫 말은 하야 누님한테 서울대 출신이고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살짝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오델로를 질 수 없었기에 아니라고 부정을 했다. 그는 자기 핸드폰으로 판을 찍고 싶다고 했고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했다. 나는 영어로 이름 나이를 이야기 하고 무슨 말을 할지 고민했는데 그가 대국을 임하는 각오 같은걸 이야기 해 달라는 부탁이 생각났다. 직접 눈 앞에서 만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인 나카지마 테츠야 8단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까? 잠깐 고민을 하였으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한 마디 뿐이었다.

"I'll do my best in this game."

이 판에서도 흑을 잡고 상대가 직각으로 가면서 Rose로 가기 위해 Rabbit으로 갔으나 백은 Ralle로 진행하였고 최선으로 받은 다음에 백은 -2 길로 진행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중반 이후에는 숨을 막는 듯한 답답함으로 바뀌었다. 결국 10-54의 대패를 당하였다. 기억나는 건 대국 내내 조그맣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게 특이하게 느껴졌다는 것 뿐이었다. 결과가 부끄러워 차마 복기를 요청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세한 대국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카지마 테츠야 8단은 이틀 전부터 한일전 경기에 대한 해설을 한 경기 씩 올리기 시작했다. 다만 3라운드에 있었던 내 경기 영상이 올라오려면 오래 기다려야 될 것 같아서 내 시각에서의 복기는 추후에 글로 남길 것 같다. 영상의 내용을 해석할 수 있다면 그의 설명과 그 때 당시 내 생각을 비교하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내 대국은 처참하게 패배하였지만, 다행히 3라운드에서는 하야 누님이 타츠미 유키코 6단을 상대로 34-30 승리를 얻어냈다. 3라운드 이후 호텔 1층에서 점심 식사가 있었다. 메뉴는 불고기로 속을 자극하지 않는 음식이라 생각하여 만족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대회장으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였으나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 남은 네 개의 라운드가 앞의 세 라운드보다 어려우면 어렵지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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