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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전 세계의 이목은 대한민국에 집중이 되었다. 평창 동계 올림픽 때문이다. 선수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에 많은 사람들을 열광했다. 2월 25일은 이러한 열광이 끝나는 날이다. 동계 올림픽 선수들이 4년 후를 기약하는 날, 인천에서는 제 2회 한일 오델로 대항전이 열렸다. 대회 이틀 전 한국과 일본의 컬링 준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한국이 극적인 우승을 챙겼다. 하지만 한일 오델로 대항전에서는 아름다운 드라마가 써질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일본은 유단자만 1000명이 넘어가고, 세계 랭킹 100위 안에 약 80명 정도 있을 정도로 오델로 강국이다. 일본은 오델로가 널리 보급되어 있어 어렸을 때부터 접하고 실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있다. 하지만 한국은 소수만 즐기고 있으며 본인은 중학교 때 잠깐, 대학교 때 잠깐한 것을 제외하면 대학 졸업 이후 대회를 출전하고 본격적으로 오델로를 공부한 것이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한일전이라면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된다는 말이 있지만 오델로의 경우 중과부적이다.

올림픽 같은 대회의 경우에는 메달 경쟁에 열을 올리는 국가도 많지만, 4년이라는 노력의 결실을 확인하고 참여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선수도 있다. 오델로 한일전은 어떨까? 한일전은 나에게, 한국 선수들에게, 일본 선수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였다. 나에게는 노력을 결과로 확인하는 자리일까, 아니면 배우는 자리일까? 국가 간 자존심 대결일까, 아니면 오델로 교류의 장일까? 사실 네 가지 모두 맞는 답이지만 어디에 방점을 둬야 하는지는 답이 없는 것 같았다.


(사진 출처 : World Othello Federation, 링크)


대회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나보다 두 세 수 높은 사람 앞에서 두면 내 생각과 수 읽기가 훤히 읽힐 것 같은 느낌이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대회를 위해 우선 오프닝을 좀 더 철두철미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최근 수원 오프라인 모임에서 영구 형님이 No-Kung 아니면 Comp'Oth 쪽을 준비하라는 조언을 해 주셔서 그 날 이후로 No-Kung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No-Kung은 지금까지 백으로 직접 가 본 적이 없는 오프닝이였고 수치를 분석했을 때 -2가 많아 상대가 얼마든지 틀 수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느꼈다. 시작은 +0 최선 진행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시행 착오 끝에 25수 정도 최선 진행을 숙지하고 리버시 워에서 실전에 뛰어들었다. 물론 내가 외운 곳까지 끝까지 따라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처음 시작이나 중간에서 -2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하면 어느 정도 무난하게 대응이 가능해서 No-Kung 승률이 5할을 넘어갔다. Kung이 4할 정도 승률이 나오는 것과 비교하면 대회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백을 잡았을 때 상대가 Tiger(Many Black)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대비를 해야했다. 전에는 Rose-Bill에서 차선으로 받는 진행을 택하였는데 그 진행에 어려움을 느껴 그 전에 Banana로 틀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흑을 잡았을 때 상대가 대각으로 올 경우 왕중왕 전 때처럼 Buffalo로 가기로 생각했다.

한국의 오델로 플레이어들이 합심하여 일본과 대적하기에 오델로 기사 카톡방은 왕중왕전 이후 한일전 관련된 이야기와 오델로 문제가 많이 나왔다. 오프닝을 어떻게 준비할지, 상대의 스타일은 어떤지, 어떤 방식으로 남은 대회 기간을 준비해야할지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특히 그린 님께서 최근 7년 간 일본 선수의 기보를 모아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렘 님께서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귀중한 조언과 본인의 요령을 많이 알려주셨다. 오델로 기사 카톡방에서 모여서 연습 대국을 두거나 일본 측 기보 분석을 해보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아쉽게도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각자 대회를 준비하는 방식이나 기풍이 다르지만 일본이라는 큰 산을 넘어보는 것은 모든 이에게 당연한 숙원사업일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한일전 준비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신 오델로 기사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대회 전에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가 있었다. 전자는 리버시워 레이팅이 2000을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가끔씩 오델로가 잘 되는 날이 있기 마련인데 두 세 수 이상의 진행이 한 번에 보이거나 착수로 인한 대각이나 C라인의 변화가 또렷하게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그 날은 내가 선호하는 오프닝을 선택하는 유저가 많아 레이팅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던 것이었다. 예전과는 확실히 보이는 게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고 한일전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이나마 상승했다. 나쁜 소식은 대회 전 주에 일정이 빡빡했다는 것이었다. 논문 수정, 실험, 회의 등이 겹치면서 오델로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퇴근 이후에 기보 분석이나 오프닝 공부를 하려고 해도 시간이 부족하였다. 이 때는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다. 손자병법에 ‘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라는 말처럼 나도 알고 상대를 알아야 되는데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아리송하고 상대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것이 많으니 마음이 불안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한국 팀 참가자를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빌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코를 심하게 골기에 다른 사람들의 숙면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 자취방에서 바로 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대회는 인천 공항 근처 호텔에서 열려서 아침 시간에 공항 버스를 탈 생각을 했다. 6시 41분 차를 타야되기에 5시 반에 일어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전날 시간 지체를 줄이기 위해 아침에 떠날 준비를 미리 해뒀다. 대회날 아침을 무조건 먹어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편의점 도시락을 사 뒀고, 대회 중간중간 두뇌 회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초콜릿을 준비하였다. 이런 준비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회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걸 최대한 하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컨디션은 평상시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제 1, 2회 수원대회, 왕중왕전 때는 활력이 느껴졌다면 이 날은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는 정도였다. 늦을까 계속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이 평소처럼 1시간 15분 정도만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고 마침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까지 타이밍 맞게 타고 8시 10분 정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회장은 호텔 11층의 회의실 같은 홀이었다. 이전 대회에 비해 대국장은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감사하게도 전날 협회장 님과 볼짱 님, 리치 형님께서 대회장 세팅을 해 주셨다. 대국 전까지 준비한 내용을 이야기 하고 담소를 나누며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하였는데 동권 님께서 연습 대국을 요청하셨다. 초반에는 불리한 느낌이었으나 중반 이후에 뒤집어져서 이기게 되었다. 하지만 근처에서 범근 님과 재영 님의 연습 대국 이후 '연습 때 이긴 사람은 대회 때 죽쑨다'는 말이 묘하게 귀에 잘 들어왔다.

대회를 앞두면서 마음은 복잡해졌다. 일본 오델로 기사들과 오프라인에서 대국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벽이었다. 대국할 때 항상 어떤 수 읽기를 하고 착수하는지 궁금하게 된다. 지금까지 대회를 나가면서 한국 플레이어들과 두면서 어느 정도 따라가는 과정에서 더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한 답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일본 기사들은 그 답을 갖고 있기에 '도대체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의문이 커지고만 있었다. 또 대회 며칠 전, 리버시 워에서 우연히 후쿠나가를 만나 대국을 하였는데 어느 순간 선택지가 없어지고 숨이 꽉 막힐정도로 판세가 답답하게 바뀐 판이 있었다. 내 실수에 대해 응징을 확실히 할 뿐만 아니라 상대가 둔 약간 불리한 수에서도 우월을 굳히는 것을 보면서 내 실력은 빈틈이 텅텅 나 있는 갑옷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대회에서는 질 확률이 높아도 기죽고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치훈 9단의 어록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앞으로 나아가다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나타난다면, 그 벽에 손톱자국이라도 내고 물러나와야 한다."

그래서 후회 없는 대국, 좋은 기보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일본 기사들의 뇌리에 한 줄의 손톱자국이라도 남겨야겠다는 결의가 생기기도 했다. 호기심과 두려움, 결의로 마음이 무거워지기는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묘한 기대감도 있었다. 오델로 플레이어를 만나고 오프라인에서 직접 두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면서 행복이기 때문이었다.

연습 대국과 잡담을 하다보니 일본 측 선수들이 도착했다. 5명은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 기사로 모범생 또는 독특한 면이 있는 천재 같은 느낌을 받았다. 중년 여성 분인 타츠미 유키코 6단은 첫 인상에서 성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머지 한 명은 나카지마 테츠야 8단으로 일본 오델로를 한 단계 발전시킨 인물이자 매일 아침 8시에 오늘의 문제를 확인하게 해준 장본인이다. 그들이 오기 전까지는 막연한 호기심이 가득했는데, 직접 얼굴을 보니 아이돌을 본 소녀팬처럼 기쁘고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등반가들이 고산을 보면서 두근거리듯 내가 가야될 목표를 두 눈으로 직접 보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9시 반에 양국 오델로 협회 회장님의 환영사와 개회사가 있었고 두려움과 설렘 속에서 대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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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라운드 상대는 홍현우 님이었고 이 경기에서 나는 백번이었다. 현우 님은 첫 대회 출전이었지만 오델로 오픈 톡방에 계셔서 대략적인 실력과 스타일을 알 수 있었다. 리버시워 1700 중반에서 1800 사이로 특이한 점은 흑을 잡았을 때 Wild rabbit 오프닝을 즐겨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백이 대각으로 받으면 Heath 오프닝을 가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원래는 백을 잡으면 대각으로 갈 계획을 하였으나 Heath에 대한 대응이 불안하다고 판단하여 현우 님께만 직각으로 가고 Wild rabbit에 대한 최선수를 살펴보았다. 게임도 그대로 진행이 되었지만 10수 정도 지나고 아는 길을 벗어나니 +4의 유리함은 -2 정도의 불리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만 현우 님께서 가운데에 뭉쳐있던 형세가 유지될 때 갑자기 대각으로 삐죽 튀어나가면서 C 스퀘어로 들어가면서 -10으로 뒤집어졌고 그 격차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되면서 37-27로 마무리되었다. 유리함이 느껴지기는 하였으나 중, 종반에 어물쩡하다가 유리함을 잃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6라운드 경기가 일찍 끝나면서 다른 테이블 경기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흥미를 끌었던 경기는 리치 형님과 재영 님의 경기였다. 4승자 끼리의 대국이여서 대회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이었기 때문이다. 내 대국이 끝난 이후에는 중반에서 종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고 서로 시간을 거의 다 쓰면서 혼신의 대국을 두고 있었다. 두 분 다 장소할 때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서 있는 성향이 있는데 재영 님은 일어서서, 리치 형님은 의자 위에 걸터 앉으면서 장고를 이어갔었다. 두 기사의 결연한 모습은 관전자로 하여금 기가 죽게 할 정도였다. 이 장면은 제 2회 왕중왕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대국 역시 남은 시간이 1분 미만으로 지나가기 시작했다. 보통 1분 쯤 되면 시계를 의식하게 되는데 리치 형님은 40초 언저리까지 판을 집어삼킬듯한 야수의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시간패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보는 내 마음까지 조급해졌지만 관전하는 사람은 침묵을 유지해야 했다. 결과는 33-31로 리치 형님의 승리였다. 특히 중반에서 재영 님이 스토너 트랩 찬스를 놓치면서 큰 우세를 잃고 결과가 뒤집어지면서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거의 모든 시간을 쓰면서 두 판의 박빙의 승부를 건져낸 리치 형님의 모습은 본받아야 될 모습일 것 같다.

6라운드에서 이기면서 하야 누님, 재영 님과 함께 4승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판은 흑으로 소재영 四단님과 겨루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많이 둬보기도 했었고 관전을 하면서 재영 님은 백일 때 무조건 대각으로 가고 Cow와 그에 이어지는 Rose-v-Toth 쪽 오프닝으로 가면 Tanida로 이어져 불리해질 것이라는 판단에 이번 대회에서는 백 대각에 대해 Buffalo로 대응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황이었다. 다만 Buffalo 오프닝 준비한 것을 사용한 건 이번 대회에서 처음이었다. 이전 기보에서 재영 님이 Hokuriku Buffalo로 주로 가는 것도 파악을 했지만 사전에 연구해뒀던 오프닝이 있었다는 걸 파악하지는 못하였다. 

8수 백 E3부터 재영 님이 준비한 오프닝으로 -4 길이었다. 11수까지는 최선 진행이었다가 12수 백 F1은 오프닝 북 상 -5으로 차선이었다. 여기에서 흑의 최선은 E1이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고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전에서는 +0인 F2로 진행하였다. 그 이후 진행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8정도 불리한 상황까지 갔다가 어느 순간 판세가 뒤집어졌고 36-28로 이기게 되었다. 이렇게 대회는 5승 2패로 마무리 되었다. 1, 2등은 6승을 하신 동권 님과 리치 형님이었고, 유일한 5승자였던 나는 3위, 4위는 재영 님이었다.

아쉬운 판도 있었지만 기나긴 대회가 끝났다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지금까지 대회 중에서 가장 체력 소진이 심했기에 끝난 이후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서인 것 같다. 기사로서 우승을 목표로 하는 것은 당연하고 채찍질 해야하지만 3등이라는 성적은 가볍게 여길 성적은 아닌 것 같다. 또한 한일전 대표로 선발된 것 역시 영광스러운 혜택이다. 단급 포인트 정리 이후 시상식이 있었다. 상패는 1, 2등에게만 주어졌다. 인터넷에 올라온 2017 유럽그랑프리 파리 대회 기사에서 4위를 한 Imre Leader가 트로피 대신 물병이 들고 있던 사진 (참고 링크) 생각이 나 재영 님과 함께 생수 통을 들고 1위 동권 님, 2위 리치 형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대회 마무리와 정리를 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부전승이 없었다면 이 정도 성적을 받을 수 있었을지, 한일전 대표로 선발되었는지 말이다. 그러나 '야구에는 만약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처럼 이를 따져보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라운드에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부터 생각하면 이후 페어링까지 다 꼬이기 때문이다. 대회 전에 대부분 실력이 비슷하기에 당일 컨디션과 운이 결과를 좌우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냉정하게 말하면 1라운드 부전승이 없었을 경우 내 승수는 4나 3이 되었을 수도 있다. 운이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는 법이다. 리버시워를 하다보면 이상할 정도로 판이 안 풀리는 나링 있는데 대회 때 이런 일이 생기면 곤란하다. 아무리 악운이여도 실력으로 뚫고 지나가도록 실력을 키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영역이다.

(초상권을 생각하여 정면으로 나온 얼굴을 가렸습니다)

대회가 끝난 이후 삼겹살 집에서 저녁 식사가 있었다. 오델로 대회는 내 생각과 상대 생각이 부딪히면서 대립하는 점에서 재미가 있다면, 오델로 플레이어와 만나고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것은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동질감이 크게 느껴진다. 즐기는 사람이 소수라는 점이 친밀감을 더 키우는 요인인 것 같다. 각자 대회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기억을 복기하면서 기쁨을 즐기기도 아쉬움을 달래기도 하였다. 뒀던 판 이야기, 한일전 이야기 등 오델로 관련된 이런 저런 이야기로 저녁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다. 식사 중 오늘 처음 뵙는 협회장 님께서 한 판 둬보자고 해서 흑을 잡고 Rose로 이어지는 길을 갔지만 큰 점수 차이로 패했다. 그러면서 협회장님께서는 기보를 보고 분석한 다음 실착이 있는 지점부터 AI와 함께 두면서 AI를 이길 때까지 계속 둔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어렵기는 해도 AI 난이도를 적당히 설정하면 빈틈이 존재한다고 하셨는데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벽을 두드려야 된다는 걸 보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대회의 긴 여운 때문인지 저녁 자리는 2차로 이어지고 11시 가까이 해산하였다. 대회가 끝나고 나면 2~3일 정도는 여운이 강하게 남는데 판을 사이에 두고 내 모든 생각을 쏟아내는 것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이유같다. 이번 대회에서 얻은 성과는 백을 잡았을 때 항상 대각으로 가던 진행에서 벗어나 직각으로 전환했다는 것과 Buffalo 오프닝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활용했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폭넓게 오프닝을 알고 공부하는 게 중요하지만 대회를 준비하면서 한 오프닝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형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 같다. 동권 님과 뒀던 판에서 악수 두 개 빼면 내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 종반의 미묘한 차이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 중 하나로 본다.

오델로 기사들을 만나고, 대회에서 집중하며 오델로를 두는 건 즐거운 경험이다. 대회를 나가면서 이전 대회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나를 바라보는 것 역시 보람이 느껴지는 요소이다. 다음 대회는 한일전이다. 내가 오델로로 어느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대회에서는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후회하지 않는 대국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대회를 준비해주신 협회장님을 비롯하여 참가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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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델로 기사 중에 가장 상대를 많이 해 본 기사는 아마 리치 형님일 것 같다. 첫 오프라인 모임 때 만나서 둬 보기도 했고, 리치 형님 집에 찾아가서 다면기 네 판을 뒀던 적도 있다. 또한 제 2회 수원대회 마지막 대국 역시 리치 형님과의 판이었다. 어찌보면 가장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六단*이라는 벽은 두텁고 견고하며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 왕중왕전 이후 七단으로 승단) 개인적으로 점심 먹은 직후인 4, 5라운드에서 1승은 해야된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섰다. 라운드 배정 결과 내가 백을 잡게 되었다. 이전 대국 내용이나 기사 분들의 후기에서는 Rose 오프닝을 주로 사용한다고 나와있었으나 최근 리버시 워 기보 등을 살펴봤을 때에는 Horse를 사용하시기도 하였다. 그래서 대국 전에 Horse 최선 진행을 조금 살펴보기도 하였으나 다른 오프닝에 비해 숙련도나 경험은 떨어졌다.

 

대국을 진행해보니 예상은 적중하였다. 8수 백 G5까지는 확실하게 아는 수순이었으나 그 이후부터는 수읽기로 돌파해야 되는 부분이었다. 11수 흑 E2는 오프닝 북 상에 -5로 나와있고 이에 12수 백 F6는 최선수였다. 이 때부터 대응이 엇나가기 시작했다. 14수 백 D2는 짧았던 우위를 원점으로 돌리는 수였다. 이 때 H3와 B5가 각 +6, +4로 D2와 비교하였을 때 흑의 벽을 깨기에는 이른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15수 흑 E7은 -5로 흑 벽을 넓히는 측면에서 불리한 것으로 보인다.

16수 백 C7은 +2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상대의 벽을 너무 일찍 깨려고 달려든 느낌이 든다. 기억 상으로는 이 수를 오래 고민했는데, 이 수를 선택하면서 흑이 C6를 두면 내가 백 D7을 두고, 흑이 17수로 D7을 두면 반대로 백이 18수로 C6를 두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전에서는 후자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F3라는 조용한 수로 들어갈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를 품고 있었다. 다만 19수로 흑은 B5에 착수하여 C6의 백을 흑으로 바꾸면서 F3로 들어가는 수를 방어하였다.

 

19수 이후 감각적으로 좋다고 느껴진 수는 없었다. 이 상황에서 나중에 흑이 F3를 먼저 착수하는 것 역시 고려해야 했고, 흑의 좌상쪽 벽 역시 건드리기 조심스러운 형세였다. 그래서 혹시나 나중에 B6에 착수할 때 흑이 B4 착수를 하지 못하도록 20수 백 F8을 택하였는데 최선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F8에서 D6로 이어지는 대각을 흑이 자르는 것이 가능해보인다. 다음 21수 흑 F3는 최선이었고 이어지는 수를 계속 염두에 두던 B6로 뒀는데 이는 악수였다. 구태여 흑의 좌측 벽을 갉아들어갈 필요 없이 C8로 착수하여 상대가 우하 쪽으로 두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 진행이었다. 이에 흑은 백 진영을 갈라버리는 최선수 E8을 택했다.

이 때 하변에서의 싸움을 C8, D8, F7으로 진행하고 싶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이 되었다. 다만 26수 백 F7은 수치가 -4에서 -9로 떨어지는 악수였는데 흑이 B4라는 조용한 수를 그냥 허용해버리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최선 진행은 26수에 백 B3, 그 다음으로 B4, F7으로 진행이 된다. 최선 진행과 비교하였을 때 F7을 두고 좌상쪽으로 백이 착수하기 어렵지만 B3를 둔 후에는 F7을 들어가는데 문제가 없는 것이 차이점이다. 만약 흑이 B3 다음 F7을 들어가더라도 우측에 흑의 벽이 생기게 된다. 다만 이 이후 흑은 27수 H5를 택하였는데 최선수에서 5석을 잃는 선택이었다. 최선수는 B4이었는데 최선 진행과 비교 시 백이 B3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수였다. 다만 이 상황에서도 B3 착수의 중요함을 외면하고 28수로 백 H3를 착수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흑도 B4 착수를 계속 미루는 듯한 느낌이었고 29수는 흑 G6로 진행하였다.

 

30수는 우측에 흑이 착수하기 까다롭게 만들기 위해 백 H4를 택하였다. 이 경우 G3, H6 모두 흑에게 껄끄롭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흑은 B4 대신 31수로 H2를 선택했다. 여기에서 우변을 어느 정도 정리하겠다는 생각으로 32수 백 H6를 택하였는데 이는 -8짜리 악수였다. 여기서 최선수는 E1으로 돌이 많이 뒤집어진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못 본 것으로 추정한다. 백이 E1에 착수할 경우에 흑은 상변과 우변 쪽에 착수 가능한 지점이 D1, F1, G3 정도 있지만, 백이 H6에 착수하면 C2, C1, D1, E1 등 상변 쪽에 착수 가능한 지점이 많아진다. 백 E1이 D2 ~ G5 대각과 B6 ~ E3 대각을 모두 흰 돌로 바꾼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백 H6 이후 33수 흑 H7은 당연한 수순이고 우변과 우하귀 쪽을 정리하면서 패리티를 고려하여 34수 백 G7을 착수했다. 이 수도 불리함을 안게 되는 수로 E1, A4, A5 중 한 곳을 먼저 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 때도 흑은 B4 착수를 유보하고 35수로 G3에 착수하였다.

 

이 때까지 -10으로 떨어진 순간이 있었지만 +6 ~ -6 사이로 진행되다가 -4인 상황에 도달하였다. 36수로 백 A5로 상대를 좌하쪽으로 유도하려고 하였고 37수 흑 B4, 38수 백 A3로 이어졌다. 보통 변에 자신의 돌 사이에 하나의 빈 칸이 존재하는 모양은 꺼져리기는 하지만 흑의 착수 가능한 지점이 좌측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크게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다. 흑은 여기에서 차선 +2인 39수 흑 A4를 택하였는데 최선은 H8과 D1으로 최대한 좌변에 착수를 늦게 하는 방향으로 최선 진행이 이어진다. 다음 40수로 B3로 둘 계획을 하였는데 흑 39수를 보고 나서 B3를 둘 경우 B열이 모두 백이 되고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E1을 택하였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B3, C2가 -2로 최선, E1이 -4로 차선이었다. 이 순간이 우열을 쉽게 판단하기 힘든 접전의 시작이었다. 흑은 41수로 최선 F1이 아닌 차차선 +0인 A6로 진행하였다. 42수 백 A7은 좌변을 지키기 위한 수였고, H8으로 코너를 차지하는 길이 최선인 상황에서 흑은 43수로 -2인 B7을 택하였다. 이에 바로 A8으로 들어가면 흑이 B8으로 끼워넣기를 하고 B열의 절반이 흑이 되기에 최선수인 44수 F2로 진행하였고, 45수는 흑 최선수 C1으로 진행하였다.

이 이후에 대한 기보는 복기 과정에서 정확하게 복기가 되지 않은 관계로 중요한 부분만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아직 능력이 부족하여 뒀던 오델로 판이 기억이 나지 않았고 리치 형님의 도움을 받았다. 다만 46수 이후에 진행이 D1C2B3F1G2H1G1A2A1B2B1B8A8H8G8 (기보에 나와있는 진행) 아니면 B3C2D1F1G2H1G1A2A1B2B1H8G8B8A8 중 하나인거 같다고 하셨고 전자가 맞을 것이라 추측하여 이 글에 소개를 한다.

 

46수로 백 D1을 택하였으나 수치는 +0이고 최선수는 +2 G2이다. 이 때부터 화이트 라인을 백이 차지하고 블랙 라인을 흑이 차지할 수 있으며 어느 한 쪽이 한 색깔로 바뀌게 되면 상대가 대각을 다시 자르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흑은 47수로 최선인 H8 대신 -4인 C2에 착수하였고, 백은 최선 G2 대신 차선 +2인 B3를 48수로 선택하여 화이트 라인을 차지하려고 하였다. 여기에서 G2 최선 진행과 B3 최선 진행을 비교한 결과 E4 돌 하나에 의해 2석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데 실전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보인다.

49수는 백 F1의 최선이었으나 50수에서 백 G2라는 악수가 나왔다. 추후에 G1으로 대각이 잘릴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흑은 B1이 최선인 상황에서 H1이라는 -2인 수로 진행하였고 53수 백 G1으로 끼워넣기를 한 후 흑은 54수로 A2라는 최선수로 진행하였다. 여기에서 승부의 추를 흑 쪽으로 기울게 한 수가 나왔는데, 최선수 A8 대신 A1을 택하였다. A8의 경우 하변을 내주지만 안쪽 부분에서 백의 돌을 더 지키면서 A1보다 나은 결과를 보여준다. 그 이후 55수부터 B2, B1, B8, A8, H8, G8은 모두 자명한 최선 진행이었다. 다만 이 수순 진행 중 돌 하나를 덜 뒤집어서 최종 결과는 34-30으로 기록되었다. 이 판은 5라운드 경기 중에 가장 늦게 끝났기 때문에 관전하시던 하야 누님께서 대국 이후 잘못 뒤집은 부분이 있다고 언질을 주셨다.

 

34-30 패배는 묘하게 마음을 쓰리게 하는 결과였다. 제 1회 수원 대회에서 소재영 四단과 첫 판에서 +7까지 유리했던 판을 30-34로 졌던 것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만 수원 대회 때는 유리함이 느껴졌던 순간이 있기에 안타까움이 더 컸다면 이번에는 어느 쪽의 우위가 확실히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긴장이 탁 풀리면서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만약 33-31로 질 경우 상대 돌 하나만 내 돌로 바꾸면 무승부라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이럴 때에는 돌 하나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진다.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종이 한 장이 교도소 담벼락처럼 높게 다가오게 된다. 그런데 돌 네 개 차이, 상대 돌 두 개 이상을 내 돌로 바꿨어야만 했다. 이 정도면 심리적으로는 돌 두 개가 삼국지의 역경성처럼 난공불락으로 느껴지게 된다. 만화 '미생'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반 집으로 바둑을 지게 되면, 이 많은 수들이 다 뭐였나 싶었다. 하지만 반 집으로라도 이겨보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순간순간의 성실한 최선이 반집의 승리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반 집 승에서 순간순간의 성실이라는 다른 세상을 찾는 것처럼 반 집 패에세도 순간의 방심과 실책을 찾아야 실력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국이 끝나고 복기를 해봐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자세히 살펴봐도 미세한 차이를 인지하기에는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 대국의 한 순간을 문제로 만들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풀어보라고 해도 최선수를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돌 한 두 개 차이가 수수께끼로 남아있으니 그 격차가 더 크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경험과 시간, 노력이 해결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비록 아쉬운 패배였지만 결과에 관계 없이 대회에서 가장 내 역량을 최대로 발휘한 경기는 리치 형님과의 경기라고 평가한다.

고민이 되는 부분과 미세한 차이가 존재하는 부분이 많았기에 대국이 끝났을 때에는 1분 조금 안 되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시계 반대편에는 10 몇 초 정도의 시간이 액정 상에 떠 있었다. 대국 중간에 리치 형님의 남은 시간이 1분 이하로 줄어들면서 시간패의 가능성을 염려하였다. 그 순간에도 생각을 하다가 허겁지겁 돌을 뒤집는 모습에서 경외감이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까지 생각을 쥐어짜내 더 좋은 수를 찾아내려고 하고 수에 대한 확신을 얻으려는 모습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무사의 느낌을 주었다. 

점심 먹고 난 이후 우려했던대로 4, 5라운드에서 패배하면서 어느새 3승 2패로 중간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이 때 동권 님, 리치 형님, 재영 님이 4승 그룹, 볼짱 님, 남성우 님, 하야 누님, 쿨러 님, 홍현우 님이 3승 그룹이었다. 만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정리되면서 이후 판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상위 7명에게 주어지는 한일전 참가 자격도 얻고 싶은건 오델로 기사로서 당연한 욕심이고 올라갈 수 있는 한 높게 올라가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화장실에 갔다오고 물을 마시는 등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동안 6라운드 페어링이 나왔다. 상대는 이번에 대회를 처음으로 나오시는 홍현우 님이었다.

 

다음 글 : 제 2회 전국 오델로 왕중왕전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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