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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글 : 제 2회 한일전 1편

 

대회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될 지 궁금하였는데 한국 선수의 테이블이 정해져있고 일본 선수들이 상대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각 기사가 상대팀 기사를 모두 만나기 때문에 페어링을 미리 짜 두고 점수 기록표와 순서표를 이미 작성해둔 상태였다. 1라운드부터 마지막 라운드까지 카미쿠라 다이스케 六단, 타카하시 히사시 三단,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 야마카와 타카시 七단, 후쿠나가 코하치 七단, 타츠미 유키코 六단, 키요노부 켄타 六단 순서였다. 다만 시작 전 색깔 정하는 것에 대해 혼선이 있어서 이를 확정하느라 시간이 약간 지체되었다. 돌 개수 홀짝 맞추기와 윗면 아랫면 선택하는 방법 중 후자로 결정되었다. 단이 높은 사람이 돌을 잡고 낮은 사람이 위, 아래 선택권을 가졌다. 개인적으로 흑을 좀 더 선호했기에 운이 따르기를 간절하게 빌었다.

카미쿠라 다이스케 六단이 내 맞은 편에 앉았다. 세련되고 젠틀한 느낌의 청년이었다. 일본어를 거의 못하기 때문에 영어로 간단하게 인사하였고 그는 나에게 몇 단인지 물어봤다. 초단이라고 하니 돌 하나를 집었고, 내가 고른 면은 흰색이었다. 대국을 시작하면서 평소에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되는데 외국인이니 뭐라고 해야 될지 고민했는데 케익 님의 세계 대회 후기에서 상대가 'Good luck'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모기만한 목소리로 'Good luck'이라고 했고 상대는 일본어로 인사를 했다. 이 말을 하면서도 실력이 한참 우위에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행운을 빈다고 말한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이 때 왜 나는 그린오델로에 볼짱 님이 쓰신 오델로 관련된 일본어 모음이 올라왔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카미쿠라 다이스케 단의 경우에는 흑을 잡고 백이 직각으로 받았을 때 로즈빌 정석으로 가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8수 백 B4로 Banana 오프닝으로 틀었고 14수까지는 알고 있던 최선수로 진행하였고, 23수 흑 C2까지 수 읽기로 최선 진행을 찾아갔다. 그러나 24수 백 A2는 -3으로 팽팽하던 균형을 깨버린 수로 상대의 벽을 깨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F3를 두는 것이 상대로 하여금 내 가능수를 늘이게 하는 방법이었다. 흑은 25수로 F3를 택하였고, 흑이 추후에 E7이라는 조용한 수를 둘 수 있는 것이 크게 보여 E2 대신 B6에 착수를 하였으나 차선이었다. 흑은 27수 C1으로 응수하였고, 우측에 착수할 경우 상대의 벽을 깨면서 수를 많이 늘여준다는 생각에 상변의 E1을 28수로 선택하였으나 G5도 좋은 선택지였다. 흑은 상변이 아닌 다른 곳으로 두면 백에게 수를 열어주는 효과가 더 크기에 29수로 E2를 택하였고 이는 D1과 함께 최선이었다.

흑 29수에 대한 최선수는 G3이다. 이후 최선수는 흑 G4, 백 E7으로 흑이 F7, F8을 착수하기 어렵게 만들면서 백의 착수 지점을 넓혀가는 진행이었다. 그러나 상변을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에 30수 백 F1을 뒀고 31수 흑 D1, 32수 백 B1으로 불균형 변이 형성되었다. 30수가 차선이기는 하였으나 최선과 8석 차이가 나기에 그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흑은 33수 A7으로 내 남은 수를 소진시키려고 하였고 벽을 깨기 싫어서 선택한 34수 E7은 최선이었다. 흑은 A8을 백에게 내주어도 끼워 넣기로 좌변과 상변을 얻을 수 있기에 35수 B7으로 압박을 시작하였고 벽을 최소한으로 건드리는 선에서 선택 가능한 수인 G6를 36수로 택하였다. 37수 흑 C8은 +16 차선으로 진행하였고, 어차피 끼어넣기를 허용할거면 블랙 라인을 빼앗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나중에 A8으로 들어가자는 생각으로 38수 G5를 택하였다. 

 

39수 흑 A3는 생각하지 못한 수였고 H5와 함께 최선수 중 하나였다. 내가 예상한 수순은 39수로 흑 E8, 백 A8, 흑 A3로 끼워 넣기, B8 이었는데 백이 하변에서 F1이나 G1이라는 여유수 하나를 얻는다는 것을 고려하여 좌변을 내주고 (40수 백 A8) 하변에 끼워넣는 (41수 흑 B8) 선택을 한 것 같다. 42수 백 G4로 벽을 만드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43수 흑 H5는 백의 착수 지점을 최소화하면서 벽을 뚫는 최선수였다. 다음 수로 H6를 둘 경우 흑이 H7을 둘 시 착수 가능한 지점이 B2와 G7이라는 두 X밖에 남지 않아 44수 백 H4로 진행하였다.

여기에서 흑의 실수가 하나 나왔는데 흑이 45수로 H6 대신 H3로 진행한 것이었다. 흑이 H6로 진행하고 백이 우상쪽 착수를 못하도록 막으면서 수를 소진시키면 무난하게 A1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45수 흑 H6는 +8로 최선에서 8석을 잃는 선택지였다. 46수 백 G3은 자명한 수였고 이후 최선진행은 흑 H2, 백 B2, 흑 E8으로 그 과정에서 패스가 한 번 발생하여 패리티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흑은 47수를 차선인 G7으로 택하였고 여기에서 장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착수 가능한 지점은 적었으나 미래가 암담하게만 느껴졌다.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추후 진행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았고, 48수로 앞으로 절대로 반복하면 안되는 실수를 했다. 사실 저 상황에서 감각적으로 바로 떠오르는 최선수는 F7이었다. 다만 F7으로 대각을 잘라도 흑 H6로 화이트 라인을 계속 흑으로 유지하고 H8을 내주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진행을 생각해보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간과한 것은 흑에게는 우하가 먼저 가야될 필요가 있는 곳이 아니었고 우상이나 상변 쪽에 백의 수를 유도하는 진행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심리가 묘하게 무난하게 패하는 길을 꺼리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름 흔들기랍시고 48수로 G8을 택하였다. F7이나 G8이나 지는 건 똑같을 거 같다는 생각과 엉뚱한 수읽기가 낳은 참사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때 상대가 바로 H8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하를 모두 정리하고 수가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 진행의 경우에는 나중에 화이트라인이 모두 흑돌로 바뀌는 진행이 존재해서 흑이 무리 없이 B2에 착수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흑은 +10인 49수 H2를 택하였고 이 때부터는 시간도 얼마 없어서 실착의 연속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수를 둬서 그런지 수읽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50수 백 B2는 최선 진행에서 10석을 잃는 -20이었고, 51수 최선 흑 F8에 이은 52수 백 E8은 -24 차선이었다. 다만 흑이 여기에서 53수를 +16인 F7을 택하였고 그 이후 최선 진행으로 게임이 마무리 되었다. 

 

복기를 하면서 아쉬운 수는 24수와 48수였다. 24수의 실수로 판세가 기울어졌다. 흑이 백의 착수 지점을 줄이면서 강하게 압박하는 바람에 중반에는 선택지가 줄어들어 수 읽기가 수월해졌고 상대의 실수가 발생하며 격차가 좁아졌으나 그 기회를 걷어 차 버린 것이 48수였다. 바둑에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있는데 오델로도 똑같은 것 같았다. 실력 부족 때문이던지 심리적 압박 때문이던지 뚜렷한 수 읽기를 바탕으로 한 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경우 장고가 악수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협회장님도 장고하는 경우 처음에 감각적으로 생각한 수가 나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대국이 끝나고 나서 화장실이 급한 관계로 복기를 하자는 이야기를 못했다. 아니 화장실은 그냥 핑계고 졌다는 것이 싫어서, 내 실수를 그대로 마주하기 싫어서, 내 그릇이 좁아 복기를 피한 것이다. 나중에라도 상대의 수를 상대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꼭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복기를 어려워하기에 상대방에게 복기를 부탁해야 되는데 이 역시 부끄럽게 느껴져서 상대가 수순을 적은 기록지를 몰래 사진으로 찍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행동이 너무나도 옹졸하게 보인다. 1라운드는 한국의 전패로 마무리되었다. 첫 경기에서 다가온 느낌은 수읽기가 생각이 최상 컨디션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생각이 폭이 살짝 좁은 느낌이었고 '여기를 두면 어떻게 되고 상대가 어디를 둘 수 있을까?'라는 일련의 수읽기 과정이 생각만큼 빨리 되지 않았다. 다음 경기가 두려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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