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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후기부터는 대국 해설을 하이라이트 위주로만 하면서 글을 간결하게 쓰려고 합니다. 대국에 대한 심층 해설도 나중에 쓰려고 합니다. 최종 목표는 아무나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인데 그건 좀 더 내공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토미 라소다 감독은 일 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난 날이라고 했다. 오델로를 두는 사람에게 가장 슬픈 때는 대회가 한 동안 없는 기간인 것 같다. 한일전 이후 3월에 수원대회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소리소문 없이 넘어가버리고 4월 전국 선수권 대회가 찾아왔다. 그 사이 강남 오델로 스터디 모임에서 오프라인으로 많이 두기는 하였으나 대회에서 집중하고 몰입하는 느낌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실력이 느는 느낌은 확연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나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기대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운동 선수가 시합에 뛰기 전 준비를 위한 징크스나 루틴이 있듯이 나 역시 오델로 대회를 위해 준비하는 일종의 루틴이 있다. 대회 1주일을 앞두고 카페인을 포함하고 있는 음료를 정오 이전에 마시지 않아 수면 리듬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하고, 대회 전날에는 먹는 것까지 조심하면서 대회장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한다. 또한 대회 1~2주일 정도 전에는 대략적으로 오프닝 등을 정리하는 등 오델로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하지만 올해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는 대회를 준비하려던 내 계획과 루틴은 산산조각이 났다. 대회가 있던 주에 갑자기 일이 많이 생기면서 오프닝 정리나 컨디션 관리는 커녕 실험과 보고서에 치여 오델로 한 판 제대로 두지 못하였다. 결국 대회 전날인 금요일에도 5시에 실험을 마치고 실험 결과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수정한 다음 8시에 퇴근해서 Shimax 프로그램으로 몇 번 오프닝만 체크를 해 본 것이 대회 준비의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는 전국선수권대회보다 5월 11, 12일에 로마에 있는 유러피안 그랑프리 때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하는 방향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한일전 이후 결성한 강남 오델로 스터디 모임이 평소에 준비를 하도록 많은 도움이 되었다. 판 앞에서 직접 두는 것이랑 핸드폰으로 두는 것이랑 생각하는 시간이나 집중도 면에서 큰 차이가 있기에 오프라인 경험이 많은 것이 중요하다. 매주 일요일 저녁 때 만나 6판 정도 두면서 새로운 오프닝을 준비하고, 오델로 감각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사정으로 대회 2주 전부터 스터디 모임을 할 수 없었고 개인적으로 준비하자고 하였다. 또 평소에 엔딩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게 계속 신경을 쓰여 대회 4주 전부터 피스케 엔딩 문제 어플로 연습을 꾸준히 했다. 막연하게 엔딩 문제 연습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작심삼일이 될 것 같아 매일 Easy 난이도 20문제, Normal 난이도 10문제, Hard 난이도 5문제를 푸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지금 회고해보면 아무리 바빠도 자고 일어난 직후나 출퇴근길에 짬짬이 35문제를 풀 시간이 생기기는 했다.

또한, 후기와 오프라인 모임이나 대회에서 내 오프닝 패턴에 대해 많이 알려졌기에 대회를 위해 새 오프닝을 공부할 생각도 하였다. 백을 잡으면 직각을 잡고 Rabbit 계열이나 Cat 계열이 아니면 No-Kung으로 진행하였고, 흑을 잡으면 상대 백 대각 시 Buffalo, 백 직각 시 Rabbit 계열을 지나 Rose-Tamenori/Rose-Birdie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그러나 이를 알고 Horse 또는 Parallel rabbit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어서 그에 대한 대비와 함께 오프라인에서 선보이지 않은 오프닝을 사용할 생각도 했다.

우선 흑을 잡고 상대가 대각을 갈 경우 Cow로 가서 Cow Bat로 빠질 생각을 하였다. 또한 내가 흑이고 상대가 직각으로 갈 경우 Tiger 계열로 진행한 다음 No-Kung으로 쭉 따라가거나 Comp'Oth에서 Lighting Bolt로 빠지는 것을 생각하였다. 또한 내가 백을 잡을 때 직각으로 받기 부담스러운 상대가 있어서 내가 백 대각으로 갈 때, Heath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고, 예전에 사용했던 Maruoka, Landau 쪽 오프닝도 다시 복습하였다.

대회 전날까지 심하게 피곤했는데 퇴근하자마자 자고 일어나니 당일에는 비교적 정신이 맑은 느낌이었다. 지난 번 왕중왕전과 동일하게 쟈스민 기원에서 10시부터 안내를 시작하고 10시 반부터 대국 시작이었다. 대회 장소에 도착했을 때 용범 님과 심판이신 그린 님, 하야 님과 리치 형님이 연습 대국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연습 대국할 때도 체력이나 집중력이 소모되는 느낌이여서 대회 시작까지 쉬고 있었다. 이번 대회는 다른 대회보다 참가자 수준이 높아서 긴장되었기에 좀 마음을 안정시키고 싶었다.

 

[1라운드 흑 김정수 : 백 김태연, 1수 ~ ]

10시 15분 정도에 1라운드 페어링이 진행되고 상대는 볼짱 님 (김정수 貳단)에 내가 백번이었다. 볼짱 님과는 처음 나간 제 1회 수원 대회부터 계속 만났는데 지금까지는 내가 흑번으로 2승 1패를 하였다. 이번에도 만났는데 흑백이 바뀌었다. 볼짱 님은 Stephenson을 가셨고 무난한 No-Kung 진행으로 이어졌다. 중간에 평소 두던 방향이 아니여서 살짝 헷갈리기도 하였으나 백 22수까지는 +0이 유지되었고, 흑 23수 A3에서 흑이 -2로 갔다. 사실 그 이후 진행을 심도있게 확인하지는 않았고 수읽기와 오프닝 감각으로 둬 나갔는데 흑 29수까지 최선을 유지하였다.

 

[1라운드 흑 김정수 : 백 김태연, 29수 ~ ]

백 30수 상황에서 최선은 G4였지만 실전에서는 -4인 D8을 택하였다. 흑이 A2를 여유수로 갖는 상황을 해소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이후 흑이 E8을 두고 나면 우상 쪽에서 수를 내거나 B7으로 끼어넣기를 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상대는 흑 31수로 A2라는 여유수를 먼저 사용하였고 이는 -8짜리 악수였다. 이 수로 인해 32수 백 E8으로 E열에 원래 있던 흑돌을 뒤집지 않고 변에 착수할 수 있었다. 이러니 흑 입장에서는 수가 크게 제한되어 답답한 형세가 되었다. 38수 백 G5와, 39수 흑 H5로 서로 손해보는 수를 뒀고 그 이후 계속 진행되어 45수 흑 F1에 이르러서는 -16까지 흑이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1라운드 흑 김정수 : 백 김태연, 46수 ~ ]

백 46수 상황에서 좀 더 차분히 수를 봐야될 필요가 있었다. 백 46수로 D1을 뒀는데 이는 +8로 이후 흑의 활로를 열어주는 수였다. 이 때 최선은 C1과 E1으로 좌상귀에서 흑의 운신의 폭을 좁히게 된다. 하지만 흑도 47수로 -18인 E1을 뒀다. 이 이후에 백은 G1은 두면 흑이 둘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되어 승부를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48수로 백 F2를 뒀다. 지금 보면 백해무익한 수로 우상쪽에 백이 둘 곳을 많이 만들어 주면서 이후 49수 흑 C1으로 템포를 빼앗기는 수였다. 결정수를 날릴 수 있는 상황에서 놓친 것은 정말 큰 타격이었다. 그러나 50수 백 H8 이후 또 다시 51수 흑 G3라는 -10짜리 패착이 나왔다. 51수로 최선은 흑 H7으로 우하의 마지막 G8을 백이 두게 되지만 백이 H2를 두기 불리한 상황을 만들고 나중에 백이 좌상이 두 칸일 때 들어가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이 수에 52수 백 H7이라는 +8 차선으로 응수한 이후 최선 진행으로 이어져 28 - 36으로 백 승으로 대국이 끝이 났다.

 

[2라운드 흑 김태연 : 백 신동명, 1수 ~ ]

2라운드는 신동명 아마 7단과 대국이고 나는 흑번이었다. 백이 대각으로 받기에 Buffalo 오프닝으로 이어졌고, 8수 백 F4에서 +0, 10수 백 D6에서 -4로 벌어졌다. 승부의 무게추가 쏠리게 된 수는 16수 백 G4로 흑이 좌측 벽을 뚫어야 되는 상황에서 우측에서 수를 만들어 준 -17짜리 큰 악수였다. 이후 23수 상황에서 E7 착수 시 백이 D7으로 응수하는 상황이 껄끄럽게 느껴져 B5를 택하였는데 +12의 우위를 +4로 줄이는 악수였다. 흑은 24수 상황에서 H5로 백에게 껄끄러운 상황을 유도할 수 있었으나 -12인 차선 H3를 택하였고 백이 H5를 둘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25수 흑 G6 차선을 택하였고 백은 우변에서 싸움을 해야되는 상황에서 26수 백 B3로 발을 뺏지만 이는 -22짜리 뼈아픈 실책이었다. 이후 차선이나 차차선을 계속 두면서 백의 우위를 계속 유지하였다. 

 

[2라운드 흑 김태연 : 백 신동명, 35수 ~ ]

36수 상황에서는 백이 -20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백이 36수로 백 H7을 택하면서 차이는 -36이 되었다. 37수 흑 H2로 백은 벼랑 끝에 몰렸기 때문이다. 백은 38수 백 B5 외에 둘 수 있는 곳이 없었고 흑은 이 상황에서 G7으로 결정타를 날릴 수 있었으나 무난한 진행을 하고 싶어 39수 흑 C6를 택하였다. 40수 백 D7 응수 이후 장고 끝에 41수 흑 B7을 택하였다. 최선과 별로 차이가 없는 차선으로 42수 백 B6로 블랙 라인을 끊더라도 43수 흑 C7으로 다시 블랙 라인을 차지하고,백이 44수에 어떻게 응수하던, 45수 흑 A6로 스토너 트랩을 걸겠다는 계산이었다. 백은 44수로 E7을 택하였고 차선 수순이었지만 +20으로 우위는 큰 상황이었다. 41수 상황에서는 C7과 E8이 최선이었지만 차선과 2 차이 뿐이여서 실전에서 최선과 차선의 차이를 구분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43수 상황에서 최선은 A7이었지만 최선 수순을 살펴보았을 때 상변과 좌변을 내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위험 부담을 느낄만한 수순이었다. 

 

[2라운드 흑 김태연 : 백 신동명, 53수 ~ ]

백은 이후 46수 D8이라는 -48짜리 악수를 뒀다. 이후 A1부터 차근차근 먹으면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나만 둘 수 있는 곳은 아끼자는 생각에 47수 흑 C8을 택하였고 +48의 큰 우위는 +12로 줄어들어버렸다. 48수 백 B8으로 +38의 우위가 되었지만 한 번 외면한 코너가 다시 눈에 들어오지 않아 49수 흑 E8으로 +10인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외면하던 코너는 50수 백 G2 이후 51수 흑 A1을 가면서 차지하게 되었다. 백은 52수 B2 최선수를 뒀고 H1을 아끼고 싶어서 둔 53수 F8은 +16에서 +12가 되는 차선수였다. 백은 54수로 G7이라는 -24짜리 악수를 뒀다. 하지만 모두 백이 된 7행을 가만히 놔 두고 나중에 A7을 두는 수순을 보지 못하고 최선수인 H1을 놓쳤으며, 54수로 +8인 H8을 택하였다. 이후 상호 최선 진행으로 36-28 흑 승으로 끝났지만 유리한 상황에서 끝맺음을 하지 못하고 격차를 좁힌 점은 반성해야 될 부분이다.

 

 

[3라운드 흑 오정목 : 백 김태연, 1수 ~ ]

3라운드 상대는 협회장님이신 오정목 九단으로 나는 백번이었다. 이전 경기에서 같이 강남 스터디에 참가하셨던 김용범 님께서 No-Kung으로 갔는데 40수 넘게 정석으로 대응하여 흔들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략을 급히 수정했다. No-Kung으로 가봤자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 백을 잡은 내가 대각을 갔다. 직각으로 갔을 때 질 것이 뻔하니 반쯤은 도박으로 대각을 택한 것이었다. 흑은 Cow 이후 Rose-v-Toth로 진행하였으며 일반적으로 많이 가는 Tanida나 +0 수가 아닌 8수 백 D3를 택하였다. 여기에서 Landau와 Maruoka 또는 제 3의 길로 갈라지는데 흑은 Landau를 택하였다. 최선 진행으로 이어지다가 흑이 11수 F3를 뒀는데 이는 -2인 차선으로 대국 이후 협회장님께서 정석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일부러 차선을 택하였다고 하셨다. 이 때부터 장고를 하면서 최선 아니면 차선으로 응수를 했고, 17수 흑 G1이라는 -6짜리 악수가 나올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이후 서로 차선을 두는 순간이 있었지만 미묘한 우위를 계속 유지하면서 27수까지 진행하였다.

 

[3라운드 흑 오정목 : 백 김태연, 26수 ~ ]

다만 이 대국에서는 상대와의 실력 차이를 너무나도 의식해서 그런지 내가 상대 손바닥 안에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걱정을 했다. 그래서 중후반에 뒤집히더라도 초반에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상황은 피하자는 생각에 초반에 시간을 많이 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걱정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29수 이후부터 B6를 계속 외면했던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28수 상황에서 H3는 흑에게 H5를 둘 수 있도록 열어주는 것이 꺼려졌고, H6는 우변 싸움에서 불리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판단했으며 B6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수가 28수 백 H5로 -5짜리 수였다. 흑은 이 수로 열린 29수 흑 H3를 뒀고 이 때도 B6를 보지 못하고 -12인 30수 백 H2를 뒀다. 하지만 31수 흑 F7으로 흑의 우위는 +7로 좁혀졌다. 하지만 이 때도 B6를 보지 못하고 32수 백 G7이라는 -10짜리 차선을 택하였다. 흑도 B5를 의식하지 못하였는지 31수 상황부터 B5가 최선이었는데 아끼는 듯한 느낌으로 다른 곳을 뒀으며 33수도 흑 F8을 택하면서 +8인 상황이 되었다.

 

[3라운드 흑 오정목 : 백 김태연, 33수 ~ ]

34수 상황에서도 역시 B6를 외면하고 -16짜리 백 D8을 택하였다. 35수 흑 E8으로 들어가면서 상황이 악화되었고, 40수 상황에서 백 D7을 두면서 흑이 B4로 들어가는 것을 방치하고 차이는 20까지 벌어졌다. 44수 상황에서는 무기력하게 상변과 우변을 내주기 싫어서 최선인 G2 대신 차선인 44수 백 B2를 택하였다. 이는 화이트라인에 흰돌만 있어서 대각을 바로 먹지 못한다는 것을 고려한 수였다. 이 때부터는 시간이 부족해서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46수에서 -30인 백 B6를 뒀다. 다른 수를 뒀을 때 코너와 변을 내주는 진행이 너무 뻔히 보여서 꺼려진 감이 있었다. 이 수로 생긴 흑의 여유수로 B1이 있는데 이를 47수로 바로 뒀고 이는 +30의 우위를 14까지 좁히는 수였다. 하지만 우변, 우상귀, 상변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50수 흑 B7으로 격차는 -28이 되었고 이후 최선 진행으로 46-18 백 패배로 선수권대회 첫 패배를 기록하였다. 질 만한 사람한테 졌다는 생각에 심리적인 충격은 덜하였으나 내가 유리한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놀랍게 다가왔다. 3라운드가 끝나고 점심식사가 있었고, 선수들은 한식집과 중식집으로 나눠져서 식사를 했다. 대회 중반부에 힘을 못쓰는 내 특성 상 4, 5라운드에서는 1승 이상을 꼭 해야된다는 생각 뿐이었다.

 

다음 편 : 제 27회 전국 선수권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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