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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점심을 먹고 친구를 고향으로 내려갔다. 지하철 역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그 친구와 같이 봤던 공연 때문에 평소 자주 가는 단골 카페를 갔다. 자취 생활 7년 차의 공허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공간이다. 평상시에는 카페에 들어가서 볶아둔 콩을 한 번 훑어보며 인사말을 나누지만 오늘은 달랐다.

"사장님, 어제 론 브랜튼 공연 팜플렛에 사장님 얼굴이 나와있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공연 때 카페 사장님의 누님을 프론트에서 뵙고, 공연 책자에 나온 것이 궁금하여 발길을 향한 것이었다. 예전에 그 쪽으로 일한 적이 있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 커피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이 곳은 커피 두 세 잔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늑한 공간이다. 하지만 요 근래 커피를 자주 마시다보니 속 쓰리는 일이 잦고 수면에도 지장이 있는 것 같아 왠만하면 하루 한 잔을 넘게 커피를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다보니 대화도 짧아지고 카페에 있는 시간이 짧아질 수 밖에 없다.

일상 이야기를 간단히 하면서 가볍게 리버시워 한 두 판을 하니 벌써 커피 잔은 비어있었다. 나와 사장님 사이에 빈 잔을 두고 있기 무안하여 원두를 사고 자리를 떴다. 집에 도착하여 침대에 누웠으나 해는 중천이었다. 낮잠을 자면 밤잠을 설치기에 평상시처럼 리버시워를 켰다.

휴식 시간를 오델로가 차지한 건 대학 시절부터였다. 다른 게임에 크게 흥미를 못 느끼다보니 할 것이 없으면 핸드폰에서 리버시 달인이나 리버시워를 켜게되었다. 저녁 먹기 전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하였다. 오랜만에 마음이 훈훈해져서 그런지 오후 시간 서향의 창으로 따스한 햇빛이 비쳐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평소보다 편한 마음으로 판을 바라볼 수 있었다.

기록을 찾아보니 10월 대회 직후 10월 25일에 리버시워 레이팅 1800을 넘기고 1760 ~ 1820 사이를 왔다갔다 하기를 반복하였다. 이 때를 회상해보면 확실히 오프라인 대국에서 수가 잘 보인다는 생각에 확신이 들었던 때였다. 판 크기 차이인지 시간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온라인에서는 수가 급하게 나가는 경우나 전체를 다 보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대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루에 두는 판 수를 줄이기도 하였으나 애매한 실력에 불만만 계속 쌓였다. 요 근래는 그냥 닥치는 대로 두다가 계속 지면 풀에 죽어 그만두게 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말로는 레이팅에 연연하지 말고, 실력이 되면 레이팅은 따라오게 되있다고는 했지만 불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왜 잡 생각이 드는지, 왜 수가 잘 읽히지 않는지 이유를 찾고 싶어졌다. 그러다보니 침대에 머리를 세게 박은 일, 스크린 야구장에서 배트를 휘돌리다가 머리를 친 일 등 머리 다친 일까지 끄집어 생각해낼 정도로 신경을 쓰게 되었다. (영구 님께서 밤거리 조심하고 화이바 쓰고 댕기라는 말까지 생각났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징크스에 신경을 쓰는 운동 선수들의 심리도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생각이 반복되다보니 복기만 열심히 하자는 생각 반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어떻게 되겄지라는 생각 절반으로 리버시워를 쉴 때마다 했다. 그 날도 비슷한 생각으로 침대에 누워 지칠 때까지 오델로나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늘도 비슷하게 몇 판 이기다 몇 판 지고를 반복하겠지라 생각하였으나 이상하게 연승은 길고 연패는 짧았다.

연승이 계속되다보면 묘한 불안감이 생기게 된다. 연속 경기 안타 같은 기록이 계속 이어지다보면 선수 심리와 경기 능력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였지만 평소보다 생각이 깔끔해졌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묘하게 연승이 계속 되고 추후 진행이 판 위에서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눈에 잘 들어왔다.

스스로 컨디션이 좋다고 느낄 날이 많지는 않으니 모처럼 잘 될 때 몰아서 하자는 생각으로 저녁도 거르면서 계속 리버시 워를 했다. 크리스마스 날 오후, 많은 사람들이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을 시간에 집에 있기는 했지만 오델로가 잘 된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나이 25. 산타를 믿을 나이도, 선물을 받을 나이도 훌쩍 지나가버렸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듯한 하루였다.

좋은 기세는 해가 지고 나서도 계속 이어졌다. 평상시 일찍 자는 편이지만 졸린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중간에 연패가 잠깐 있기는 하였지만 이상할 정도로 판이 잘 풀려나가는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복기를 하다보니 운이 따라준 판도 평소보다 많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최고 레이팅 갱신만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서서히 1900에 가까워졌다.

이 때부터 심리적 동요가 조금씩 시작되었다. 레이팅 1900 이상인 상태에서 5연승을 하면 리버시워 3단으로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실수에 힘입어 1900을 넘기는 하였으나 4연승인 상황에서 5분 게임 버튼을 눌렀다. 레이팅 1900 초반에 13급인 상대와 매칭이 되었다. 레이팅에 비해 단급이 낮다는 것은 레이팅이 과소평가 되었을 수도 있고 리버시워를 시작한지는 얼마 안됐지만 원래 실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긴장이 되었다.

흑 15까지는 Rose-birdie/Rose-Tamenori 이후 최선 진행이었으나 백 16은 +0 차선 진행이었고 예전에 이 수에 대해 응수를 잘못한 기억을 되살리며 흑 17 C2라는 최선으로 응수하였다. 흑 21수까지는 대립하는 형세를 유지하고 있다가 백 22로 흑의 진영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이 수로 F6를 방어하기는 어려웠으나 흑 23 D1으로 바로 응수해야 되는 상황을 만들고 백은 24수 E1으로 대립을 유지시켰다.

Rose 오프닝의 경우에는 중반 이후에 최선 진행을 찾지 못하면 수치 상으로 크게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았다. 흑 25는 -6 차선으로 최선은 B2였다. 하지만 X 스퀘어를 바로 찌르기에 수순이 생각나지 않아 무난한 진행을 택하였으나 차이가 크게 존재하였다. 백은 이후 28수로 B1부터 G1까지 균형 변을 만들고 흑이 우측의 백의 벽을 뚫어야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다만 백 28수는 최선은 아니었으며 흑이 B1 착수에 영향을 줄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F6로 화이트라인의 네 개 돌을 백으로 바꾸고 그 이후에 B1으로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흑 29수 A4는 백의 우측 벽을 최대한 늦게 들어가고 싶은 생각에 선택하였으나 백 30수 A2로 좌측에 착수 가능한 지점을 없애버리는 악수였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흑 31수 F6는 F열을 따라 흑의 벽을 형성하여 백이 뚫고 나올 수 밖에 없도록 만들기 위한 수였다. 그 이후 흑 33수 G3로 끼워넣기를 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을 만들려고 하였고 백 34수 H3로 우상에 세 칸의 공간이 생겼다. 이에 블랙 라인을 점유하기 위해 35수로 G2를 선택하였다.

백은 36수로 F7을 택하였는데 C라인이 뒤집어져서 흑 돌이 백의 내부에 들어가있는 모양을 형성하였으나 특별히 수가 늘어나거나 유리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 때 최선수는 B5로 흑이 6행을 따라 벽을 만들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어 불리한 상황이 유지가 된다. 흑 37수는 조용한 수를 만들려고 C6를 택하였고 백 38수 B5로 언뜻보면 유리하지만 교묘하게 끼어넣기를 하기 어려우며 행이나 열 전체를 백에게 내주면서 불리한 곳으로 몰릴 수 있는 상태였다. 일단 변 쪽에 안착하기 위해 39수 H4에 이은 41수 F8을 택하였다.

이 이후에는 엔딩이 잘 그려지지 않기도 하였고 시간 문제로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착수하였다. 흑 43수 E8은 백 44수 D7으로 백에게 H3에서 D7까지의 라인을 내주면서 운신의 폭을 좁히는 선택이었고 A7에 끼어넣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고 흑 45수 C7을 택하였다. (이 때 흑이 D8으로 갔으면 백이 수를 줄이면서 불리한 곳으로 유도가 가능하였다.)

이어지는 백 B8에 흑은 D8밖에 선택지가 없었으며 이후 백이 H1 코너를 차지하였을 때 흑은 백이 만든 빈 공간인 H2를 차지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여기서 백이 H1을 차지하는 것은 +2의 유리함을 잃는 -2의 차선으로 패리티 측면에서는 백이 B7을 들어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좌하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흑이 A6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여유수를 하나 더 얻는 효과도 있다.

 

백 50수 A6 이후에는 좌하와 우하 중 어디를 먼저 들어가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우하를 먼저 들어가면 백에게 굳힘돌을 많이 내줘 불리해진다는 판단을 하였다. 흑 51수로 B7을 택하면서 백이 A8 코너를 먹어도 A7으로 끼어넣고 그 다음 A1과 B2라는 여유수를 착수할 생각을 하였다. 다만 백이 56수로 G8에 착수한 이후에 B2 대신 G6를 먼저 착수하였고 백의 패스가 발생하면서 35-29로 게임이 마무리 되었다.

이 게임에서 이기면서 1900 이상인 상태에서 5연승을 하고 리버시워 3단으로 올라갔다. 12시가 거의 다 됐을 무렵이었다. 오델로 잘 되는 것도 기쁜 선물이었는데 3단이라는 성과는 산타의 정체를 모르던 시절 선물을 받았을 때의 기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주었다. 오델로 자체도 재미있지만 성과가 따르면 재미와 의욕은 배가 되는 법이다.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따르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오델로는 노력한 것이 어느 정도 쌓인 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성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오델로 한 판에 일반적으로 30번의 착수를 하게 되고 그 착수가 모여 결과를 만들게 된다. 모든 착수를 최선으로만 갈 수는 없다. 그래서 한 수만 제대로 뒀다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내가 잘 둬서 이긴 것이 아니라 상대의 실수로 이겼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악수 대신 좋은 수로 가고, 차선이나 차차선 대신 최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요령이나 지식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수에 대한 깊은 고민이 같이 따라줘야 되며 이는 대국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이따금 관성적으로 택하는 수를 둘 때마다 생각이 나게 되는 것 같다. 가끔씩 깊게 생각하여 발견하게 된 기발한 수가 모여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보이면 그 때 훌쩍 자라버린 실력을 체감하게 될 것 같다.

다만 올라갈수록 넘어야 될 턱이 높아지고 수읽기가 더 촘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실력이 늘어나지 않는 것에 답답함을 느낄 때에는 게임 레벨 업 시스템처럼 경험치 게이지가 어느정도 찼는지 보고 싶은 정도이다. 아니면 크리스마스에 어른이에게 찾아온 생각하지 못한 선물처럼 특별한 날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희망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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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수원 대회 후기도 아직 안 썼는데 이미 2회 대회까지 끝나버렸다. 전자의 경우 대회 때 있었던 일 뿐만 아니라 그 전후의 이야기를 다 포함하다보니 계속 늦어지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2회 후기를 쓰고 긴 호흡으로 1회 대회 후기를 쓰려고 한다.

2회 대회의 특이했던 점은 온라인으로 풀리그를 진행한다고 공지가 나왔다는 점이었다. 공지 올라온 직후에는 신청한 사람이 적어 오프라인 대국으로도 풀리그를 진행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였으나 학생들이 대거 신청하며 신청 인원이 10명을 넘어가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온라인 대국이여도 대회에서 10판 넘게 두면 집중력과 체력이 크게 소모될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오프라인 대국에서 좀 더 수가 잘 보이는 느낌이 있어서 온라인 대국이 살짝 꺼려지기도 했었다.

1회 대회 끝나고 난 이후 오프닝 연습을 위주로 리버시 워로 많이 뒀던 것 같다. 처음에는 레이팅이 상승하다가 1800 초반에서 1700 후반을 왔다갔다 하기 시작했고 온라인 대국에 집중이 잘 안되기 시작하였다. 몇 판 져서 레이팅 복구를 하려고 계속 두면 생각은 잘 안되고 기만 빨려서 대회가 가까워졌을 무렵에는 리버시 워 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결국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없이 대회를 맞이하였다. 대회 전 날, 주최를 맡으신 리치 형님께 대회 준비에 도움이 필요한지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는데 때마침 일찍 와서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8시 반이나 9시까지 간다면 아침을 먹고 이동할 수 있었으나 8시까지는 가야됐다. 평상 시 일어나던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 급하게 이동해야되는 일정이 빠듯하게만 느껴졌다.

다음 날, 삼각김밥 하나와 바나나 하나를 아침으로 먹고 길을 나섰다. 마치 식물처럼 햇빛에 따라 컨디션이 좌우되는 나에게 겨울 아침은 얼어붙은 세상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시맥스나 리버시 워를 키려고 하였으나 시험 전날 벼락치기 하는 학생과 같아서 금방 포기하였다. 학생들이 많이 오니 너무 많이 긴장할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과 함께 버스 안에서 멍 때리면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거의 시간에 맞게 리치 형님 집에 도착하였다. 집 안의 짐을 문 앞으로 빼보니, 오델로 판, 시계, 간식 등 물품이 큰 박스 두 개 분량이었다. 이 짐을 도서관으로 끌고 가다가 영구 님 집에 잠깐 들려 담소를 나누고 대회장에 가서 준비를 시작하였다. 참가자가 16명이여서 풀리그 진행은 불가능하고, 4명 씩 4그룹으로 나눠 그룹 내에서 리그전을 치룬 후 그 순위에 따라 그룹을 재편성하는 방식으로 3번의 소그룹 리그전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테이블 8개에 시계와 판을 배치하고 간식과 대진표를 준비하다보니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취소한 분 때문에 구세진 초단님과 영구 님께서도 대회에 참가하신다고 하여 대회가 한 층 더 치열해졌다.

대회 대진표는 1회와 동일하게 참가 신청 역순서로 원하는 자리에 배치하고 먼저 신청한 4명은 대진표 내에서 다른 사람과 위치를 옮길 수 있었다. 대회에 대한 열망이 가득차서 이번 대회도 가장 먼저 신청했기에 대진표를 수정할 수 있었고 여러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고민의 주된 골자는 1라운드 때 학생들만 만날지 아니면 기사 한 명이 있는 조에 들어갈지였다. 2라운드 때 기사들끼리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체력 안배를 목적으로 학생 3명이 있는 조에 내가 들어가는 방향을 택하였다. 그리고 그 선택이 정말 재미난 결과를 낳게 되었다.

1라운드에는 학생 3명과 같은 조가 되어 긴장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같이 둔 학생 중에 거의 속기를 두듯 빠르게 착수를 하는 학생이 있어 진정시켜주고 싶은 학생이 있었고 대국 이후 잘못 둔 부분을 물어본 학생도 있었다. 특히 다른 학생들은 착수가 빠른 반면 질문을 한 학생의 경우에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에서도 꼭 한 번씩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이 기특하다고 생각되어서 그런지 잘못된 부분을 알려달라는 말에 어설프게나마 복기를 하면서 안쪽으로 뭉치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줬다.

2라운드 대진은 죽음의 조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조합이었다. 영구 님, 구세진 초단 님, 아마 6단 신동명 님과 같은 조였다. 이 때 대진표를 짤 때 생각을 더 깊게 해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대회에 신동명 님과 입단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었기에 조금 더 부담이 됐던건 사실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죽음의 조에서 다 죽여버리고 살아남겠다는 말도 하였으나 허장성세였을 뿐이었다.

대회 전체를 통틀어 2라운드 때 가장 집중력이 떨어졌던 것으로 평가한다. 구세진 초단과의 첫 경기에서는 Rose-birth까지 진행하였다가 다른 길로 빠졌는데 산만한 상태에서 수 읽기가 분명하게 안되고 실수가 잦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우 33-31로 이긴 후 영구 님과의 대국에서는 초반에 유리한 형세로 진행되다가 중후반 상대에게 수를 내주고 벽을 만드는 수 등 악수가 이어지며 48-16으로 패배하였다. 마지막 경기는 입단을 경쟁하는 동명 님과의 경기였는데 백으로 Rose-v-Toth에서 살짝 비트는 오프닝을 준비하였는데 이후 진행에서 서로 헤맨 듯 싶었다. 중반까지만해도 넉넉하게 이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묘하게 돌을 많이 못 먹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패리티까지 뺏기면서 36-28로 패하였다. 리버시 워에서처럼 중반에 치명적인 수를 둬서 패하는 패턴이 계속 반복되었다는 것에 약간 화가 나기도 하였다.

2라운드를 끝냈을 때 영구 님이 3승, 나머지 세 명이 1승 2패로 동률이되고 돌 개수로 순위를 가르게 되었다. 내가 세 경기에서 얻은 돌은 77개였다. 세진 님은 73개였고 동명 님은 76개였다. 말 그대로 죽음의 조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가 기어 올라와 3라운드 승자조로 갔다고 할 수 있겠다. 동명 님은 아쉬워하며 아버지인 영구 님께 돌 하나만 더 줬으면 순위가 달라졌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2등으로 3라운드 승자조로 올라가면서 자동으로 입단이 확정되었다. 같은 조였던 영구 님을 포함하여 광욱 님, 세진 님, 리치 형님, 동명 님께 축하를 받으면서 한 편으로는 기뻤지만 아쉽게 진 두 경기와 돌 개수로 순위를 가르게 된 상황은 씁쓸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실력과 대회 결과는 별도라는 생각에 반성은 잠깐 미뤄두고 남은 경기에 집중하려 하였다.

입단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그런지 3라운드는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대국에 임할 수 있었다. 심리적 안정은 집중력 향상으로 이어진 것 같다. 3라운드에서는 영구 님, 볼짱 님, 리치 형님 순서로 대국이 이어졌다. 영구 님께서 대진표 상 가장 위쪽에 있으셨기에 대회 룰 상 흑백 결정권이 있으셨고 백 잡고 침니로 가서 필살기를 날리겠다는 무서운 선언을 하셨다. 그리고 나와의 첫 경기에서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침니는 워낙 경험이 적은 오프닝이여서 그런지 부담을 안고 시작하였고 7수 C4는 나름 침니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으로 연습을 했던 수였다. 그러나 여기에 영구 님은 C3를 두셨는데 이는 본 적이 없는 대응이였고 나는 C2라는 좋지 않은 대응을 하였다. 그 다음 영구 님이 최선수로 가지는 않으셨지만 내가 조금씩 좋지 않은 수로 진행하였고 19수 D1을 둘 때 수치는 -6이었다. 이 때 백이 D3를 두면 답답했던 상황이 좀 풀릴거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C1으로 진행하였고 나는 바로 D3의 구멍을 매우면서 전세는 비등비등하게 바뀌었다. 이후 24수 H3는 내가 돌 4개를 잃고 -4가 되는 진행이였으나 그 이후 백이 25수 B4로 진행하면서 내가 G2로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이후 +7에서 돌 두 세 개 정도 왔다갔다 하는 진행을 이어가다가 백 36수 H4, 38수 A6 때 +16까지 벌어진 상태에서 엔딩에 돌입하였다.

43수 A1은 최선수는 아니었지만 B7, C7 이후 진행이 그려지지 않아 안정적인 선택을 하자는 생각에 둔 수였다. 최선 차선 진행은 둬 봐도 다시 생각해낼 수 있는 수인지 의문이 든다. 그 이후 51수 A3를 둘 때는 H7을 두면 반격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였는데 수치 상으로는 반대로였다. 그 다음 53수 G8으로 갈 때 장고를 했는데 생각을 해 봐도 최선수 같은데 묘한 거부감 같은 것이 있었다. 아마 하변에 빈칸이 하나 만들어지고 우하귀 뺏기는 진행이 뻔하게 보여서 그런거 같았지만 그 길을 택하였다. 이후 +-2를 왔다갔다 하였으나 36-28로 대국을 마무리 지었다. 영구 님께서는 50수 부근부터 패배를 직감하신 듯 하였고 대국이 끝난 후 종반에 패리티보다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갔어야 했다고 평하셨다. 2라운드에 졌다가 이겨서 그런지 큰 산 하나를 넘은 느낌이었고 이겼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대국으로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 대국을 복원해주신 영구 형님과 리치 형님께 감사드리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3라운드 두 번째 경기는 볼짱 님과의 경기였다. 1회 수원 대회 때 패자조에서 만나 Rose 오프닝 이후 Greenberg/Dawg 오프닝으로 진행하였으며 28-36으로 패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볼짱 님의 대회 후기 등에서 Rose 오프닝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 길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Rose 오프닝은 제 1회 수원 대회 2주 전에 처음 알게 된 오프닝이다. 이전에는 Rose로 가는 길에 계속 악수를 둬서 피하다가 우연히 다시 두고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왠지 진행이 재미 있어서 계속 두고 복기를 해봤고, 은근히 최선, 차선 수를 잘 따라가는 것을 확인하였고 자신감이 조금 붙어 대회용 오프닝으로 준비하게 되었다.

볼짱 님께서 Rose로 가는 중간에 틀지 않을까 걱정하였으나 다행이 Rose 그 다음 Rose-birth와 Rose-birdie/Rose-Tamenori로 이어졌고 24수까지는 최선수로 이어졌다. 그 다음 25수 B3는 차선이었고 26수 A3로 수치는 0이 되었다. 다음 이어지는 H3는 G5와 고민하였는데 -7로 좋지 않은 선택이었으나 30수 H6로 다시 동률이 되었다. 백은 32수 E8에서 -7이 되었고 40수까지 흑의 우세로 이어지다가 41수, 43수에서 +8을 +2로 줄이는 수를 두었고 47수에서 0, 49수에서 -6으로 다시 떨어졌다. 아마 우세라고 생각하고 깊게 생각을 하지 않아 패배할 수 있는 상황까지 몰렸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43수 A2 대신 B6를 두는 건 생각을 조금만 더 해도 찾을 수 있는 수였는데 너무 금방 결정을 한 것 같다.

+8에서 -8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팽팽하게 진행됐던 대국은 백의 50수 A1으로 승기가 흑으로 기울어졌다. 블랙 라인과 B열이 모두 흑으로 바뀌면서 백이 좌변과 상변을 다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 놓치신 듯 하였다. 그 이후 돌 2개 정도 왔다갔다 하였다가 46-18로 대국이 마무리 되었다. 중반 이후 진행이 기억나지 않았는데 끝까지 대국을 복원해주신 볼짱 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이 경기가 끝나고 나는 2승, 볼짱 님은 1승 1패, 영구 님과 리치 형님은 1무 1패였다. 리치 형님과의 마지막 판에서 무승부만 나와도 우승이 확정이 되는 것이었고 내가 지고 볼짱 님이 이긴 경우 돌 개수로 우승자를 가리게 되는 상황이었다. 리치 형님과의 마지막 판에서 Rose로 가는 진행이 이어지다가 Rose로 가는 마지막 수를 비틀면서 진행이 되었고 유리한 진행이 이어지다가 중후반에 간극이 좁혀져 35-29로 이긴 경기가 되었다. 이렇게 3라운드 3승으로 수원 대회에서 우승과 입단을 동시에 이루게 되었다. 마지막 라운드에 전승을 거둔 것에는 이전 라운드에서 입단이 확정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원래 감정 기복이 크지 않으며, 기뻐도 크게 웃지 않고, 슬퍼도 크게 울지 않는 성향 때문에 왠만한 일에는 감흥이 별로 없는 스타일이지만 우승과 입단은 내 마음을 흔들만한 일이었다. 특히 오델로 관련해서는 1승 1패에 만족하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만족하는 생각에 혹시나 마음이 헤이해질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가 끝난 이후, 하루만 정말 크게 기뻐하고, 하루 이틀 정도는 오델로 생각을 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대회 전날까지만 해도 떨어진 리워 레이팅에 계속 신경쓰였는데 그런 식으로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계속 오델로와 함께할 것인데 너무 스스로를 몰아치는 것 역시 피하고 싶었다.

또한 살면서 이 정도로 크게 기쁘고 행복했던 경험 역시 오랜만이었던거 같다. 이는 초, 중, 고, 대학교 때 잠깐씩 스쳐지나가면서 삶에 녹아내렸고, 어느새 내 생활 속에 스며든 오델로라는 취미에서 결실의 꽃이 맺혀서 그런 것 같다. 생각해보면 다른 취미는 손을 놓거나 많이 소홀했던 적이 있었지만 대학 입학 이후 리버시 달인을 설치한 이후로는 꾸준히 오델로를 해 왔던거 같고 애착이 더 강한 것 같다.

3라운드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의 경기는 이미 끝나있었고 번외 경기와 돌 빨리 뒤집기 경기 이후 식사 장소로 이동한 상태였다. 빠르게 정리하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기분 같아서는 술을 진하게 한 잔 하고 싶었으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많이 오셔서 그럴 수는 없었다. 도착했을 때 그 분들은 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고 세진 님과 광욱 님을 제외한 성인들은 홀에서 가볍게 한 잔씩 하며 소회를 밝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승한 현실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었다. 식사 이후 술 한 잔 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맥도날드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이어갔고 그 자리에서 광욱 님과 한 판을 뒀으나 대회 끝난 이후 마음이 풀어져서 그런지 크게 패하였다. 이렇게 하루가 구름에 붕 뜬 느낌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하마터면 단증을 못 챙길 뻔하였으나 헤어지는 길에 도서관에서 다시 찾아 서울로 올라왔다. 다음 날이 월요일이여서 술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단골 카페로 발길을 향하였다. 사장님께 자랑을 하였으나 오델로를 잘 모르셔서 그런지 이야기가 많이 진행되지는 않았고 오늘의 대국을 정리하면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흑으로 많은 승을 거두고 Rose 오프닝에 익숙해진 것은 성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앞으로 많은 오프닝에 대한 경험을 넓히는 것이 남겨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온라인 대국에서 중반 이후 유리함을 이어가지 못하고 격차가 좁아지거나 역전당하는 상황을 줄이는 것 역시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한다. 엔딩이야 문제 어플이 있는데 중반이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일신우일신이라는 것처럼 좀 더 새로워진 오델로를 두고 싶은 것이 내 소망이다. 눈에 당장 보이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연습하고 복기하며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메워나가고 한 발자국 씩 더 나아가고 싶은 욕심은 여전하다. 12월 말의 왕중왕전에서 많은 유단자 분들과 부딪히면서 견문을 넓히고 싶고, 그 때까지 좀 더 새로워진 모습을 만드는 것이 내 희망 사항이자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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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 커튼은 차디찬 바람을 막아줬지만 일요일 오전의 포근한 햇살을 가리고 있었다. 해는 이미 중천이었으나 나는 어두운 방에서 눈을 떴다. 대충 옷을 걸치고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차가운 공기가 옷 소매 사이로 들어가 내 몸을 흔들어댔다. 큰 길가에는 세련되고 깔끔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일요일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 바쁜 흐름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는 순대국을 먹으러 가며 하루를 시작했다.

늦게 시작한 하루는 물 위의 기름처럼 둥둥 떠다녔다. 다들 누군가와 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바닷가에 말려지는 피대기처럼 늘어지고 있었다. 정처 없이 동네 주변을 돌다 발길이 멈춘 곳은 단골 커피집이었다. 요 근래 2, 30대들이 자주 찾는 골목 근처에 있는 카페지만 젊은 감성이 배어있는 디자인이 아닌 따스한 햇살의 주황빛이 어울리는 공간이다. 하얀 벽돌 무늬의 벽은 햇살을 머금어서 그런지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노르스름한 느낌으로 온기를 주며 목재의 테이블과 기둥, 바 자리는 부드러움을 한 층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따뜻한 분위기 곳곳에 로스터기, 커피 관련 서적과 물품이 정신 없는 회사원의 책상처럼 숨어 있는 모습은 한 사람의 일생이 녹아 들어가있는 것 같다. 카페의 따스한 분위기 때문에 누군가와 오델로 판을 펼치고 한 두 시간 정도 대국을 계속 두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도 한다.

카페에는 사장님 혼자 계셨다. 여느 때처럼 사장님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바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사장님께서는 인사와 함께 커피 적시는 시간에 따른 맛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음을 권하였다. 카페 사장님은 커피 이야기를 할 때면 호기심을 채운 아이처럼 눈이 반짝이며 밝은 기운과 커피에 대한 열정을 듣는 사람에게 전달해주며 나는 그 느낌을 받고자 그 분을 마주 보며 커피를 마시게 된다. 시음에 이어 커피 한 잔과 함께 커피 향이 어떠니, 드립을 어떻게 해야되니, 건물 어디가 이상이 있다니 등 이야기를 하다보니 잔이 바닥을 드러냈다. 모든 음료와 음식을 빨리 먹는 나의 습관이 여지 없이 드러났다. 최근 활력이 없고 멍해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한 편에 존재하던 답답한 마음이 섬세한 드립 커피를 들이키게 만드는 것 같았다.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최저점을 찍고 있다보니 오델로 역시 잘 안되고 있었다. 머리 속으로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으나 실제로 두고 나서 보면 섣부른 판단과 집중력 부재의 연속이었다. 초반에 잘못 둔 판은 불리한 기세를 타고 휩쓸려 내려가버리고, 중반까지 비등비등하거나 유리하게 가더라도 어느 순간 발을 잘못 디뎌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버렸다. 복기를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실수한 순간에 대한 자책과 원망만 남았다. 아는 분이나 고수 분들과 둘 때에는 걸레에 남아있는 물방울 하나까지 짜버리겠다는 심정으로 뇌를 쥐어짜는 느낌으로 대국을 하였지만 그 이후 녹초가 되기 십상이었다.

한 판 이기고 세 판 지는 일상이 반복되다보니 내 착수 하나 하나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부담감과 공포심은 오랜만인것 같았다. 예전에 암벽 등반을 할 때에는 발 놓을 곳, 손 둘 곳, 체력 셋 중 하나만 만족스럽지 않아도 온 몸이 굳어버리곤 하였다. 그 때 고개를 돌려 뒤를 보는 순간 올라온 높이가 보이고 서울 시내가 눈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아무리 줄에 묶여있는 몸이라고 하더라도 1~2 m 떨어진다는 것은 나에게 큰 벽이었다. 비슷한 경험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라운드 서킷 트레킹 때도 있었다. '토롱 라'라는 코스 최고점을 가는 날에는 해가 뜨지 않은 새벽 2~3시 경부터 출발하였는데 사람 두 명이 나란히 서기도 빠듯한 길에 양 옆은 평지가 보이지 않는 경사였다. 한 겨울 가는 길의 절반은 얼어있어 잘못 딛으면 어둠 속 비탈길을 따라 사라지는 모습이 머리 속에 계속 그려졌다. 산행 중의 두려움, 그리고 벌벌 떨면서 내딛는 한 걸음이 최근 나에게 오델로와 착수가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첫 잔을 다 마실 때 쯤 손님들이 오기 시작하였고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다 사장님이 커피를 내리는 것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장님께서는 다른 손님의 커피를 내리면서 드립 커피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그 중 칼리타 드립퍼와 고노 드립퍼에 대한 차이 이야기도 있었다. 전자는 사다리꼴 모양에 구멍이 3개이고 후자는 원뿔 모양에 구멍이 1개여서 물의 체류 시간과 추출 정도에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어느 순간 사장님께서 칼리타가 아닌 고노 드립퍼로 추출을 시작하며 시간이 없는 관계로 점 드립은 못해주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중에는 고노와 칼리타를 둘 다 쓰기 시작하였는데 어느 순간 커피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분쇄된 원두를 담고 물을 조금 부어 커피를 적시는데 물 붓고 시간이 지나 필터가 조금씩 젖어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칼리타를 쓸 때에는 물을 세 번에 나눠 부으셨는데 필터가 젖기 시작한 시점부터 원두에 물을 붓는 모습과 추출구로 커피가 떨어지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드립 커피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심자지만, 드립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원두 분쇄도, 물 줄기의 굵기, 추출 시간 등이 결정한다는 원론적인 말은 이 글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 일련의 과정에 집중하며 쳐다보니 드립 커피 내리듯 오델로를 두고 싶어졌다. 초심자인 나도 물 줄기가 두꺼운지 아닌지, 천천히 추출되는지 느리게 추출되는지 신경을 쓰게 되어있다. 그 일련의 과정을 고려하여 결과물을 얻어내는 것처럼 내 머리속에 물줄기를 흘려 적당한 수읽기를 한 후 커피 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처럼 수를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카페에 도착한 순간부터 사장님 이야기가 잦아들 때 오델로를 한 판 씩 뒀는데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하였다. 하지만 내 머리 속으로 드립 커피를 내리듯 오델로를 두겠다는 생각을 하니 심란한 마음이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 거짓말처럼 두 판을 이겼다. 그 이후에는 결과가 좋지 못하였는데 집중력이 소진된건지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다. 사장님께서 다른 손님들 커피를 내리면서 조금 남은 커피를 계속 주셨고, 평소보다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되었다. 원두를 사서 돌아오는 길은 카페로 향하던 발걸음보다는 가볍게 걸어온 것 같다.

저녁을 먹은 후 집 정리를 하고 나니 체력, 감정, 집중력을 많이 썼다는 것을 직감하였으나 습관처럼 스마트폰으로 오델로를 두기 시작하였다. 이 때는 거의 반쯤은 아무 감정 없이 충분히 생각하며 둔거 같다. 카페 사장님께서 오늘 처음 나에게 했던 이야기는 커피를 내리기 전 적시는 시간을 30초에서 1분으로 늘였더니 커피의 산미가 더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오프닝 아는 구간을 지나고 머리 속으로 모든 곳에 다 한 번씩 둬보려고 했다.

그 결과, 내가 내린 한 잔의 드립 커피와 같은 기보가 나왔다. 내 드립 커피는 단골 카페의 깔끔하고 상큼한 맛을 따라가지는 못하고, 커피의 좋은 향미를 다 끌어내지 못하며 씁쓸한 잡향이 같이 추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후의 식곤증을 쫓아내면서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원동력과 만족감을 준다. 비록 복기하며 아쉬운 점을 발견하게 되지만 두고 난 이후 깔끔한 느낌이 든 것이 꼭 내가 내린 커피를 마신 것 같다. 커피를 내릴 때 언제까지 내릴지 고민을 하고 멈출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둔 두 판도 특히나 엔딩에 아쉬운 점이 존재하였다.

 

(흑을 뒀던 판)


(백을 뒀던 판)

커피를 취미로 입문한 후, 분쇄된 원두에서 나는 향기를 맡는 과정, 커피를 만들면서 맛을 상상하는 과정, 실제로 맛을 보는 과정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한 번은 꼭 커피를 만들게 되고 점차 맛에 대한 만족 역시 증가하고 있다. 최근 내 드립 커피에 어느 정도 만족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내 오델로 실력도 향상하는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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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오델로를 소재로 한 일기 또는 수필을 꾸준히 쓰려고 합니다. 아직 10월 수원 대회 후기도 다 못 썼는데 이런걸 쓰는군요. 관심 있게 읽어주실 분이 얼마나 많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델로를 모르시는 분은 제 일상과 감정을, 오델로를 아시는 분은 오델로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중에 제가 이 글을 보고 추억을 회상하거나 복기 또는 반성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고요.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켜주신 볼짱 님과 기보 추가를 위한 툴을 올려주신 그린 님께 감사드립니다. 잠이 안 오는 날 그 날의 기분에 맞는 판을 같이 곁들여 글을 써보겠습니다. 판에 대한 해설은 추가하고 싶을 때 쓰겠습니다. 글 실력과 오델로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너그럽게 이해하고 읽어주시면 정말로 감사하겠습니다.

추가로 두 판 모두 34로 이겼군요. 수원 대회 때 34-30으로 졌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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