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대국의 시작은 야마카와 타카시 七단과의 대국이었다. 그의 첫인상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의 괴짜스러움과 선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대국 시작 전 5번 테이블에 있었던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서울대 대 동경대 매치라는 이야기를 했고 첫인상에서 느껴지는 촉이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델로는 다른 문제였다. 야마카와 타카시 七단이 돌 하나를 붙잡았다. 이 순간은 사실 뜸 들일 이유가 전혀 없지만 돌 고르는 순간은 떨리기에 위, 아래 선택하는 것을 망설였다. 내 개인적으로 흑을 잡으면 꿈틀거리기는 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백을 잡으면 꿈틀거리지도 못하고 말라 죽을 것 같았다. 이번 대국에서 내가 선택한 쪽은 백이었다.
Stephenson에 이은 나의 선택은 8수 백 G5로 준비해뒀던 No-Kung으로 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상대가 언제 어디에서 최선이 아닌 길로 틀지였는데 9수 흑 C6로 -2 차선으로 바로 틀어버렸다. 이전에 이 수에 엉뚱하게 대응하여 대패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차선 진행도 살펴보기는 하였으나 최선 진행만큼 길게 알고 있지 않았기에 이후 진행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11수 백 E3 최선 대응에 이은 12수 흑 F2 역시 놀랄 수 밖에 없었던 수로 이 역시 차선이었다. 그 이후 차선 진행을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한 대응책으로 또 한 번 틀어버리는 것을 준비했던 것 같다. 이에 최선 E2를 놓치고 +0인 백 F3를 12수로 택하였고, 이후 13수 흑 D2, 14수 백 C5, 15수 흑 G6 모두 최선이었다.
16수로 백의 최선은 F1이었으나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수이다. 이후 최선 진행을 살펴본 결과 상변을 먼저 들어가는 과정에서 흑이 좌하쪽에 착수하게 만들고 추후에 백이 착수 지점이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가운데에서 크게 벗어나기에 감각적으로 꺼려지는 감이 있어 -4 차선인 16수 백 B4를 택하였다. 상대가 최선인 17수 흑 E2로 대응하였을 때 백 입장에서는 그나마 B3가 둘 만한 곳으로 판단했다. 상대가 C2나 B6로 들어와도 어느 정도 무난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생각이었고 18수 백 B3는 최선이었다. 19수 흑 E6는 +0 차차선으로 C2, B6 이후 무난한 진행을 피하기 위한 흔들기로 생각된다. 하지만 20수 백 D7를 착수하면서 D6의 흑돌만 백으로 바꾸고 이를 다시 상대가 건드리기 까다롭다고 판단했다.
21수에서 흑의 최선은 G3와 C7이었으나 상대는 -4인 B6를 택하였다. 이 상황에서 최선은 백 E7이었으나 22수 백 B5 이후 23수 흑 C2로 흑의 내부 세력을 견고하게 만들어버렸고 잠깐의 우위는 +0으로 회귀하였다. 22수 상황 때도 그렇고 24수에서도 간과하고 있었던 수는 E7이었다. E7으로 아래쪽에 벽이 형성되도 상대가 그 벽을 바로 뚫고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이후 흑이 F7을 두면 G4로 대응이 가능하고, 흑이 G3로 대응하면 백은 F7으로 대립하는 형세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읽지 못하고 -9인 A6라는 악수를 뒀다. 상대를 좌측으로 유도할 생각이었으나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25수 흑 H5는 백의 착수 가능한 지점을 최소화하는 수로 최선수이다.
이 때부터 형세를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백 26수에 최선은 G4였으나 형세를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차선인 E1에 착수했고 27수 흑 A1 최선으로 응수했다. 28수로 최선인 G4를 택하면서 흑이 29수로 E7을 둬 주기를 바랬고 상대도 이에 응하였다. 흑의 29수로 최선은 H4이나 수치 상으로는 큰 차이는 없었다. 다음으로 흑이 좌측이나 아래쪽으로 착수하기 위한 전초 단계로 30수 백 F8을 택하였고 이는 -10 차선이었다. 최선은 백 G3로 -8이다. 두 수의 차이는 흑이 H3에 착수할 때 여유수가 하나 더 늘어나는 효과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31수 흑 H4는 +6짜리 차선이었다. 이 상황에서 우상 쪽에서 흑이 착수 가능한 곳을 없애는 방향으로 정리하는 것을 우선이라 생각하여 32수로 백 H3를 택하였는데 이는 -14짜리 실착이었다. 만약에 앞에서 서술한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면 G3가 더 적합했고 최선은 F7으로 흑이 G3를 두게 하여 대립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했다. 그 이후 33수 흑 H2, 34수 백 G3의 최선 진행으로 이어졌고 35수에서 흑의 실착이 나왔다.
35수로 흑의 최선은 F1이었다. 만약 백이 D1으로 응수하면 D열이 모두 백이 되어 흑이 D8에 착수하는데 부담이 줄어들고 백이 G1을 두면 흑이 A3를 뒀을 때 불리한 지점만 착수가 가능하게 된다. 그렇다고 흑이 상변에 균형 변을 만들게 할 수도 없기에 난감한 수이다. 그러나 35수 흑 G1은 +6으로 우위를 좁히는 수였다. 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36수로 여유수인 F7를 선택했다. 37수 흑 A3는 여유수로 백의 착수 지점을 최소한으로 늘이는 최선수이다. 이 상황에서 백은 A2, B2, H7이라는 최선수가 있었는데 그 중 38수로 맨 마지막을 택하였다. H1 코너를 얻은 이후 끼워넣기 당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지만 흑이 바로 H6에 착수할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뒀다.
흑에게는 39수로 A4를 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 이후 A4, A5, D1, F1, A7으로 진행하면서 흑 입장에서는 끼워넣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서 G2에 흑만 착수하도록 설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흑은 바로 끼워넣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는지 39수로 +2짜리 흑 C7을 택하였다. 누구나 실수를 하게 되어있지만 상대의 실수를 잡지 못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이 상황에서 흑의 상변을 불규칙변으로 만들고 끼워넣기를 할 준비를 하기 위해 40수 백 F1을 택하였는데 이는 -10짜리 수였고 최선은 D1과 D8이었다. D8의 경우에는 상변에 최대한 늦게 들어가면서 흑이 착수 가능한 지점을 늘여주는 걸 기다리고 끼어넣기를 성공시키는 진행이다. F1과 D1의 차이는 블랙라인의 상태와 연관이 있다. D1에 착수할 경우 블랙라인에 백돌 2개가 띄어져 있어 블랙라인을 흑이 차지하는 경우가 없지만 D1에 착수할 경우에는 블랙라인 가운데 4개 돌 중 하나만 백돌이 되고 추후에 대각을 빼앗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추후 최선 진행을 비교하면서 알아낸 차이로 이 시점에서 바로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41수 흑 D1은 자명한 수이다.
이 시점부터 악수와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부족한 면도 있었겠지만 이 부분을 좀 더 깊게 생각했으면 어땠을까하는 후회가 남는다. 42수에서 백의 최선은 D8이었고 끼어넣기를 의식했으면 바로 A2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엉뚱하게 42수 백 C8을 착수하였고 수치는 -10에서 -24로 급락했다. 43수 흑 A4에 여유수 A5을 내주고 둘 수 있는 곳은 네 군데 밖에 남지 않았다. 이 때 G2를 두면 잠시나마 블랙라인을 차지하고 흑이 확실하게 대각을 끊는 방법은 G8 밖에 없기에 H8을 백이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블랙라인을 차지해도 흑이 다시 끊을 것이라는 생각에 A2로 끼어넣기를 시도했고 이 때 -24의 수치는 -30으로 바뀌었다.
흑은 바로 A1을 먹어줄리가 없었고 45수 흑 A5로 끼어넣기를 하였다. 이 때 B2를 두면 끼어넣기조차 할 수 없기에 46수 백 G2에 착수하였고 상대는 47수 흑 B7로 응수했다. 48수에서 최선은 B8이었으나 -32짜리 차선 B2에 착수했다. 그 이후 49수 흑 A7에 끼어넣기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받아드릴 수 밖에 없었고 B1, A1, B2, E8, D8, H1, G8, B8의 최선 진행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에 세 칸 남은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하지 못하고 -40인 50수 H6를 택하였다. 결과는 52-12로 대패였다.
대국 직후에는 서서히 밀리다가 격차가 꾸준히 커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글을 쓰면서 복기를 해보니 격차가 -10 언저리로 유지되고 -2까지 좁혀졌다가 갑자기 확 커져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허탈해졌다.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 필요한데 초중반에 힘을 많이 쓰면서 후반에 허망하게 무너져버렸다. 중반과 후반은 스스로도 보완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대회 당시에는 대패에 대한 충격만 머리를 사로잡고 있었고 다음 판에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대패만큼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번 판도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복기 요청을 못하고 나중에 기록지를 보고 기보를 발췌하였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수 읽기가 치밀하고 서로의 수읽기가 맞아들어가서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면 복기가 되기 쉬워지는데 아직은 자연스럽게 복기가 되지 않는다. 이 역시 내 실력이 부족함을 탓할 문제이다. 4라운드도 한국의 전패였기에 좀 더 분발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다음 상대는 작년 세계 대회 5위의 후쿠나가 코하치 七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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