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글 - 제 2회 왕중왕전 후기 1편
점심을 먹고 돌아와 커피를 한 잔 했다. 사실 대회 때는 되도록 커피를 안 마시려고 했다. 평소에도 물을 많이 마시고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인데 커피를 마시면 그 빈도가 더 증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가 차서 집중이 흐트러질게 걱정되어 커피를 찾게 되었다.
3라운드 끝나고 났을 때부터 4라운드 상대가 김동권 님이라는 것은 정해져있었다. 중요한 것은 흑백 중 어떤 것을 잡게 되느냐였다. 3라운드에서 흑을 잡았기 때문에 내심 백을 잡을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페어링 결과 흑을 하게 되었다.
동권 님과 직접 둬 보는 것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 (온라인 미니 대회 때 둔 적이 있는지 없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전에 동권 님께서 오픈 카톡방에서 새로 들어오신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저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잠깐 떠올랐다. 나는 그 분에 대해 정보가 많이 없어 대국이 어떻게 진행될지 감이 안 왔지만 동권 님은 대국을 앞두고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다만 입단하지 않으신 분 중에 실력이 기사와 맞먹는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게다가 남성우 님, 손범근 님, 리치 형님까지 실력자 세 명에게 승을 거두셨으니 긴장이 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백은 직각으로 진행하였다. 이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Rabbit에 이어 Rose, Rose-Birdie/Rose-Tamenori 오프닝으로 진행되었고, 흑 17까지 최선 진행이 이어졌다. 여기서 백의 최선은 두 곳으로 H4와 D7이다. 평소에 H4로 가는 진행을 많이 봤었고 제 2회 수원 대회 때도 나왔다. 그래서 이 길에 대한 연습을 했고 그 추후 최선 진행까지 기억이 나게 되었다. 최선 진행의 경우에는 비슷한 모양이 다른 수순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에 뇌리에 깊게 남는 진행이였다. 반면 D7은 가끔씩 보이는 수순이었고 대회 전까지 이에 대한 대응에서 실수를 반복하였다. 대회 하루 이틀 전에 Rose-Birdie/Rose-Tamenori에서 실착하는 수순을 반복했던 것이 생각나 연습을 하다가 최선수가 C8이라는 것이 머리에 각인이 되었다. 이 경험이 도움이 되어 바로 최선수로 착수하였다.
동권 님께서 D7 이후 실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수를 반복하던 부분을 넘어간 것에 대해서는 기쁘게 생각했다. 여기에 백은 B3로 응수하였고 그 다음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다. 다음 수로 E7을 갔던 것이었다. 수치가 -12로 갑자기 뚝 떨어졌다. 아마 좌상 대각 쪽 뒤집히는 것에 의해 아래쪽으로 벽이 생기며 답답해지는 모양을 간과한 것 같았다. 그 다음 동권 님이 착수하려다가 돌을 판 위의 칸에 떨어트리는 실수를 하셨다. 규정 상 그 자리에 바로 착수를 해야되지만 원래 두시려는 곳에 떨어트려서 진행에 큰 영향은 없었다.
23수로 C6로 진행한 이후 수순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진행이었다. 흑 25 D2로 상대 내부를 파고든 이후 백 26 D5로 다시 반격을 하였고 B6부터 E3 까지 잇는 C라인을 지키기 위해 C2에 착수하였다. 이에 백은 F2 진행을 위해 F8으로 C5를 백으로 바꾸었다. 이 때는 백이 F2에 착수를 해도 E1으로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다는 생각에 29수를 D8을 택하였다. 여기에서 백은 예상 밖의 F7을 택하였고 우변 싸움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H6에 착수하였다. 이에 백은 H3를 택하였고 이 이후 우변에서 H4를 착수할 경우 G3에 흑이 착수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여 E8에 착수하였다. 백은 이에 34수로 B8을 택하면서 우하귀 쪽에 흑이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백에게 G8이라는 여유수를 만들어주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좌변의 A6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백이 A열에서는 A5밖에 착수할 수 없기 때문에 좌변에 흑돌 4개의 균형변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었다. 실전에서도 똑같이 진행이 되었다. 이후 백은 F2로 C라인 차지하려고 하였고 흑은 E1으로 이를 다시 잘랐다. 다음 백의 40수는 B7 X 스퀘어였다. 바로 A8 코너로 들어가기 부담스러웠다. 백은 바로 A7으로 끼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상변 또는 우변에서 수를 진행시키기 위해 다음 수를 H5으로 선택하였다. 이 때 G3를 둘 수 없어 변싸움으로 이어지는 전개를 예상하였다. 그 이후 백 D1, 흑 F1, 백 C1, 흑 B1으로 상변에 흑의 불규칙변이 생기고 이 때는 흑 기준 -6으로 격차가 조금 좁혀진 상황이었다. 백은 46수로 H4를 택하였고 그 다음 수로 A8을 택하면서 -10으로 4석을 잃게 되었다. A8 대신 H2를 택하면 백이 G3를 착수할 때 끌려다니는 진행이 예상되어 기각하였고 이 때 흑 G3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수가 최선이었다. 흑 47수 A8 이후 백 A7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에서 왕중왕전을 통틀어 내가 둔 수 중 최악이라고 할 만한 수가 나왔다. 다음 수로 G8을 택한 것이었다. 이 때의 기억을 회상하면 착수 가능한 G3, H2, G8이 모두 비슷하게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난하게 패리티를 생각하면 G8을 택하지 않았을 것인데 귀신에 씌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G3로 화이트라인을 잘라도 백이 H7 이후 H2로 다시 화이트라인에 백돌만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H2 착수 이후 백이 G3에 들어가는 상황과 연타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요소였다. 다만 그렇게 피해서 G8을 둔 것은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었다. 백은 바로 H7으로 응수하였고 그 순간 큰 착각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흑 G3, 백 H2 이후 계속 끌려다니는 형국으로 진행되어 47-16으로 지게 되었다.
대국이 끝나자마자 생중계를 하시던 협회장님께서 49수 상황을 보여주며 여기에서 왜 G8으로 갔냐고 하셨다. 최선 수순은 G3로 대각을 자른 이후 백 H7, 흑 B2로 진행하다보면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는데 G8은 저울의 추를 한 쪽으로 쏠리게 만드는 수였다. G8 이후 백의 착수 때 큰 실수였다는 것을 느끼기는 하였으나 수치 상으로 20 넘게 차이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점심 식사와 휴식 이후 바로 시작한 대국이여서 그런지 대국에 100% 집중력을 쏟아붓는 듯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다른 참가자 분들도 똑같은 상황이었기에 이는 변명의 여지가 될 수 없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보다 경험과 실력이 우수하신 분을 상대로 이기려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치를 대국 때 생각해야되는 상황이다. 좀 더 정신이 맑아져야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되는 때가 온 것이다.
제 2회 수원 대회 때 경험 상 점심 시간 이후, 대회 중반부 때 흐트러지는 것을 느껴서 그런지 점심을 먹으면서 4, 5라운드 때 1승을 해야 상위권을 갈 수 있는 발판을 다질 수 있으며 이 때 2패를 해버리면 그 뒤의 6, 7라운드에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에 4, 5라운드에서 1승 1패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지금 복기하며 글을 쓰다보니 치명적인 실착 두 개는 계속 씁쓸하게 느껴지지만 대회 당시에는 다음 판을 이겨야 된다는 생각에 전 판 상황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기던 판이 뒤집힌 것이 아니라 지던 상황에서 수치가 크게 떨어져서 그런지 심리적으로 덜 흔들리는 것 같았다. 무조건 5라운드를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다음 대진을 맞이하게 되었다. 상대는 리치 형님이었다.
'오델로 > 오델로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델로 일상] 제 2회 전국 오델로 왕중왕전 후기 - 4 (0) | 2018.02.22 |
---|---|
[오델로 일상] 제 2회 전국 오델로 왕중왕전 후기 - 3 (0) | 2018.02.20 |
[오델로 일상] 제 2회 전국 오델로 왕중왕전 후기 - 1 (0) | 2018.01.14 |
[오델로 일상] 어른이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싶다 (0) | 2017.12.26 |
[오델로 일상] 제 2회 수원 오델로 대회 후기 (0) | 2017.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