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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편 EGP Rome 1편 / 2편


4라운드 상대는 이탈리아의 Alessandro Tucci였고 백번이었다. 4, 5라운드에서 집중이 떨어지는 경험을 많이 하여 경계를 하면서 시작을 했는데 내 인생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본격적으로 대회 나가려고 준비를 시작했던 오델로를 잠깐 했던 먼 미래를 더듬어봐도 이보다 더 나쁜 결과의 대국은 없었던 것 같다.



오프닝은 No-Kung이었고 상대 흑은 바로 -2인 9수 D6로 틀어버렸다. 17수까지 서로 무난하게 최선으로 진행하였고, 18수에서 백이 최선 D8 대신 +0인 차선 E7을 뒀다. 다음 20수에서 백은 A5를 갔는데, 우측에 착수하면 F5가 백으로 바뀌면서 흑이 D3로 쉽게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여 선택한 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악수였다. 백 22수 C2 역시 악수였다. 22수에서 최선인 G4와 비교했을 때 C2는 상변 쪽에 흑의 수를 늘여주는 느낌을 준다. 24수 상황에서는 성급하게 D8으로 뚫고 들어갔으나 최선은 백이 G4를 두고 흑이 F7에 백 A2로 진행된다. 집중이 많이 떨어졌는지 악수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X라인을 의식하고 백 26수 A2를 택한 것 역시 오판이었다.

악수의 최고 절정은 34수였고 내 스스로 대국에 사망 선고를 내려버렸다. 그 때 당시를 회고해보면 X에 둘지 말지를 잠깐 고민을 하다가 지금 X를 두나 D1을 두고 X를 두나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착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때는 A3를 둘 수 있다고 생각하여 끼워넣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상대가 흑 35수 B1으로 응수하자 내가 큰 착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큰 혼란에 빠졌고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악수(38수 B8, 42수 G6)를 계속 남발하면서 일방적으로 끌려다녔다. 판의 절반 이상이 흑돌이 되자 퍼펙트 패배가 보이면서 아연질색이 됐다. 하지만 상대의 흑 54수 G7으로 대국은 55-4라는 일방적인 스코어로 끝나버렸다.


형세가 일찌감치 기울어져서 다른 대국보다 내 대국이 일찍 끝났다. 상대는 나에게 빈 칸이 있는 경우 점수를 어떻게 기록하냐고 물었다. 빈 칸은 이긴 사람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심각한 차이로 지면서 멍한 상태로 시맥스로 복기를 했고, 상대는 다른 판을 보다가 내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그 때 마침 결정적인 패착 34수를 두던 때였고 상대는 그 부분을 지적하면서 저 수로 승부가 쉬워졌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복기할 필요가 없기에 자리를 떴다. 이전까지는 오델로 기사 단톡방에 스코어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크게 패했다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대회장에 와이파이가 없고 데이터도 잘 터지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쓰려면 대회장 밖으로 나가야 했다. 보통 대회장 밖에 나가면 바깥 공기 쐬고 대회장 안에서 느낀 더위가 가시면 바로 들어갔는데 4라운드 끝난 이후에는 그러지 못하였다. 내 결정적인 실착이 계속 머리 속에 남았고 내 실력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회가 더욱 더 어렵고 빡빡하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이 판 때문에 승수가 같은 사람 중에서 순위는 낮게 책정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대회장으로 들어갔다.


4, 5라운드 중 1승을 하고 싶었기에 5라운드 상대가 더 궁금해졌다. 5라운드 대진표가 잘 보이지 않아 모니터 근처로 가니 운영진 중 한 명인 Leonardo Caviola가 그 모습을 보고 "Where's Kim?"이라고 하면서 내 상대가 누군지를 찾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상대는 멀리 있지 않았다. 자신이 5라운드 상대라는 것을 보자 "It's me!" 하면서 밝은 웃음으로 이야기를 해줬다. 그가 대회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하고 있어서 내가 먼저 지하로 내려갔고 다른 대국들이 시작하고 나서 그가 내려왔다.



내가 흑번이었고 상대는 백 8수 C6, Ralle로 진행을 하였다. 그는 바로 -2인 백 10수 C2로 틀었으나 이 오프닝은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에게 호되게 당한 오프닝으로 어느 정도 살펴본 적이 있었다. 균형이 흔들린건 상대 백의 14수 G4가 시작점이었다. 그 이후 흑이 좌하쪽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착수하면 백이 둘 곳이 사라진다고 판단했다. 이후 백은 26수 E1, 30수 B1으로 형세가 흑에게 많이 기울어졌다. 상대의 심각한 표정과 반응이 눈에 띄였고 백 34수 때 쯤에는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 대역전극은 서서히 시작하고 있었다.

우선 1차 과실은 B2를 놓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흑 35, 37, 39수에서 B2가 최선이었는데 모두 다른 수를 택하였다. 우하 쪽에서 상대가 둘 수 있는 곳을 없애고 B2로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좌상 세 칸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B2를 41수로 뒀는데 이 때는 반대로 G2가 최선이었다. 흑이 차지하고 있는 화이트라인에는 흑만 이미 있기에 반대쪽 블랙 라인 대각을 차지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 수를 놓치면서 다음 백 42수 B7으로 백에게 블랙 라인을 내주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 때부터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때 나는 화이트라인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흑 F8, 백 G8 이후 흑 G7으로 둘 생각을 했다. 비록 우하 3칸에 백이 먼저 들어가기에 G7은 백이 되고 A1을 공격당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내줘야 되는 상황으로 봤다. 하지만 최선은 +12인 H3로 그 이후 백 H4, 흑 F8, 백 G8, 흑 G7으로 진행되며 이 때에는 백이 화이트라인을 자를 방법이 없어진다. 또 차선인 +10 G8도 있었으며 내가 선택한 F8은 +8인 차차선이었다. 또 45수의 G7는 수치상 +2로 최선이 아니었다. 최선은 H7으로 이후 백 H6, 흑 A8, 백 H8, 흑 A7으로 진행되며 백에게 H8과 하변을 내주는 대신 G7의 빈칸을 만들어 패리티를 뺏는 진행으로 이어진다.

이 때부터는 이후 전개를 정확하게 상상해야되는데 내가 착수한 이후 상황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49수에서 내 실착이 나왔다. A8 대신 H4를 간 것이다. 그 때 당시는 백이 A7으로 끼어드는 것이 싫어서 선택한 수 같은데 A8 이후 블랙라인을 공략하면 백이 자를 수 있는 곳은 F2나 G2밖에 없다. 흑이 H4를 두면서 블랙라인의 돌을 얻는 기회를 잃게 되었다. 흑 51수 F2도 -6짜리 차선으로 최선은 G2였다. 하지만 백이 바로 52수에서 최선인 G1과 H2 대신 차선인 -4 H3를 두면서 대국은 30-34로 충격적인 역전패로 끝났다.


돌을 계속 세 봐도 30이라는 숫자가 변함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마음 속이 참담해졌다. 분명히 다 잡은 대국이라고 생각했는데 안일한 마음에 승부를 내줬기 때문이다. 심각했던 표정의 상대가 밝은 미소로 어려운 게임이었다고 했을 때 그냥 "Yes. It was tough"라고 대답했지만 대국 이후 나 자신에게 느끼는 화가 삭지 않은 것은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분노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이 있었다. 집중력이 극도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평상 시에는 지금 상대가 두고 싶은 곳과 방어가 가능한지 여부, 내가 어딘가를 둔 이후 상대의 대응, 엔딩에서의 수의 진행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면 4라운드 정도부터는 내 착수 이후의 모양만 생각이 나고 그 이상의 수 읽기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걱정이 앞설 수 밖에 없었다.


6라운드 상대는 Maria Serena Vecchi로 대회 이후 저녁 식사 때 이탈리아어를 못하는 나에게 도움을 많이 주신 분이었다. 이 때, 나는 백번이었다. 흑 7수 D3를 두며 Inoue로 진행했고, 개인적으로 Iago보다 또 다른 최선인 C2로 두는 것을 선호하여 그 쪽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대국을 진행하면서 백 10수 C6나 백 20수 A5 등을 두면서 생각대로 대국이 풀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20수를 두고 상황을 매우 좋지 않게 평가했는데 수치 상으로는 -6 정도였다. 그러나 상대도 빈틈을 보이면서 -8 ~ +8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대국이 진행하다가 35수부터는 +2의 미세한 형세로 대국이 진행되었다. 

+2의 미세한 리드는 44수에서 최선수인 백 H1 대신 -2였던 F8을 두면서 역전당하는 듯 했다. 그러나 상대 흑의 45수 C8으로 팽팽했던 균형은 백 쪽으로 치우쳐졌다. 나는 C6를 백으로 바꾼 이후 H1을 공략하겠다는 생각으로 +14인 E8을 뒀으나 최선은 +22인 D8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여기에서 47수로 B7이라는 악수를 두고 바로 백 48수 B1으로 끼워넣기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했다. 이후 서로 최선수가 아닌 수를 두기는 하였으나 11-53의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어느덧 1일차의 마지막 대국인 7라운드가 찾아왔다. 막바지가 되니 체력이 방전되어서 그런지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만 내가 초반에 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 때는 스스로 Othello quest에서 레이팅 1700 ~ 1800대 정도의 실력이라고 느껴졌다. 다음 라운드 상대는 Fabrizio Lai로 인심이 좋아보이는 중년의 남성 분이셨다. 그는 대국 전에 한국에도 Lai라는 이름이 있냐고 물어봤다. 없다고 하니 중국에는 자기랑 같은 이름이 있다고 해서 물어봤다고 했다. 이 판은 내가 흑번이었다.


상대 백은 대각으로 나왔고 Buffalo로 응수를 하니 1라운드와 같이 상대는 흑 6수 E6로 두면서 Hokuriku buffalo로 대응을 했다. 흑 11수 D6는 -2였으나 내가 주로 가는 최선 C5보다 게임을 풀어가기는 쉽다고 느꼈다. 조금씩 상대가 차선으로 가면서 나한테 미세하게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가 백 22수 B4에서 격차가 벌어졌다. 이 수로 C5와 G3라는 조용한 수가 생겼으며 반대로 백은 이후 착수에서 외각에 돌이 많이 생기면서 불리해지는 상황이었다. 백 24수 F1와 백 26수 B5를 보며 흑돌을 좌하 쪽으로 몰면 유리하겠다는 판단을 했다. 결정적으로 백 36수 C8은 -26에서 -42로 떨어지는 큰 악수로 이 때 최선 진행은 백 E8, 흑 D8, 백 B7, 흑 A7, 백 C8으로 흑이 이후 좌하쪽에 들어가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흑 43수를 기점으로 흑의 뒷심 부족이 나타났다. 43수를 둘 상황에서 최선은 H5로 이후 백은 선택지가 없어서 백 H4, 흑 H8, 백 G6, 흑 H7면 게임은 크게 이길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간 쌓아온 유리함을 깎아먹는 +20인 G3를 택해버렸다. 다음 수에서도 또 사고를 쳤는데 45수를 둘 상황에서는 2행과 G3 ~ G5가 백인 것을 이용하여 G2를 두는 것이 최선이었는데 그냥 H8을 둬 버렸고 +8로 격차는 크게 좁혀졌다. 상대가 다음 수에 백 G6를 두니 H7를 두기 위해 X라인을 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을 파악했다. 상대는 여기에 최선이 아닌 -16짜리 B7을 뒀지만 흑의 악수가 또 나왔다. 최선인 H5, 차선인 +14 G2 대신 H2를 택한 것이었다. H7에 끼워넣는 것을 의식한 것이었는데 흑 H5, 백 H7으로 두면 7행이 모두 백으로 바뀌어 나중에 A7을 두기 수월해진다. 상대 백도 50수에 -18짜리 G2라는 수를 뒀으나 55수에서 7행을 비우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최선 H5를 놓치고 +8인 B1을 뒀으며, 시간이 부족한 탓에 돌 셀 시간이 없어 57수 역시 +4 차선인 A8을 두면서 대국은 34-30으로 겨우 이길 수 있었다. 게임을 마치고 상대가 악수를 청하였는데, 상대의 손에서 강인함을 엿볼 수 있는 힘이 느껴졌다. 게임이 어려웠고 잘 싸웠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이렇게 첫째날을 4승 3패라는 성적으로 마쳤다. 개인적으로는 4라운드에서의 큰 삽질과 5라운드에서의 패배가 뼈아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5라운드를 이겼다면 더 어려운 상대를 만났을것이니 5라운드에서 이겼다고 하더라도 5승 2패로 끝낼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1등과 2등은 역시 일본 선수의 차지였다. 나는 4승을 하였지만 4라운드의 여파가 커서 그런지 1일차가 끝난 시점에서 19위였다. 사람 수가 많다보니 1승의 차이를 줄이는 것과 순위 하나 올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감하게 되었다. 



다른 대회 때보다 체력 소진이 더 심하게 느껴졌다. 대회 끝난 직후에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뒷목이 땡기기까지 했다. 그래서 저녁 같이 먹을거냐는 질문에도 처음에는 그냥 안 먹겠다고 했다. 하지만 전 세계 오델로 선수들과 같이 밥 먹을 기회가 언제 또 오겠나 싶어서 숙소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일행과 합류했다. 아무래도 이탈리아 선수가 대다수여서 대부분 대화가 이탈리아어였고 다른 나라 선수들은 두 세 명씩 대화를 나누거나 자기 앞의 음료와 식사에 집중하였다. 명실상부한 현재 세계 최고의 오델로 선수인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은 어디에서나 인기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대국을 신청했고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계속 스마트폰으로 오델로를 두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대회 중반에 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한국말로 인사를 했던 이탈리아 선수가 있었다. 저녁 식사 때 근처에 앉아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아내 되시는 분이 한국 사람이여서 한국말을 배웠다고 한다. 말할 사람을 못 찾던 와중에 한국이라는 공통점으로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외로움이 덜어졌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본인이 한글을 배울 때 사극 보는 것을 좋아해서 쓸모 없는 표현을 몇 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송구하옵니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같은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면서 그런 표현은 요즘 한국 사람들도 잘 안 쓰는 표현이라고 했다.


해가 늦게 져서 그런지 꽤 늦은 시간에 식당에 들어갔는데도 날이 밝았았고,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가 되니 그 때서야 어두워졌다. 차를 대회장 근처에 주차한 일행과 함께 숙소로 돌아오니 유럽 대회를 참가하고 있는 경험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새로운 오델로 선수를 만나는 건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내 실착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4승 3패라는 성적 역시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2일차에는 경기가 4판이 있고 2승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여러 감정이 섞여 복잡미묘했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요 며칠 쌓여있는 피로에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서 뻗어버렸기 때문이다.


다음 편: EGP Rome 4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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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를 시작하면서 내가 이번에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는 생각했으나 세계 레이팅을 유지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목표가 과욕이었다는 것을 머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1라운드 이후 1승이냐 1패냐는 느낌이 다르다. 강한 상대에게 패배를 하고 낮은 순위에서 승수를 쌓아가는 전략도 유효하지만 대회 중반에 약한 모습을 보인 나에게는 1패보다 1승으로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편하다. 아예 강한 상대면 부담 없이 둘 수 있지만 그 이하면 꼭 잡아야 된다는 부담감이 들 것 같았다. 1라운드 상대는 스웨덴의 Lisbeth Bjork이라는 여류 기사였고 내가 흑이었다. 


상대 백의 대각 오프닝에 Buffalo로 응수했다. 상대의 기력이 나보다 월등하게 높지 않는 한 대각에는 Buffalo로 대응하려고 했다. 백은 오랜만에 보는 Hokuriku Buffalo로 응수했다. F5가 일반적으로 많이 두는 최선 대응이지만 나는 또 다른 최선인 흑 7수 D2로 응수했다. 이후 진행을 자세히 봐 두지 않아 감각적으로 뒀지만, 흑 13수 D6를 제외하고 대부분 무난한 수를 둬서 흑 기준 -4 정도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 16수 D1과 백 18수 C7으로 흑에게 우위가 찾아왔다. 특히 백 18수 C7으로 흑이 B5에 착수할 수 있으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흑이 23수를 둘 상황에서 A5를 두면 백이 B3로 두는게 쉬어지는게 마음에 걸려 A6로 한 칸을 벌려 둬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 24수 A2를 두면서 계산에 착오가 있음을 깨달았다. 백 B3 여유수는 그대로면서 A5까지 여유수로 생긴 것이다. 백 B3의 착수를 악화시키고자 흑 25수를 C2로 선택하였다.


이후 29수 착수 상황에서 흑은 최선인 C8 대신 +6인 C1을 택하였는데 백을 몰아갈 수 있을 때 약간의 탈출구를 남겨둔 느낌의 수이다. 이후 흑 33수 C8으로 유리했던 수치는 +0이 되었다. 이에 상대가 백 34수 A5를 두면서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계속 버티다가 흑 39수에서 최선인 G3를 뒀을 때 백이 G5를 못 두고 하변을 내줘도 괜찮은 상황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4인 흑 39수 G8을 택하였다. 여기에 백도 40수로 +0인 B3로 응수하였으나 B1 한 칸 만 남겨두는 것이 나중에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선인 B2 대신 -4인 차선 G5를 택하였다. 

미묘하게 불리한 상태에서 아슬아슬하던 대국은 백 44수로 흑에게 승기가 기울어졌다. B2를 흑만 둘 수 있게 되면서 이 칸을 남겨 놓고 백을 몰아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44수 상황에서 최선은 H4, 차선은 +0인 G3로 우측에서의 싸움을 끝내지 않고 다른 곳에 눈을 둔 대가는 컸다. 이후 서로 최선을 못 찾는 경우가 있었지만 승패에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고, 수치는 +16 ~ +32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47-17로 게임을 이겼다. 다만 어딘가에서 뒤집는데 문제가 생겨서 그런지 복기 후 결과는 46-18이었다.


대국을 끝나고 1승을 챙겨서 다행이기는 하였으나 초반에 마음이 풀어졌다가 중반에 꾸준히 무난한 수로 견고하게 응수하는 것을 보면서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부터 시작하여 전반적으로 대회에서 만난 유럽 선수들은 기력에 관계 없이 중반이 탄탄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월드레이팅과 실력 사이의 괴리가 느껴지기도 했다. 밖에서 쉬다가 들어오니 그 사이 1라운드 대국이 모두 마쳤고 결과를 수합하고 2라운드 페어링을 하고 있었다. 2라운드 상대는 Damiano Sperandio로 내 백번이었다.


오프닝은 No-Kung이었고, 흑 11수 D2로 일찌감치 최선 진행에서 벗어나 -2 진행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흑 13수 G5로 우상쪽에 흑이 착수할 곳이 확 줄어들었고, 백 14수 D6로 흑이 F3를 가지 못하게 막았다. 이후 조용한 수 위주로 무난히 진행할 수 있었고, 이후 흑 25수 B6로 격차는 더 벌어졌다. 25수를 둘 상황에서 백은 하변 쪽에 둘 만한 곳은 F7 정도 있는데 B6라는 수로 선택지가 늘었다. 그러나 기세등등한 형세에 32수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우선 상변 쪽에 착수하여 변수를 만들기 싫다는 생각을 하여 최선인 C1 대신 D7을 택하였다. 이후, 34수를 둘 상황에서는 반대로 조용한 수 B3를 두는게 낫다고 생각했으나 C8이 최선이었다. C8 이후, 흑 H5, 백 H2로 진행되는 것이 껄끄러운 모양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최선 진행이었다. 이 때문에 36수를 둘 상황에서도 C8을 외면하고 A6로 응수했다. 이후 40수를 둘 상황에서는 좌변의 불균형한 4개 돌로 된 흑의 벽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판단 차선인 백 D1을 택하였다. 그 과정에서 블랙라인의 돌이 모두 흑으로 바뀌고 백이 자르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였다.


불안한 중반 진행은 46수를 둘 상황에서 방점을 찍었다. 최선인 B1 대신 -2인 A3를 택한 것이었다. 좌상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에 선택한 수였는데 백이 B1을 뒀을 때 상대는 쉽게 A1을 두고 끼워넣기를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선 진행은 백 B1, 흑 G8, 백 F8, 흑 E8, 백 D8, 흑 B8, 백 G2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진행을 생각하기에는 내 수읽기의 깊이가 얕았다.

하지만 흑은 49수에서 최선인 G8 대신 -4인 F8을 택하였다. 흑이 G8을 뒀으면 이후 백 F8, 흑 E8, 백 B8 순으로 진행이 되고 우상의 4칸 때문에 백이 패리티를 내주면서 게임이 끝난다. 이후 흑은 51수 D8이라는 차선수를 두고, 백은 55수 H2라는 차선수를 두면서 게임은 29-35로 백 승으로 끝이 났다. 승부가 팽팽해서 25분의 제한시간을 1분 이하로 남기고 다 사용했다.



복기 결과 지고 있는 순간이 있었으나 어쨌든 2승을 했다. 복기를 하고 놀라기는 했어도 아직 갈 길은 멀었고 2승을 했기 때문에 점점 어려운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좀 더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었다. 내심 유명한 선수를 만나거나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3라운드 대진을 확인했다. 상대는 스위스의 강자 Arthur Juigner였고 나는 흑번이었다.


상대 백이 직각으로 두기에 평소 자주 가는 로즈 오프닝을 사용하였다. 상대도 24수까지 최선으로 받다가 고민을 조금씩 하기 시작하고 30수까지는 최선으로 대응하다가 백 32수에서 -2인 차선 E7으로 진행하였다. 여기에 흑 33수 최선 E1으로 대응을 하였으나 그 이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백 34수 D7 다음에 흑 35수로 -8인 F1을 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가장 무난하게 조용한 수인 F7가 최선이었는데 백이 B2를 둘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생각을 안 했다. 막상 상대가 B2로 응수하니 둘 곳이 없어보였다. 흑이 39수를 둘 상황에서는 최선인 B1 대신 -12인 차선 F2를 뒀다. 최선 B1으로 진행하면 상변과 좌변을 내주지만 백이 둘 곳 자체가 많지 않아 나중에는 패리티를 흑에게 넘겨주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다음 실착은 43수 상황에서 -12인 최선 B7과 -14인 차선 G2 대신 -16인 F7을 갔던 것이다. 백은 46수에서 최선인 A2 대신 차선인 +12 B1으로 갔으나 흑은 다시 51수에서 최선 B2 대신 -20인 H2를 두면서 G열을 모두 백으로 만드는데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후 상호 최선으로 진행하여 22-42로 대회 첫 패배를 당하였다.



내가 로즈 오프닝을 깊게 파면서 느낀 점은 한 오프닝을 깊게 팔 때 다른 응수에 대한 대응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위의 진행은 하도 많이 둬서 다른 수에 대한 응수도 어느 정도 경험이 생겼으나 백의 E7 대응은 많이 보지 못한 진행이었다. 모든 진행을 완벽하게 익히기는 어렵기에 낯선 진행에 대해서는 수읽기로 뚫고 지나가야하는데 이 능력이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 같았다. 한일전 때도 저 진행에서 살짝 벗어나자 대응을 못하고 진 판이 있었다.



세 판을 둬서 2승 1패니 아직 좌절할 상태는 아니었고 4라운드부터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3라운드 종료 이후 점심 시간이 있었고 샌드위치 등이 점심으로 나왔다. 하지만 아침도 모닝빵 하나로 때우고 점심도 입맛에 맞지 않아 먹는둥 마는둥 허기만 달래는 수준으로 조금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전 판 복기를 하고 시맥스에서 AI를 상대하면서 4라운드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이전 대회의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중반에 힘을 못썼기에 4, 5라운드에서 1승만 거두면 선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편 : EGP Rome 3편 4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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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독특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머리 뒷편에는 머리카락이 없고 발 뒤에는 날개가 있어서 빠르게 날아간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사람들이 기회의 신을 뒤늦게 붙잡으려고 해도 뒷통수에 머리카락이 없어서 붙잡을 수가 없고 사라져버린다. 이 이야기처럼 기회가 왔을 때 고민하다가 나중에 잡으려고 하면 손에 쥔 모래알처럼 사라지기에 기회가 눈 앞에 나타나면 잽싸게 손아귀에 넣어야 한다. 최근, 단조로운 일상 속에 갑자기 기회가 나타나면서 생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일에 바빠 정신 없던 때였다. 문득 세계 대회 일정이 궁금하여 세계 오델로 연맹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작년 세계 대회 직후 올해 대회 일정에 대한 글이 올라왔는데 바로 사라지는 바람에 일정이 확정됐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에 자세히 보지 않는 홈페이지를 이곳 저곳 찾아보다가 Tournaments calendar에 대회 일정이 나와있었다. EGP 일정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대회 일정도 올라와있어서 신기해하던 차에 5월에 EGP Rome(European Grand Prix Rome)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였다. 갑자기 5월에 로마에서 학회가 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학회 홈페이지를 옆 창에 띄워보았다. EGP Rome은 5월 12, 13일, 학회는 5월 13 ~ 17일이었다. 이건 천운(天運) 그 자체였다.

(링크: http://www.fngo.it/romeegp.2018.asp)


처음에는 유럽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 있었다. EGP 규정에는 국적을 제한하는 내용은 없었고, 비유럽권 국가 사람도 있었고 일본의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와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가 초대되었지만 살짝의 의구심은 남아있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협회 공식 메일 주소로 보냈으나 이틀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숙소나 항공편 예약이 시급했기 때문에 페이스북 EGP Rome 페이지를 찾았다. 관리자에게 직접 메세지를 보낼까 고민하다가 공식 페이지에 올렸더니 이탈리아 협회 담당자인 Leonardo Caviola에게서 하루 만에 참가가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답변을 보고 속으로나마 쾌재를 외쳤다.

EGP는 1년 동안 유럽 내 8개 나라에서 스위스 라운드 방식의 대회를 개최하여 각 대회에 대해서도 상을 수여하고 8개 대회 누적 성적에 대해서도 시상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비유럽권 국가에서도 참가가 가능하며 일본, 중국, 홍콩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도 참가한 사람이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전무하였다. 한 마디로 EGP는 한국에서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또, 아시아 지역 오델로 대회는 비교적 접근성이 편하다기에 만날 기회가 있지만 유럽 선수들은 세계 대회 이외의 대회에서 만나기 어렵기에 이 기회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EGP 출전에 대해 강남 스터디 모임 사람들에게는 미리 살짝 귀뜸을 해 뒀으나 최대한 늦게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대회 참가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으나 준비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학회 발표 준비도 해야했고, 숙소와 항공권을 알아봐야했고, 병역 관련하여 국외여행허가를 받고 여권을 발급받는 등 꼭 해야될 절차를 밟아야 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준비를 모두 마친 다음에야 오델로 기사들이 있는 카톡방에도 EGP를 출전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한국인 최초로 EGP를 출전하는 것이여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이셨다. 특히 렘 님은 이 소식을 듣고 강남 스터디 모임에서 귀중한 조언을 많이 해 주셨다. 시간이 지나 EGP 공식 홈페이지 참가자 명단에 내가 추가되면서 EGP 이야기가 다시 카톡방에 떠올랐다.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께서 홈페이지에서 나를 보고 평소 친분이 있는 하야 님께 연락을 하셨고, 하야 님께서 오델로 기사 카톡방에 이야기를 꺼내신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과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혈혈단신으로 로마에 가서 대적해야 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끈이 하나 생겼다. 내가 한일전 대표로 나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하야 님을 통해서 연락하여 도움을 많이 준 것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쉽게도 하야 님은 참가하실 생각도 하셨던 것 같은데 출장 일장이 겹치셔서 갈 수 없으신 상황이었다.

여담으로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은 내가 EGP Rome 대회를 참가할 수 있게 만든 1등 공신이다. 원래 로마 대회는 보통 1, 2월에 열리는데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5월에 대회를 열도록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결정된 대회 날짜가 학회 전날이라는 것은 믿기 어려운 우연이었고 마음만 같아서는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EGP를 나간다는 것 때문에 출국 전까지 많은 지원을 받았다. 강남 스터디 모임 때 렘 님께서 EGP 전에 따로 만나자고 하셨고 대여섯판 정도 오델로를 두면서 부족한 점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높으신 기력 때문에 내 부족한 부분과 심리를 꿰뚫어 보면서 내가 보강해야 될 점을 분명하게 지적을 해주셨고 내가 수 읽기를 할 때 간과하고 있는 부분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출국하러 공항에 가는 길에 하야 님께서 운서역에 들리라고 하셨고, 리치 형님, 볼짱 님, 렘 님이 직접 오셔서 저녁을 먹고 오델로를 두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일이 바쁘신데 멀리 인천 공항 근처까지 나와주시고 격려해주셔서 큰 힘이 되었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운이 좋아 유럽 대회에 나가게 된건데 관심과 격려를 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초상권을 우려하여 모자이크 처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대회 준비는 순탄치 않았다. 4월 말부터 급한 일이 생기면서 4월 28일 전국 선수권 대회 준비를 거의 할 수 없었으며 4월 말이면 끝날 것이라 생각한 일이 꼬이면서 출국하러 공항에 가는 5월 3일까지 일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준비를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감각을 끌어올릴만한 여유는 없었다. 퇴근 10분 전까지 일을 마치고 집에서 짐을 들고 운서역에 도착하니 8시 15분 정도였다. 모임 장소에 도착했을 때도 나에게 과분한 자리라고 생각했다. 식사 이후 카페에서 오델로를 하였으나 많이 지쳐서 그런지 잘 되지는 않았다. 비행기는 다음날 오전 1시 15분 출발이였고 보통 공항에 4시간 정도 전에 도착하는 편이여서 10시 반 정도에 불안해하면서 공항으로 갔으나 기우였다. 수속을 마치니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고 비행기에 타서 이륙도 하기 전에 잠들었다.


아부다비 공항에서 3시간 대기 경유가 있었고 현지 시각 1시 30분 정도에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에 계속 긴장을 하고 있었고, 숙소까지 가는데도 2시간 넘게 걸려 도착했을 때에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래도 저녁도 먹고 대회장 위치를 확인할 겸 주변을 돌아다녀봤다. 도미토리 형태의 숙소는 자거나 쉬기 불편하고 내가 코를 골아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에 비싸더라도 혼자 잘 수 있는 곳을 알아봤다. 그렇게 비교적 저렴하면서 학회장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을 찾았는데 우연히도 대회장에서 5분 거리였다. 이 역시 운이 따라줬던 것 같았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처럼 그냥 몸 하나 뉘일 공간만 있고 전반적인 시설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비행기에서 푹 자서 그런지 시차의 영향을 적게 받고 평소 자던 시간이랑 비슷하게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대회 시작은 10시 반부터였고 여유롭게 9시 45분 쯤 도착하게 대회장으로 출발하였다. 10시 시작인 공지가 있었고 10시 반이라는 공지도 있었는데 나카지마 테츠야 단이 고맙게도 미리 이탈리아 협회 관계자에게 물어봐서 후자인 것을 확인해줬다. 대회장으로 들어가는 골목 앞에서 대회장을 못 찾고 서성이던 나카지마 테츠야 단과 그의 사모님을 만났다. 반가움을 한껏 드러내며 인사를 한 다음 대회장으로 들어갔다. 작은 간판에 크고 짙은 갈색의 문 때문에 영업을 안 하는 곳으로 보이기까지 해서 대회장을 찾기 어려웠던 것 같았다. 하지만 대회장 안쪽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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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장소에 대해 검색하여 보드게임 카페 같은 분위기라는 것을 알기는 하였으나 사진으로 봤을 때와 느낌은 사뭇 달랐다. 가게 양쪽 벽은 진열장에 보드게임이 가득 있었고, 한 쪽 벽에는 창문과 오락기, 다른 벽 쪽에는 바와 함께 맥주와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또한 지하에도 테이블과 방이 여러 개 있었다. 나카지마 테츠야 단을 제외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여서 쭈뼛쭈뼛하고 있었는데 유럽권 선수들은 친절하게 나와 눈이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해 줬다. 특히 대회 관련해서 연락을 했던 Leonardo Caviola는 "Kim!"이라고 하면서 매우 환하게 반가워해줬다. 여러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다보니 살짝 긴장이 풀리는 듯 했다.


또한 말로만 듣던 선수들을 직접 보니까 감회가 새로웠다. Leader's tiger 오프닝의 Imre Leader와 EGP의 강자 Takuji Kashiwabara가 연습 대국을 하고 있었다. 오델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을 직접 보고 같은 대회를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하지만 세계 대회 우승 경험이 있는 Michele Borassi는 명단에는 이름이 있었으나 불참을 하였다. 대부분 선수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담소를 나누고 있었으며 이탈리아 선수 중 일부는 대회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대회장 내부가 더워서 나 혼자 멍 때리면서 가게 안밖을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푸근한 인상의 Di Mattie Alessandro가 나를 부르면서 연습 대국을 신청하였다. 이전에 통성명을 하지 않았는데 먼저 찾아와서 연습을 하자고 하는 것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오델로라는 공통 주제만으로 서로 반가워할 수 있고 친해진다는 것이 외국 오델로 선수를 만날 때의 즐거움인 것 같다. 대회 전 무리하지 말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국을 임하였는데 상대의 기력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어느 순간 숨통이 탁 막혀버렸으나 Di Mattie Alessandro가 대회 준비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해서 상대가 바뀌었고, 상대의 실수를 붙잡고 그 판을 이길 수 있었다. 대국을 마치고 등록을 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Paolo Scognamiglio가 연습 대국을 하자고 했고 어찌저찌 그 판도 이기게 되었다. 그 사이에 등록이 마감되었고 Leonardo Caviola가 친절하게 대국 중인 나를 찾아와 기보 기록지를 주고 40 유로의 대회 참가비를 받아갔다. 특히 기보 기록지가 책자 형태로 되어있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대회장 지도와 기보 기록지, 메모지가 같이 포함되어 있어서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연습 대국이 마치자 대회 개회사와 1라운드 페어링이 있었다. 페어링과 대회 결과는 대회장의 큰 모니터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앞에는 트로피와 메달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 대회가 EGP Rome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투어 대회를 겸하기 때문에 수상하는 상의 종류가 다양했다. 내 능력이 저 트로피 중 하나를 받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유럽권 오델로 선수들과 11판을 두는 대장정을 시작하는 마음은 설렘과 기대로 가득하였다.


다음 편 : EGP Rome 2편 3편 4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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