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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조절을 대차게 실패해서 양이 엄청 불어났습니다. 평소보다 길지만 천천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전 편 : EGP Rome 1편 / 2편 / 3편 / 4편


마지막 대국 이후에 점심 식사가 있었으나 힘이 쭉 빠져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식사 중간, 사람들이 페어링을 보여주는 컴퓨터와 모니터로 와서 자기 순위를 확인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상위권 순위가 궁금하여 위쪽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내 이름이 나올 때까지 한참 밑으로 내려가야 했다. 43명 중 28등이었다. 5승자 중에서는 중간 정도 순위였는데 아마 4라운드의 대패가 영향을 미쳐서 승수가 같은 사람들 중에서 순위가 밀린 것 같다. 대회 시작 전부터 잘 할거라는 기대는 없었지만, 만족스러운 성적도 아니었기에 없던 입맛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억지로 먹으면 체할거 같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대충 점심을 해결하였다.


점심 식사 이후 시상식이 있었다. 자세한 수상 내역은 모르지만 이번 대회가 EGP Rome과 더불어 이탈리아 내부의 그랑프리 대회를 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시상식 초반에는 이탈리아 선수들이 상을 많이 받았다. 홈페이지 설명에는 전체 1, 2, 3위, 여성, 어린이, 이탈리아 카테고리 A, B에서 1위를 한 사람이 상을 받는다고 나와있었다. (카테고리는 레이팅 등 실력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 같은데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시상식 때 설명을 이탈리아어로 하는 바람에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시상이 끝난 이후 EGP에 대한 수상이 시작하였다. 우선 각 국가 별로 최상위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 메달 수여가 있었다. 처음에는 한 두 명만 온 나라에도 메달을 줄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혼자 참석한 Imre Leader가 메달을 받는 것을 보고 나도 메달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조한 성적으로 메달을 받는게 창피했다. 하지만 메달에서 오델로 하나 때문에 국경을 넘어 온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배려한다는 것이 느껴졌고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내 성적에 만족을 못하는 마음도 컸기에 복잡미묘한 감정이 섞여 이상한 표정으로 메달을 받았다.

  


이후 수상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이 상을 받았다. 아직 결승전이 진행되지 않았기에 최종 1등은 아니었으나 일본인 중 예선 1위로 국가별 메달을 받은 것이다. 이후 일본 선수들이 준비한 선물을 유럽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은 유니클로에서 나온 오델로 판 디자인의 티셔츠 두 장을 줬는데 개인적으로는 입고 다니기 난해한 옷이라고 생각했다.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은 자신의 캐릭터와 '나이스 배틀'이라고 적혀있는 열쇠 고리를 10, 20, 30, 40등에게 줬는데 개인적으로 욕심이 나는 물건이었다.


수상식 이후 예선전에 사용한 판을 정리하고 결승전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한편에서는 인증서 같은 종이에 등수를 적어서 나눠주고 있었다. 28이라는 숫자를 보니 내 실력의 부족함이 다시 내 마음 한 구석을 찔렀다. 이 종이를 와신상담처럼 계속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내가 졌던 상대에게 복수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결승전은 시작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슬슬 한 두 명씩 빠져나갔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서로 대국을 하기도 했고 개인적인 일을 하기도 했다. 나는 대회에서 나랑 대국을 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먼저 간 사람들이 있어서 다 찍지는 못하였으나 찍은 사진을 보니 대국했던 순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결승전과 3, 4위전을 안 하는게 아닐까 의심이 들 때쯤 결선이 진행된다는 안내가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보니 이미 대국자들은 자리에 앉아있었고 대국실은 관전자로 가득 찼다. 결승 1번기는 프랑스의 Thierry Lévy-Abégnoli가 중계를 하였고, 3, 4위전은 스웨덴의 Benkt Steentoft가 기보 입력을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들어가 대국을 봤다. 하지만 판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불편하여 밖으로 나왔다. 지하의 큰 모니터에 Live Othello 사이트 화면을 띄우기는 하였으나 중간에 문제가 생겨 착수를 해도 자동으로 진행되지 않아 위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지하에서는 와이파이와 데이터 모두 사용할 수 없어서 Live Othello 사이트에서 중계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간간히 중계를 보면서 쉴 생각을 했고 1차전은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의 승리로 끝났다. 이어서 3, 4위 전에서 나랑 같이 첫째 날 연습 대국을 뒀던 Paolo Scognamiglio가 28-36으로 패배하여 4위를 하고, 3위는 Donato Barnaba로 결정되었다.



결승 2차전 때에는 비교적 자리가 넉넉해서 관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하의 공기가 탁하고 더워서 그런지 답답해서 대국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대국장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중반에 Live Othello 채팅에서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유리한 것 같다는 말이 나오길래 궁금해서 대국장 안으로 들어가봤다. 들어가기 직전에 중계 상에서는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8의 우위를 갖고 있었다. 이후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이 차선수를 한 번 두면서 27-37 백을 쥐고 있던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의 승리로 끝이 났다.

복기 결과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이 유리한 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견고하게 버틴 대국이었다. 승부가 갈라진 순간은 35수 흑 C1으로 -2인 E8 대신 -6인 자리를 택하면서 승부를 뒤집을 기회를 거의 상실했다. 만약 35수를 E8을 뒀다면 이후 백의 대응에 맞춰서 좌변, 상변, 하변 중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C1을 두면서 상변 쪽에서 흑이 운신할 폭이 좁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백에게 상변으로 갈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상태에서 하변으로 가야하기에 불리함이 존재한다고 본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이 미세한 차이를 인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실전에서는 흑에게 기회가 한 번 더 찾아왔다. 백이 42수 F1이라는 수로 +0이 되었다. 이 때 백의 최선수는 B2, D1, G2가 있는데 모두 바로 코너와 변을 내주게 된다. 나중에는 변 하나를 차지하거나 안쪽에서 이득을 보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는데 머리 속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바로 최선인 C1 대신 A3를 가면서 승부의 추가 백으로 기울어졌다. C1을 둘 경우 이후 백은 B7을 둬야 하고, 좌하의 두 칸을 들어가지 않고 백이 먼저 B8을 둬서 패리티를 뺏는 진행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흑이 A3로 가면서 네 변을 서로 나눠가지고 백이 패리티를 갖고 있는 상태로 대국이 마무리되었다.

내가 43수 흑이 둘 차례에서도 최선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종반, 변과 코너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다른 라인의 변화를 고려하지만, 내부의 변화를 세세하게 신경쓰기 어려워서 수읽기에 확신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중후반에서 어느 정도까지 수읽기를 하고 착수를 들어가야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또한 어떻게 해야 중후반의 어려움을 극복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결승 2국이 끝나고 바람을 쐬러 나갔는데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는 매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밖에서 담배를 폈다. 나는 그에게 감동적인 대국이었다고 하면서 3국도 잘 두기를 빈다고 하였다. 대국장에 관전자가 많아 서서 보는 것이 불편했기에 대국이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대국실으로 가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대국실로 들어가려던 찰라, 프랑스의 Marc Tastet이 자기 소개를 하면서 다가왔다. 내 기보를 찍어갈 수 있냐는 말에 잠깐의 고민을 했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기보가 기록으로 남는다고 하니 괴로워졌다. 나중에 그 기록을 마주하면 중학교 때 싸이월드에 남긴 글을 보는 것처럼 부끄러울 것 같다. 하지만 잘 두던 못 두던 어쨌든 대회의 기록이기 때문에 제공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먼 미래에 누군가가 나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기보를 본다면 내 실력을 과소평가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보를 전달하고 대국실에 들어가니 Live Othello 중계를 하는 Thierry Lévy-Abégnoli 외에 아무도 없었다. 대국실 옆 조그마한 방에서 혼자 쉬고 있던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이 먼저 들어왔고,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도 이어서 들어왔다. 이전 대국과는 달리 관전자가 나뿐이었다. 결승전을 하면서 다른 일정이 있는 사람들이 가면서 1/3 정도만 남아있는 상황이었고 그 중 대부분은 대회장 정리를 하고 있었다. 두 일본 기사는 이전 판 복기를 잠깐 하다가 대국을 시작하였다. 세계 최고의 오델로 플레이어인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의 대국을 바로 옆에서 관전하는 것 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내가 직접 대국을 하는 것처럼 흑, 백 입장에서 모두 생각을 하게 되었고 대국자가 둔 수와 내 수를 비교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흑을 잡았다.


흑은 Horse를 택하고 26수까지는 형세가 팽팽하였다. 이 때까지 나도 3~4수 정도 제외하고 똑같이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세 네 수의 차이가 승패와 실력을 가르는 요소이다. 오델로는 최선을 잘 찾는 것보다 실착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관전자는 부담이 없기에 수읽기를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반면, 대국자는 이후 진행 중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야 되기에 부담이 더 커지고 결정이 어렵다. 이 때까지만 해도 대국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팽팽하던 형세는 27수 흑 E8으로 -4, 31수 흑 B6로 -8, 37수 흑 A4로 -10이 되면서 흑에게 까다로운 상황이 되었다. 27수를 둘 상황에서 나는 관전하며 C2, F2 등 상변 위주로 생각을 했다. 그러나 흑이 E8를 두는 것을 보고 굳이 하변 쪽을 흑으로 꽉 찬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 외에 특별한 의구심이나 위화감이 든 상황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대국이 흑에게 불리해보였다.


백 38수 상황에서는 H6를 염두에 두고 상대 수를 줄이면서 몰아갈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은 B7을 택하였다. 나는 이 때 대각이 잘릴 방법이 있기에 B7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수 역시 최선이었다. 내 실력으로는 도대체 어떤 수 읽기를 하고 B7를 택하였는지 알 도리가 없다. 아직까지 나는 코너 주변의 모양이 종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수 읽기가 부족한 것 같다.

곧 이어 대국 전체에서 가장 충격적인 수가 나왔다. 바로 41수 흑 G7이었다. 41수를 둘 상황에서 G1 밖에 둘 곳이 없다고 봤고, G7을 두고 대각을 차지해도 곧바로 백이 H5로 자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백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착수를 했다. 나는 이 순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불리한지 궁금해서 조용히 대국실을 나와 Live Othello 채팅 반응을 확인해봤다. 역시 흑이 갑자기 불리해졌다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이 수로 -10이 -30으로 바뀌며 흑에게 남은 기회가 사라졌다. 이후 흑은 당황하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자포자기한 것처럼 허탈하게 웃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결승전 마지막 대국이 11-53으로 끝났다. Live Othello 채팅에서 관전하는 미국의 Ben Seeley는 "I imagine this game was Naka's worst game, really sucks to have it in the decisive game."라고 표현했다.


   

결승전이 끝날 때 쯤 Francesco Marconi와 Alessandro Di Mattei가 들어왔고, 결승 마지막 경기의 60번째 수가 놓여지자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을 들어올려 목마를 태웠다. 이틀 간의 EGP Rome 여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바로 1, 2, 3위에 대한 트로피 수여가 있었다.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은 트로피로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을 노리는 듯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트로피 수여식 할 때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먼저 간 상황이었다. 마지막에 네덜란드의 Jan C. de Graaf가 6월에 있는 EGP Rotterdam을 홍보했다. 그는 EGP 홍보 전단지를 주면서 못 올걸 알지만 그래도 오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북적북적했던 대회장이 한산해지는 것을 보니 세계인들과 오델로를 하며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다시 올 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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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풀이에는 다수의 이탈리아 선수와 프랑스 선수 세 명 (Takuji Kasiwabara, Marc Tastet, Thierry Lévy-Abégnoli), 일본 선수 두 명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 스웨덴의 Benkt Steentoft 그리고 나까지 참석했다. 뒷풀이의 백미는 Alessandro Di Mattei가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이 서로 흑백을 바꾸며 복기를 하는 것이었다. 타카나시가 상대가 뒀던 수가 아닌 최선수를 둘 때 Alessandro는 자기가 뒀던 수를 둬 달라고 했다. 반면 타카나시가 불리한 수를 뒀던 순간에는 Alessandro가 최선으로 두면서 이 길로 가보고 싶다고 하면서 앙탈(?)을 부렸다. 나는 주변에 앉아있었던 Benkt와 이탈리아 선수들과 담소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마쳤다.

식당 앞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데 오델로 생각만 하던 이틀이 끝났다는 사실에 허탈함을 느꼈다. 오델로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없기에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국경에 관계 없이 서로 동질감을 느낀 것 같다. 이틀 동안 오델로를 두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결과 역시 만족스럽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원 없이 오델로 둔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외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대국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어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되었을 건데 언어의 문제와 소극적인 성격 탓에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델로를 취미로 계속 깊게 파고들 사람으로서 국제 대회는 꿈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초 한일전을 참가하기는 했지만 여러 국적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국제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성과는 실망스러우나,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목표로 하는 입장에서 미리 매를 호되게 맞은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겪어보는 2일 간 11라운드 경기는 내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많이 되었다. 특히 이튿날 체력이 완벽하게 회복이 되지 않으면서 만족스러운 경기를 못했다. 시차 영향 역시 무시하지 못 할 요소인 것 같다. 만약에 유럽이나 아메리카 쪽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싶으면 체력 관리와 시차 적응 역시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평상시에도 컨디션에 영향을 크게 받는 느낌이 있어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일단 내린 결론은 아직 중반 수읽기의 요령과 실력이 부족하고 이를 그냥 무작정 가능한 경우를 최대한 생각해보려는 것이 이유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찾는 수도 놓치거나 형세 판단을 엉뚱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부분을 보완할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유럽 선수들과 상대하면서 세계 레이팅에 비해 실력이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가나 대륙 별로 세계 레이팅의 편차가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팅 편차가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전반적으로 내가 만난 모든 유럽 선수들이 중반 이후 수 읽기가 탄탄한 느낌을 받았다. 초반, 중반, 종반 모두 상대보다 강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다보니 운이 좋아 한국인 최초로 Othello European Gran Prix를 참가하게 됐는데 그에 걸맞는 성적을 내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EGP Rome이 세계 레이팅에 반영되면서 한국 선수들의 세계 레이팅이 일괄적으로 30정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 때문에 한국 오델로의 수준이 저평가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한국 선수들의 레이팅이 동반 상승한 경우도 있다고 하니, 나중에 발전된 실력으로 이번 실책을 만회하고 싶다. 


오델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은 좁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델로를 단순히 즐기는 것 이상으로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한국을 벗어나 보는 것도 추천을 하고 싶다. 한국, 일본, 유럽 간에 오델로 두는 스타일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선수들이 최선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고 깊게 연구한다는 것은 한일전에서 느낀 적이 있다. 유럽 선수들은 오프닝에서 최선을 따라가기보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유럽 선수 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체감하지는 못하였다. 만났던 상대 중 초중반에 거의 최선수로 대응하면서 나를 어렵게 만든 상대도 있었다. 내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일본 선수들과 유럽 고수들 모두 머나먼 구름 위의 신선처럼 느껴졌다. 아직 대회를 참가한지 1년도 안 됐으니 앞으로 꾸준히 고수들과의 간극을 좁힐 방법을 찾고 실천에 옮기며 부딪혀야 할 것이다.

(세계 연맹 홈페이지 대회 일정 캘린더)


아직 한국 오델로가 발전할 길이 남아있기에 외국 선수들과 교류하고 대회에서 같이 경쟁하는 것은 개인과 한국 오델로계에 모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선수들 레이팅을 30씩 깎아 먹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다만 세계 대회가 아닌 오델로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무리해서 아시아권을 벗어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해외를 방문할 일이 있을 때 추가적인 일정으로 오델로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부담이 덜 되고 재미있을 것이다. 세계 연맹 홈페이지나 방문할 국가의 오델로 협회 사이트에 들어가서 대회 일정을 확인해보면 된다. 만약 유럽으로 장기간 배낭여행을 간다면 European Grand Prix의 일정에 맞춰  여행 계획을 짜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이미 대학을 졸업하여 길게 여행을 못 가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앞으로 해외에 나갈 일이 있으면 그 나라 오델로 대회 일정과 겹치기를 간절히 바랄 것 같다.

오히려 세계 대회 이외의 다른 해외 대회를 나가고 싶다면 아시아권 대회를 추천하고 싶다. 특히 일본 대회를 참가하는 것은 일정과 비용 측면에서 무리가 덜 될 것이다. 올해 안으로 일본의 대회도 한 번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델로 최강국에서 스파링을 계속 하다보면 고수를 상대하는 힘이 생길 것이다. 일본 외에도 아시아권 나라 중에서 중국, 태국, 홍콩, 싱가폴 등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추가로 굳이 세계 대회가 아닌 외국 대회에서 실력을 키우거나 성과를 내야된다는 의무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오델로라는 공통 분모로 외국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고 친해지는 것도 해외 대회의 즐거움이다. 실제로 EGP Rome에서 만난 외국 사람들 때문에 해외 오델로 페이스북 그룹이나 페이지를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문제도 많이 풀고 SaioApp이라는 새로운 오델로 분석 어플을 알게 되었다.


말을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EGP Rome을 속담에 비유하면 서울까지는 아니고 광역시에 갔다고 할 수 있겠다. 갓 시골에서 도시로 발을 들인 26살 청년은 큰 물에서 호되게 데이고, 시원하게 깨졌다. 하지만 청년에게는 시간이 무기이다. 지금까지 오델로를 둔 시간보다 앞으로 오델로를 둘 시간이 더 길다. 그러기에 시골 총각은 지금부터 도시를 동경하면서 달려갈 것이다. 앞으로 달려가는 길에 빛이 있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동시에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여정을 함께하고 싶다.


(사진 출처 : Facebook page Othello Italy - Photo archive)


뒷이야기 1.

대회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기억에 깊게 남은 사람은 Leonardo Caviola와 Alessandro Di Mattei가 있다. 우선 Leonardo는 EGP 참가를 위해 연락했을 때 답을 해 준 사람으로 대회 전부터 대회 끝날 때까지 도움을 많이 줬고, 어색함을 느끼는 나에게 살갑게 다가와줘서 고마웠다. Alessandro 역시 대회장에 들어가 가만히 있던 나에게 먼저 다가와 연습 대국을 하자고 했으며 호탕하고 밝은 성격 때문에 같이 있는 사람도 힘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또 프랑스의 Thierry Lévy-Abégnoli는 첫인상에서 진중하고 조용할 것 같았는데 매우 유머러스 한 분이었다. 에피소드 중 하나로 단체 사진을 찍을 때 표정이 굳어있는걸 보더니 말 울음소리를 내서 모두를 웃겼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여류 기사들은 식당 등에서 이탈리아어를 몰라 고생할 때 영어로 설명해주면서 많이 도와줬다.


뒷이야기 2.

나카지마 테츠야 八단이 나에게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을 소개하면서 제 1회 한일전 때문에 한국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카지마 八단은 2회 한일전 때도 와서 두 번 왔어야 했는데 안 왔다고 하면서 타카나시 九단을 짓궂게 째려봤다. 그 눈빛에 난처한 눈치를 보이는 모습에서 인간미가 느껴졌다. (다만, 타카나시 九단은 2016년 2월에 제 25회 전국 오델로 선수권 대회 때 초청되어 온 적이 있기에 한국에 두 번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뒷이야기 3.

영국의 Imre Leader는 대회만 참가하러 온건지, 아니면 다른 일이 있어서 온 건지 물어봤다. 나는 학회 때문에 왔다고 대답을 했다. 이 대답에 Imre Leader는 대학 교수의 직업 때문인지 그 이후 어느 분야를 연구하냐, 대학원생이냐, 연구원이냐, 석사 과정이냐 박사 과정이냐 등 질문 폭탄을 던졌다. 아쉽게도 연구원으로 대체 복무를 한다고 대답하기에는 추가적으로 설명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뒷이야기 4.

테이블에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옆에 영국의 Imre Leader, 프랑스의 Takuji Kasiwabara, Marc Tastet, 호주의 George Ortiz가 있었다. George Ortiz가 인사를 하면서 말을 건냈고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보더니 2000년 대 초반에 한국에서 세계 대회 준우승한 사람이 있었는데 알고 있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2005년에 이광욱 님 (현재 九단, 준우승 이후 八단 승단)께서 준우승을 했다고 설명하며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볼짱 님께서 외국 오델로 선수들이 한국 사람을 보면 이광욱 九단을 아냐고 물어본다고 했는데 그 일이 그대로 일어났다. 오델로 기사 카톡방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광욱 九단의 제자라고 소개하라는 말도 있었는데 내 실력이 부족하여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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