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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를 시작하면서 내가 이번에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는 생각했으나 세계 레이팅을 유지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목표가 과욕이었다는 것을 머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1라운드 이후 1승이냐 1패냐는 느낌이 다르다. 강한 상대에게 패배를 하고 낮은 순위에서 승수를 쌓아가는 전략도 유효하지만 대회 중반에 약한 모습을 보인 나에게는 1패보다 1승으로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편하다. 아예 강한 상대면 부담 없이 둘 수 있지만 그 이하면 꼭 잡아야 된다는 부담감이 들 것 같았다. 1라운드 상대는 스웨덴의 Lisbeth Bjork이라는 여류 기사였고 내가 흑이었다.
상대 백의 대각 오프닝에 Buffalo로 응수했다. 상대의 기력이 나보다 월등하게 높지 않는 한 대각에는 Buffalo로 대응하려고 했다. 백은 오랜만에 보는 Hokuriku Buffalo로 응수했다. F5가 일반적으로 많이 두는 최선 대응이지만 나는 또 다른 최선인 흑 7수 D2로 응수했다. 이후 진행을 자세히 봐 두지 않아 감각적으로 뒀지만, 흑 13수 D6를 제외하고 대부분 무난한 수를 둬서 흑 기준 -4 정도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 16수 D1과 백 18수 C7으로 흑에게 우위가 찾아왔다. 특히 백 18수 C7으로 흑이 B5에 착수할 수 있으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흑이 23수를 둘 상황에서 A5를 두면 백이 B3로 두는게 쉬어지는게 마음에 걸려 A6로 한 칸을 벌려 둬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 24수 A2를 두면서 계산에 착오가 있음을 깨달았다. 백 B3 여유수는 그대로면서 A5까지 여유수로 생긴 것이다. 백 B3의 착수를 악화시키고자 흑 25수를 C2로 선택하였다.
이후 29수 착수 상황에서 흑은 최선인 C8 대신 +6인 C1을 택하였는데 백을 몰아갈 수 있을 때 약간의 탈출구를 남겨둔 느낌의 수이다. 이후 흑 33수 C8으로 유리했던 수치는 +0이 되었다. 이에 상대가 백 34수 A5를 두면서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계속 버티다가 흑 39수에서 최선인 G3를 뒀을 때 백이 G5를 못 두고 하변을 내줘도 괜찮은 상황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4인 흑 39수 G8을 택하였다. 여기에 백도 40수로 +0인 B3로 응수하였으나 B1 한 칸 만 남겨두는 것이 나중에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선인 B2 대신 -4인 차선 G5를 택하였다.
미묘하게 불리한 상태에서 아슬아슬하던 대국은 백 44수로 흑에게 승기가 기울어졌다. B2를 흑만 둘 수 있게 되면서 이 칸을 남겨 놓고 백을 몰아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44수 상황에서 최선은 H4, 차선은 +0인 G3로 우측에서의 싸움을 끝내지 않고 다른 곳에 눈을 둔 대가는 컸다. 이후 서로 최선을 못 찾는 경우가 있었지만 승패에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고, 수치는 +16 ~ +32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47-17로 게임을 이겼다. 다만 어딘가에서 뒤집는데 문제가 생겨서 그런지 복기 후 결과는 46-18이었다.
대국을 끝나고 1승을 챙겨서 다행이기는 하였으나 초반에 마음이 풀어졌다가 중반에 꾸준히 무난한 수로 견고하게 응수하는 것을 보면서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부터 시작하여 전반적으로 대회에서 만난 유럽 선수들은 기력에 관계 없이 중반이 탄탄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월드레이팅과 실력 사이의 괴리가 느껴지기도 했다. 밖에서 쉬다가 들어오니 그 사이 1라운드 대국이 모두 마쳤고 결과를 수합하고 2라운드 페어링을 하고 있었다. 2라운드 상대는 Damiano Sperandio로 내 백번이었다.
오프닝은 No-Kung이었고, 흑 11수 D2로 일찌감치 최선 진행에서 벗어나 -2 진행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흑 13수 G5로 우상쪽에 흑이 착수할 곳이 확 줄어들었고, 백 14수 D6로 흑이 F3를 가지 못하게 막았다. 이후 조용한 수 위주로 무난히 진행할 수 있었고, 이후 흑 25수 B6로 격차는 더 벌어졌다. 25수를 둘 상황에서 백은 하변 쪽에 둘 만한 곳은 F7 정도 있는데 B6라는 수로 선택지가 늘었다. 그러나 기세등등한 형세에 32수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우선 상변 쪽에 착수하여 변수를 만들기 싫다는 생각을 하여 최선인 C1 대신 D7을 택하였다. 이후, 34수를 둘 상황에서는 반대로 조용한 수 B3를 두는게 낫다고 생각했으나 C8이 최선이었다. C8 이후, 흑 H5, 백 H2로 진행되는 것이 껄끄러운 모양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최선 진행이었다. 이 때문에 36수를 둘 상황에서도 C8을 외면하고 A6로 응수했다. 이후 40수를 둘 상황에서는 좌변의 불균형한 4개 돌로 된 흑의 벽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판단 차선인 백 D1을 택하였다. 그 과정에서 블랙라인의 돌이 모두 흑으로 바뀌고 백이 자르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였다.
불안한 중반 진행은 46수를 둘 상황에서 방점을 찍었다. 최선인 B1 대신 -2인 A3를 택한 것이었다. 좌상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에 선택한 수였는데 백이 B1을 뒀을 때 상대는 쉽게 A1을 두고 끼워넣기를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선 진행은 백 B1, 흑 G8, 백 F8, 흑 E8, 백 D8, 흑 B8, 백 G2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진행을 생각하기에는 내 수읽기의 깊이가 얕았다.
하지만 흑은 49수에서 최선인 G8 대신 -4인 F8을 택하였다. 흑이 G8을 뒀으면 이후 백 F8, 흑 E8, 백 B8 순으로 진행이 되고 우상의 4칸 때문에 백이 패리티를 내주면서 게임이 끝난다. 이후 흑은 51수 D8이라는 차선수를 두고, 백은 55수 H2라는 차선수를 두면서 게임은 29-35로 백 승으로 끝이 났다. 승부가 팽팽해서 25분의 제한시간을 1분 이하로 남기고 다 사용했다.
복기 결과 지고 있는 순간이 있었으나 어쨌든 2승을 했다. 복기를 하고 놀라기는 했어도 아직 갈 길은 멀었고 2승을 했기 때문에 점점 어려운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좀 더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었다. 내심 유명한 선수를 만나거나 타카나시 유스케 九단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3라운드 대진을 확인했다. 상대는 스위스의 강자 Arthur Juigner였고 나는 흑번이었다.
상대 백이 직각으로 두기에 평소 자주 가는 로즈 오프닝을 사용하였다. 상대도 24수까지 최선으로 받다가 고민을 조금씩 하기 시작하고 30수까지는 최선으로 대응하다가 백 32수에서 -2인 차선 E7으로 진행하였다. 여기에 흑 33수 최선 E1으로 대응을 하였으나 그 이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백 34수 D7 다음에 흑 35수로 -8인 F1을 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가장 무난하게 조용한 수인 F7가 최선이었는데 백이 B2를 둘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생각을 안 했다. 막상 상대가 B2로 응수하니 둘 곳이 없어보였다. 흑이 39수를 둘 상황에서는 최선인 B1 대신 -12인 차선 F2를 뒀다. 최선 B1으로 진행하면 상변과 좌변을 내주지만 백이 둘 곳 자체가 많지 않아 나중에는 패리티를 흑에게 넘겨주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다음 실착은 43수 상황에서 -12인 최선 B7과 -14인 차선 G2 대신 -16인 F7을 갔던 것이다. 백은 46수에서 최선인 A2 대신 차선인 +12 B1으로 갔으나 흑은 다시 51수에서 최선 B2 대신 -20인 H2를 두면서 G열을 모두 백으로 만드는데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후 상호 최선으로 진행하여 22-42로 대회 첫 패배를 당하였다.
내가 로즈 오프닝을 깊게 파면서 느낀 점은 한 오프닝을 깊게 팔 때 다른 응수에 대한 대응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위의 진행은 하도 많이 둬서 다른 수에 대한 응수도 어느 정도 경험이 생겼으나 백의 E7 대응은 많이 보지 못한 진행이었다. 모든 진행을 완벽하게 익히기는 어렵기에 낯선 진행에 대해서는 수읽기로 뚫고 지나가야하는데 이 능력이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 같았다. 한일전 때도 저 진행에서 살짝 벗어나자 대응을 못하고 진 판이 있었다.
세 판을 둬서 2승 1패니 아직 좌절할 상태는 아니었고 4라운드부터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3라운드 종료 이후 점심 시간이 있었고 샌드위치 등이 점심으로 나왔다. 하지만 아침도 모닝빵 하나로 때우고 점심도 입맛에 맞지 않아 먹는둥 마는둥 허기만 달래는 수준으로 조금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전 판 복기를 하고 시맥스에서 AI를 상대하면서 4라운드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이전 대회의 경험을 비추어 봤을 때, 중반에 힘을 못썼기에 4, 5라운드에서 1승만 거두면 선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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