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EGP Rome 이후 한 동안 오델로 공백기가 있었다. 현재 군 대체복무 중이기 때문에 4주 간 기초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로마 대회에서 돌아오는 날은 5월 19일, 기초군사훈련 기간은 5월 31일부터 6월 28일까지였다. 현역에 비해 턱없이 짧지만 훈련소에 있을 생각에 로마 대회 이후로 계속 의욕 없이 멍하게 지냈다. 훈련소 들어가는 것 자체도 걱정거리였지만 오델로 공백기가 생기는 것 역시 신경이 쓰였다. 스스로 오델로 실력이 안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씩 오델로를 못하는 시기가 있으면 레이팅이 떨어지고 실수가 잦아졌기에 꾸준히 연습을 하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바로 다음 대회가 7월 9일 명인전으로 훈련소 수료 이후 대회 준비하고 감각을 회복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소재영 四단 님이 비교적 최근에 4주 과정으로 훈련소에 갔다오셨고, 안에서 오델로를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참고해서 나도 훈련소 안에서 오델로 판을 만들기는 했다. 부식으로 초코칩 쿠키가 나왔는데 그 상자가 안쪽은 회색, 바깥쪽은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이었다. 아무 종이 한 장을 구해 뒷면에 가로 8칸 세로 8칸의 판을 그리고 쿠키 상자를 찢어 오델로 돌로 사용했다. 하지만 분대 내에 오델로를 아는 사람이 한 명 밖에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갖지 않아 나 혼자 둘 때만 사용했다. 또한 참고용으로 평소에 안 쓰던 Cow, Comp'Oth 등 오프닝을 적어가서 살펴봤다.
훈련소에서 나오고 대회까지는 일주일이 남았다. 수료하고 나온 날에 바로 대회 신청을 했다. 훈련소에 있는 기간 중에 신청이 시작되어 훈련소 나온 이후에 신청하려고 하면 마감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신청할 때에는 4명만 신청한 상황이었다. 3대 전국 대회 중 하나인데 참가가 저조한 것이 마음에 아팠다. 다행히 내가 신청한 이후 사람들이 신청하면서 총 참여 인원은 10명이 되었다. 이번 대회에는 유난히 사람들 일정이랑 맞지 않으면서 평소 뵙고 싶었던 재영 님, 범근 님, 하야 님, 쿨러 님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러나 다시 출근을 시작하면서 밀린 일을 처리해야했고, 그 주에 하필이면 교육이 잡혀있어서 정신 없는 나날을 보냈다. 훈련소에서 나온 다음 주를 쉴 틈 없이 보내다보니 어느새 대회 날이 다가왔다. 오델로 연습할 겨를 없이 감각이 애매한 상태에서 대회를 맞이하니 불안감이 몰려왔다. 평소처럼 시간을 넉넉히 잡고 출발하였는데 가는 길에 교통 사고와 도로 공사로 정체가 매우 심해 중간에 택시로 갈아탔다. 원래는 조금 일찍 도착해서 사람들이랑 안부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조금 늦게 도착했다. 오랜만에 뵙는 분들과 간단히 인사하고 대국 준비를 했다.
[1라운드 기보]
1라운드는 흑을 잡고 손진혁 무급과 상대하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나오고 난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인 판으로 두니 감회가 새로웠다. 상대 백이 직각으로 나오기에 Rose-Tamenori / Rose-Birdie까지 진행을 하였고 18수 백 E2는 -2짜리 차선으로 익숙치는 않았으나 꾸준히 최선을 유지했다. 상대가 22수 백 D8을 뒀는데 -11이었고 이 때부터 살짝 긴장이 풀어진 것 같다. 다음 23수로 최선은 H3인데 +3인 B6를 두고, 상대의 악수인 24수 백 A4에 대해서도 F8이라는 애매한 수를 뒀다. 상대의 빈틈은 여기까지였다. 29수 흑 D2부터 유불리가 뒤집어졌는데 굳이 백의 위쪽 벽을 뚫고 나갈 필요가 없었다. 33수 H6는 일찍 들어갈 필요가 없는 수였고, 35수를 둘 상황에서는 C2로 백의 F2 착수를 막는 것을 간과했다. 이후 서로 최선보다 차선으로 가면서 수치가 -4 ~ -8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42수까지 진행하였다.
승패를 좌우한 수가 43수 흑 A2로 최선은 E1이었으나 실전에서는 F2, G3가 모두 흑으로 바뀌는 게 꺼려서 피한 수였다. 48수 백 A7은 차선으로 최선 A6를 뒀으면 흑은 A1 코너와 블랙라인 중 하나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참 전부터 상황이 쉽지 않게 느껴져서 시간을 오래 쓰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해졌다. 이후 계속 차선으로 진행하다가 53수를 둘 상황에서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다. -30인 G2를 뒀는데 이는 백이 H1을 둬도 흑이 G1을 둘 수 없기 때문에 좋지 않은 수였다. 수 읽기를 하면서 이 부분을 생각했는데 장고하는 과정에서 이를 잊고 그냥 둬 버린 것이다. 시험 때 고민하다가 답을 바꿨는데 바꾸기 전 답이 정답일 때의 안타까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나는 착수하는 순간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탄식을 내뱉을 뻔 했다. 하지만 겨우 표정으로 드러나는 것을 참았다. 다행히 상대가 H1을 간과하며 25-39로 첫 경기에서 패하였다.
한일전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1라운드에서 패한 순간이었다. 대회 처음 출전하시는 진혁 님과 안태영 님이 1라운드에서 1승을 하는 파란을 일으키셨다. 반대로 나는 오랜만에 두니 생각의 폭이 좁고 수 읽기가 안되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스위스 방식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대회에서 1패를 안고 시작하니 불리함이 크게 다가왔다. 그런데 2라운드 상대는 껄끄럽게 생각했던 김용범 初단이었다.
[2라운드 기보]
내가 백을 잡았는데 평소처럼 직각으로 가지 않고 대각으로 갔다. Heath-Bat로 갈 것이라 예상했고 그대로 진행하였다. 이는 지난 전국선수권 대회 때 준비했던 것이었으나 늦게 쓰게 되었다. 대회 직전에도 이 이후 진행을 계속 준비했는데 초반에 실수를 했다. 10수에서 C1을 둬야하는데 -4인 C6를 둔 것이다. 이 때부터 서로 꼬이기 시작했다. 14수를 둘 상황에서는 F1을 뒀을 때 흑이 F2를 두면 흑의 두터운 벽을 뚫고 나가는데 불리해보였고, D6를 택하였는데 -8짜리 차선이었다. 여기에서 상대는 최선인 F2 대신 C1을 택하였다. 다음에 흑은 17수를 최선인 G4 대신 -4인 C2를 두면서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이후 24수까지 -2 ~ -4 사이에서 진행되었다.
승부는 25수에서 기울었다. 최선은 B6로 백이 B5를 못 두는 것을 이용하는 수인데 흑이 G5를 두면서 우변 쪽에 여유수가 생길 여지가 커졌다. 흑은 27수에서도 B6를 보지 못하고 G1를 두면서 불균형한 변을 만들었으며, 흑으로 하여금 좌상쪽 착수를 꺼리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서로 -14 ~ -22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53수까지 진행되었다. 1라운드의 패배 때문에 신중히 두다보니 시간이 부족하였고 +16인 최선수 A7, H1를 놔두고 최악수 +2인 C8으로 갔다. 생각을 잘못해서 A7을 두고 진행하다보면 하변을 흑에게 내준다고 착각한 것이 컸다. 대회가 끝나고 결과를 보니 내가 이 때 최선수를 뒀다면 등수가 달라지고, 승단까지 가능했다. (자세한 설명은 2편에 추가) 그렇게 대국은 31-33 신승으로 끝이 났다.
[3라운드 기보]
3라운드에 1승자를 만날 줄 알았는데 무승자인 홍형범 님을 만났다. 내가 흑을 잡았는데 상대가 평행 오프닝으로 진행했다. 대회에서 처음 본 오프닝으로 직각이나 대각 오프닝보다 불리하기에 실전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백 12수 F7, 백 14수 C2로 흑의 우측과 상측을 감싸고, 백 16수 D8으로 우측 백의 벽이 두터워지면서 승기가 기울었다. 특히 백 20수 B3로 백이 A4에 착수가 불가능해지면서 좌변에 여유수가 많이 생기는 Boscov swindle 모양이 나타났다. 이후 여유롭게 흑은 A7, A4, A2 순으로 착수를 이어갈 수 있었다. 38수를 두는 상황에서는 돌 배치에 대한 혼선으로 잠깐 대국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기록한 기보대로 복기를 하다가 47수 이후로 진행이 불가능하였는데 아마 돌 뒤집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최종 결과는 50-14로 흑 승이었다.
3라운드가 끝나고 점심 식사가 있었다. 점심 비용까지 협회에서 지원이 있었고 지난 선수권 대회 때 찾은 중국집을 다시 갔다. 4라운드가 남은 상황에서 어렵게 느껴지는 상대를 많이 만나지 못했다는 것에서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안중근 의사의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라는 말처럼 오델로도 꾸준히 두지 않으면 실력이 떨어지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지나온 3라운드보다 앞으로 갈 4라운드가 멀게만 보이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 : 제 4회 명인전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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