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린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이 블로그에는 '오델로 일상'이라는 제목의 글과 '일상 오델로'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옵니다.
'일상 오델로'는 제가 타 사이트에서 올리는 글을 거의 그대로 다시 올리는 글입니다.
이번에 올리는 세계대회 관련 글은 요약본 같은 글이고 이 블로그에 좀 더 깊은 내용의 후기를 쓸 예정입니다.
오델로 글을 정말 오랜만에 씁니다.
그간 제 개인적인 일로 바쁘기도 했고, 몸이 안 좋기도 했습니다.
또 두 번의 오델로 대회에서 부진을 겪으면서 의욕을 상실하기도 했습니다.
항상 피곤했던 걸 그냥 잠을 잘 못 자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몸이 많이 안 좋아진 상황이었습니다.
아마 이 때문에 의욕이 없고 오델로 대회에서 성적도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주 전부터 체력 관리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지금은 컨디션이 그나마 좋아진 상황입니다.
지금 이 글을 프라하에서 쓰고 있습니다.
오델로 세계 대회 예선을 모두 마친 상황입니다.
오늘 글에서는 제 첫 세계 대회 경험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한국 대표로 저 포함 두 명이 출전했습니다.
한 명은 어린이 대표로 세계 대회 출전 경험이 많은 선수였습니다.
예선은 첫째 날 7판, 둘째 날 6판, 총 13라운드로 진행합니다.
대진은 스위스 토너먼트 방식으로, 1라운드 랜덤 대진 이후에 비슷한 성적을 거둔 사람들끼리 대진이 짜입니다.
대회 출전할 당시 제 세계 레이팅은 1739였습니다.
1라운드 상대는 코트디부아르의 여자 아이 Gallo Irène Ourega (레이팅 765)였고 저는 백이었습니다.
별로 생각을 깊게 하지 않고 뒀습니다.
그런데 복기 결과 위험한 순간이 두 번 있었습니다.
우선 백 38수로 B8을 뒀는데 흑이 39수로 G7을 두면 흑은 둘 곳이 제한이 됩니다.
38수에서는 흑에게 좌변을 내 줄 생각으로 B2를 둬서 상대를 우측으로 몰고 가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또 백 42수로 G3를 택했는데 이는 흑에게 활로를 열어주는 수였습니다.
백 42수로 G6를 뒀다면 흑이 둘 수 있는 모든 착수 가능한 지점이 외각 쪽 백을 없애 흑이 갈 곳을 막아버리는 상황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 역시 실수를 하여 15-49로 기분 좋은 출발을 했습니다.
2라운드 상대를 보고 제 반응은 아래 사진과 100% 일치했습니다.
상대는 미국 랭킹 1위, 세계 랭킹 27위이자 2003년 2004년 세계대회 우승, 2002년, 2014년 세계 대회 준우승의 Ben Seeley (레이팅 2329)였습니다.
전성기 때보다 폼이 많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저랑 격차는 하늘과 땅 수준이었습니다.
이 판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상대에게 Stoner Trap이라는 기술을 썼기 때문입니다.
제가 흑이었는데 상대 백 28수 B3에 장고 끝에 29수로 흑 B7을 택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수로 A1 코너를 차지하는 것이 확정이 되었습니다.
백이 어디에 두던 간에 (실전에서는 백 30수 C4로 진행했습니다.) 흑 31수 A5를 두면,
백이 A7을 두는 순간 흑은 A8을 차지할 수 있고,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으면 흑이 A1을 차지하게 됩니다.
상대가 이 수를 보고 자기가 몇 년 만에 Stoner trap을 걸렸다면서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다만 이 수가 패착이었다는게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상대 백은 32수로 D3를 뒀고, 그 순간 저는 A7을 둘 수 없어졌고 상대는 A8, A7라는 든든한 여유수가 생겼습니다.
B7을 두기 전에 이 진행을 봐서 장고를 했고 다른 수도 나빠 보여서 어쩔 수 없이 택했는데 복기 결과 훨씬 더 좋은 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 복잡한 형세에서 수읽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차이가 벌어져 11-53으로 패배했습니다.
3라운드 상대는 체코의 Ivo Rybacrik (레이팅 1678)이었고 이번에는 백을 잡았습니다.
무난하게 진행하다가 한 번 패배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백 48수로 F8을 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이후 흑이 H3를 두면 G열이 모두 흑이 됩니다.
오델로에서 마지막 수를 누가 두느냐가 승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G열이 모두 흑으로 바뀌면서 나중에 G8을 백이 못 두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 상황에서 흑이 계속 우하로 들어가지 않으면 흑이 H8, G8을 두면서 게임을 마무리하는 진행이 나옵니다.
(궁금하신 분은 백 F8 다음 H3, H2, A1, B1, G2, H1, G1, A8, A7, G7, H8, G8으로 따라가보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48수 때 H3를 둬서 G열이 모두 흑으로 바뀌는 것을 막아야 패배를 피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다만 상대 역시 이 진행을 보지 못하고 24-40으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4라운드 상대는 스웨덴의 Niklas Wettergren (레이팅 2088)이었고 흑을 잡았습니다.
결정적인 패착이 두 번 있었습니다.
첫째는 흑 25수 A6로 백이 A5를 두지 못한다고 착각해서 택한 수였습니다.
이 때 좌하는 흑만 둘 수 있는 곳이 많아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는데 순간의 착각으로 들어가면서 형세가 불리해졌습니다.
둘째는 흑 43수 H2로 백의 43수 C8 응수를 보고 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블랙 라인 상에 백돌 밖에 없으며, 백이 43수를 둔 상황에서 C6나 F3를 흑으로 바꿀 방법은 있지만 백이 다시 대각선 상에 백돌만 존재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A8, H1 코너를 둘 방법이 없어져버렸고 19-45로 패했습니다.
흑 43수를 D1에 뒀으면 백이 블랙 라인을 모조리 차지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5라운드 상대는 체코의 Matyáš Racek (레이팅 1233)이었고 저는 백이었습니다.
유년부 나이 제한을 갓 넘긴듯한 인상의 소년이었습니다.
이 판에서는 중후반 때 제가 질 뻔한 상황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유리함을 크게 잃는 순간은 있었습니다.
바로 백 44수 B1이었습니다.
이 때 B1 대신 B2를 뒀다면 흑은 둘 수 있는 곳이 크게 제한되면서 동시에 화이트 라인 상에 백돌만 놓이면서 코너를 내 주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래도 상대가 이 실수를 인지하지 못해 16-48로 이겼습니다.
6라운드 상대는 스웨덴의 Marcus Frönmark (레이팅 2001)이었고 저는 흑이었습니다.
대회 전에 많은 오델로 하시는 분들이 6승 정도를 예상했고 첫째 날 3승을 거뒀기에 이번 판은 무난하게 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게임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중반까지 팽팽하게 진행이 되다가 상대 실착으로 게임이 기울어졌습니다.
바로 백 44수 F7이었는데 이 수 대신 H7을 뒀어야 했습니다.
이 수는 H8 코너를 내주기는 하지만 블랙 라인에 백돌만 놓이게 되어 흑으로 하여금 대각선 가운데 흑돌을 만들기 위해 한 수를 소비하는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백이 둘 곳이 늘어나게 됩니다.
막판에 시간이 부족하면서 끝내기를 깔끔하게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흑 51수에 시간이 없어 G1을 나중에 둬도 된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먼저 뒀는데 H8을 먼저 두고 나중에 둬도 무방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실수로 크게 이길 게임을 36-28로 마무리했습니다.
여담으로 상대 프론마크와 예선이 끝나고 소회를 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7라운드 상대는 미국의 Joseph Rose (레이팅 2014)이었습니다.
미국의 오델로 원로인 Brian Rose의 아들로 유명한 선수였습니다.
초반에는 백을 잡은 제가 미세하게 불리했습니다.
제가 흑으로 잘 알던 오프닝(초반 정석)을 가줘서 따라갔는데 그 과정에서 미세한 실수를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 역시 유리함을 굳히지 못하고 애매한 수로 미묘한 상황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다 흑 39수 C7이라는 상대의 실착이 나오면서 승부의 추가 기울어졌습니다.
C7, D7에 흑돌이 있는 것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39수를 E8에 뒀다면 백은 둘 곳이 제한되고 흑은 둘 곳이 백보다 많은 상황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상대가 이어서 실착을 두면서 게임은 20-44로 끝났습니다.
월드 레이팅 2000 대를 만나면 3:7로 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봤는데 결정적인 실수를 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실수를 잘 포착해 이기면서 대국에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6, 7 라운드 때 가장 머리가 잘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첫날 5승 2패 17위라는 성적에 오델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카톡방은 난리가 났습니다.
비록 2일차에 만날 상대들이 더 까다롭기는 하지만 7승까지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九단 (현 시점 기준)을 제외하고 7승 이상을 거둔 사람이 나온 적은 2007년이 마지막이어서 많은 분들이 오랜만에 새로운 7승자가 나오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진운이 좋아서 5승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세계대회여서 그런지 첫 날에는 운이 따라 준 것 같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
이 말처럼 다음 날 엄청난 검증의 쓰나미가 몰아 닥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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