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전 세계의 이목은 대한민국에 집중이 되었다. 평창 동계 올림픽 때문이다. 선수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에 많은 사람들을 열광했다. 2월 25일은 이러한 열광이 끝나는 날이다. 동계 올림픽 선수들이 4년 후를 기약하는 날, 인천에서는 제 2회 한일 오델로 대항전이 열렸다. 대회 이틀 전 한국과 일본의 컬링 준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한국이 극적인 우승을 챙겼다. 하지만 한일 오델로 대항전에서는 아름다운 드라마가 써질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일본은 유단자만 1000명이 넘어가고, 세계 랭킹 100위 안에 약 80명 정도 있을 정도로 오델로 강국이다. 일본은 오델로가 널리 보급되어 있어 어렸을 때부터 접하고 실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있다. 하지만 한국은 소수만 즐기고 있으며 본인은 중학교 때 잠깐, 대학교 때 잠깐한 것을 제외하면 대학 졸업 이후 대회를 출전하고 본격적으로 오델로를 공부한 것이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한일전이라면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된다는 말이 있지만 오델로의 경우 중과부적이다.
올림픽 같은 대회의 경우에는 메달 경쟁에 열을 올리는 국가도 많지만, 4년이라는 노력의 결실을 확인하고 참여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선수도 있다. 오델로 한일전은 어떨까? 한일전은 나에게, 한국 선수들에게, 일본 선수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였다. 나에게는 노력을 결과로 확인하는 자리일까, 아니면 배우는 자리일까? 국가 간 자존심 대결일까, 아니면 오델로 교류의 장일까? 사실 네 가지 모두 맞는 답이지만 어디에 방점을 둬야 하는지는 답이 없는 것 같았다.
(사진 출처 : World Othello Federation, 링크)
대회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나보다 두 세 수 높은 사람 앞에서 두면 내 생각과 수 읽기가 훤히 읽힐 것 같은 느낌이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대회를 위해 우선 오프닝을 좀 더 철두철미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최근 수원 오프라인 모임에서 영구 형님이 No-Kung 아니면 Comp'Oth 쪽을 준비하라는 조언을 해 주셔서 그 날 이후로 No-Kung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No-Kung은 지금까지 백으로 직접 가 본 적이 없는 오프닝이였고 수치를 분석했을 때 -2가 많아 상대가 얼마든지 틀 수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느꼈다. 시작은 +0 최선 진행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시행 착오 끝에 25수 정도 최선 진행을 숙지하고 리버시 워에서 실전에 뛰어들었다. 물론 내가 외운 곳까지 끝까지 따라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처음 시작이나 중간에서 -2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하면 어느 정도 무난하게 대응이 가능해서 No-Kung 승률이 5할을 넘어갔다. Kung이 4할 정도 승률이 나오는 것과 비교하면 대회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백을 잡았을 때 상대가 Tiger(Many Black)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대비를 해야했다. 전에는 Rose-Bill에서 차선으로 받는 진행을 택하였는데 그 진행에 어려움을 느껴 그 전에 Banana로 틀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흑을 잡았을 때 상대가 대각으로 올 경우 왕중왕 전 때처럼 Buffalo로 가기로 생각했다.
한국의 오델로 플레이어들이 합심하여 일본과 대적하기에 오델로 기사 카톡방은 왕중왕전 이후 한일전 관련된 이야기와 오델로 문제가 많이 나왔다. 오프닝을 어떻게 준비할지, 상대의 스타일은 어떤지, 어떤 방식으로 남은 대회 기간을 준비해야할지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특히 그린 님께서 최근 7년 간 일본 선수의 기보를 모아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렘 님께서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귀중한 조언과 본인의 요령을 많이 알려주셨다. 오델로 기사 카톡방에서 모여서 연습 대국을 두거나 일본 측 기보 분석을 해보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아쉽게도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각자 대회를 준비하는 방식이나 기풍이 다르지만 일본이라는 큰 산을 넘어보는 것은 모든 이에게 당연한 숙원사업일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한일전 준비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신 오델로 기사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대회 전에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가 있었다. 전자는 리버시워 레이팅이 2000을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가끔씩 오델로가 잘 되는 날이 있기 마련인데 두 세 수 이상의 진행이 한 번에 보이거나 착수로 인한 대각이나 C라인의 변화가 또렷하게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그 날은 내가 선호하는 오프닝을 선택하는 유저가 많아 레이팅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던 것이었다. 예전과는 확실히 보이는 게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고 한일전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이나마 상승했다. 나쁜 소식은 대회 전 주에 일정이 빡빡했다는 것이었다. 논문 수정, 실험, 회의 등이 겹치면서 오델로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퇴근 이후에 기보 분석이나 오프닝 공부를 하려고 해도 시간이 부족하였다. 이 때는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다. 손자병법에 ‘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라는 말처럼 나도 알고 상대를 알아야 되는데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아리송하고 상대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것이 많으니 마음이 불안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한국 팀 참가자를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빌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코를 심하게 골기에 다른 사람들의 숙면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 자취방에서 바로 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대회는 인천 공항 근처 호텔에서 열려서 아침 시간에 공항 버스를 탈 생각을 했다. 6시 41분 차를 타야되기에 5시 반에 일어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전날 시간 지체를 줄이기 위해 아침에 떠날 준비를 미리 해뒀다. 대회날 아침을 무조건 먹어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편의점 도시락을 사 뒀고, 대회 중간중간 두뇌 회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초콜릿을 준비하였다. 이런 준비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회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걸 최대한 하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컨디션은 평상시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제 1, 2회 수원대회, 왕중왕전 때는 활력이 느껴졌다면 이 날은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는 정도였다. 늦을까 계속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이 평소처럼 1시간 15분 정도만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고 마침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까지 타이밍 맞게 타고 8시 10분 정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회장은 호텔 11층의 회의실 같은 홀이었다. 이전 대회에 비해 대국장은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감사하게도 전날 협회장 님과 볼짱 님, 리치 형님께서 대회장 세팅을 해 주셨다. 대국 전까지 준비한 내용을 이야기 하고 담소를 나누며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하였는데 동권 님께서 연습 대국을 요청하셨다. 초반에는 불리한 느낌이었으나 중반 이후에 뒤집어져서 이기게 되었다. 하지만 근처에서 범근 님과 재영 님의 연습 대국 이후 '연습 때 이긴 사람은 대회 때 죽쑨다'는 말이 묘하게 귀에 잘 들어왔다.
대회를 앞두면서 마음은 복잡해졌다. 일본 오델로 기사들과 오프라인에서 대국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벽이었다. 대국할 때 항상 어떤 수 읽기를 하고 착수하는지 궁금하게 된다. 지금까지 대회를 나가면서 한국 플레이어들과 두면서 어느 정도 따라가는 과정에서 더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한 답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일본 기사들은 그 답을 갖고 있기에 '도대체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의문이 커지고만 있었다. 또 대회 며칠 전, 리버시 워에서 우연히 후쿠나가를 만나 대국을 하였는데 어느 순간 선택지가 없어지고 숨이 꽉 막힐정도로 판세가 답답하게 바뀐 판이 있었다. 내 실수에 대해 응징을 확실히 할 뿐만 아니라 상대가 둔 약간 불리한 수에서도 우월을 굳히는 것을 보면서 내 실력은 빈틈이 텅텅 나 있는 갑옷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대회에서는 질 확률이 높아도 기죽고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치훈 9단의 어록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앞으로 나아가다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나타난다면, 그 벽에 손톱자국이라도 내고 물러나와야 한다."
그래서 후회 없는 대국, 좋은 기보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일본 기사들의 뇌리에 한 줄의 손톱자국이라도 남겨야겠다는 결의가 생기기도 했다. 호기심과 두려움, 결의로 마음이 무거워지기는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묘한 기대감도 있었다. 오델로 플레이어를 만나고 오프라인에서 직접 두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면서 행복이기 때문이었다.
연습 대국과 잡담을 하다보니 일본 측 선수들이 도착했다. 5명은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 기사로 모범생 또는 독특한 면이 있는 천재 같은 느낌을 받았다. 중년 여성 분인 타츠미 유키코 6단은 첫 인상에서 성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머지 한 명은 나카지마 테츠야 8단으로 일본 오델로를 한 단계 발전시킨 인물이자 매일 아침 8시에 오늘의 문제를 확인하게 해준 장본인이다. 그들이 오기 전까지는 막연한 호기심이 가득했는데, 직접 얼굴을 보니 아이돌을 본 소녀팬처럼 기쁘고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등반가들이 고산을 보면서 두근거리듯 내가 가야될 목표를 두 눈으로 직접 보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9시 반에 양국 오델로 협회 회장님의 환영사와 개회사가 있었고 두려움과 설렘 속에서 대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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