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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 보기 : 제 2회 전국 오델로 왕중왕전 1편, 2편

 

오델로 기사 중에 가장 상대를 많이 해 본 기사는 아마 리치 형님일 것 같다. 첫 오프라인 모임 때 만나서 둬 보기도 했고, 리치 형님 집에 찾아가서 다면기 네 판을 뒀던 적도 있다. 또한 제 2회 수원대회 마지막 대국 역시 리치 형님과의 판이었다. 어찌보면 가장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六단*이라는 벽은 두텁고 견고하며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 왕중왕전 이후 七단으로 승단) 개인적으로 점심 먹은 직후인 4, 5라운드에서 1승은 해야된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섰다. 라운드 배정 결과 내가 백을 잡게 되었다. 이전 대국 내용이나 기사 분들의 후기에서는 Rose 오프닝을 주로 사용한다고 나와있었으나 최근 리버시 워 기보 등을 살펴봤을 때에는 Horse를 사용하시기도 하였다. 그래서 대국 전에 Horse 최선 진행을 조금 살펴보기도 하였으나 다른 오프닝에 비해 숙련도나 경험은 떨어졌다.

 

대국을 진행해보니 예상은 적중하였다. 8수 백 G5까지는 확실하게 아는 수순이었으나 그 이후부터는 수읽기로 돌파해야 되는 부분이었다. 11수 흑 E2는 오프닝 북 상에 -5로 나와있고 이에 12수 백 F6는 최선수였다. 이 때부터 대응이 엇나가기 시작했다. 14수 백 D2는 짧았던 우위를 원점으로 돌리는 수였다. 이 때 H3와 B5가 각 +6, +4로 D2와 비교하였을 때 흑의 벽을 깨기에는 이른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15수 흑 E7은 -5로 흑 벽을 넓히는 측면에서 불리한 것으로 보인다.

16수 백 C7은 +2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상대의 벽을 너무 일찍 깨려고 달려든 느낌이 든다. 기억 상으로는 이 수를 오래 고민했는데, 이 수를 선택하면서 흑이 C6를 두면 내가 백 D7을 두고, 흑이 17수로 D7을 두면 반대로 백이 18수로 C6를 두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전에서는 후자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F3라는 조용한 수로 들어갈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를 품고 있었다. 다만 19수로 흑은 B5에 착수하여 C6의 백을 흑으로 바꾸면서 F3로 들어가는 수를 방어하였다.

 

19수 이후 감각적으로 좋다고 느껴진 수는 없었다. 이 상황에서 나중에 흑이 F3를 먼저 착수하는 것 역시 고려해야 했고, 흑의 좌상쪽 벽 역시 건드리기 조심스러운 형세였다. 그래서 혹시나 나중에 B6에 착수할 때 흑이 B4 착수를 하지 못하도록 20수 백 F8을 택하였는데 최선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F8에서 D6로 이어지는 대각을 흑이 자르는 것이 가능해보인다. 다음 21수 흑 F3는 최선이었고 이어지는 수를 계속 염두에 두던 B6로 뒀는데 이는 악수였다. 구태여 흑의 좌측 벽을 갉아들어갈 필요 없이 C8로 착수하여 상대가 우하 쪽으로 두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 진행이었다. 이에 흑은 백 진영을 갈라버리는 최선수 E8을 택했다.

이 때 하변에서의 싸움을 C8, D8, F7으로 진행하고 싶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이 되었다. 다만 26수 백 F7은 수치가 -4에서 -9로 떨어지는 악수였는데 흑이 B4라는 조용한 수를 그냥 허용해버리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최선 진행은 26수에 백 B3, 그 다음으로 B4, F7으로 진행이 된다. 최선 진행과 비교하였을 때 F7을 두고 좌상쪽으로 백이 착수하기 어렵지만 B3를 둔 후에는 F7을 들어가는데 문제가 없는 것이 차이점이다. 만약 흑이 B3 다음 F7을 들어가더라도 우측에 흑의 벽이 생기게 된다. 다만 이 이후 흑은 27수 H5를 택하였는데 최선수에서 5석을 잃는 선택이었다. 최선수는 B4이었는데 최선 진행과 비교 시 백이 B3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수였다. 다만 이 상황에서도 B3 착수의 중요함을 외면하고 28수로 백 H3를 착수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흑도 B4 착수를 계속 미루는 듯한 느낌이었고 29수는 흑 G6로 진행하였다.

 

30수는 우측에 흑이 착수하기 까다롭게 만들기 위해 백 H4를 택하였다. 이 경우 G3, H6 모두 흑에게 껄끄롭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흑은 B4 대신 31수로 H2를 선택했다. 여기에서 우변을 어느 정도 정리하겠다는 생각으로 32수 백 H6를 택하였는데 이는 -8짜리 악수였다. 여기서 최선수는 E1으로 돌이 많이 뒤집어진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못 본 것으로 추정한다. 백이 E1에 착수할 경우에 흑은 상변과 우변 쪽에 착수 가능한 지점이 D1, F1, G3 정도 있지만, 백이 H6에 착수하면 C2, C1, D1, E1 등 상변 쪽에 착수 가능한 지점이 많아진다. 백 E1이 D2 ~ G5 대각과 B6 ~ E3 대각을 모두 흰 돌로 바꾼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백 H6 이후 33수 흑 H7은 당연한 수순이고 우변과 우하귀 쪽을 정리하면서 패리티를 고려하여 34수 백 G7을 착수했다. 이 수도 불리함을 안게 되는 수로 E1, A4, A5 중 한 곳을 먼저 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 때도 흑은 B4 착수를 유보하고 35수로 G3에 착수하였다.

 

이 때까지 -10으로 떨어진 순간이 있었지만 +6 ~ -6 사이로 진행되다가 -4인 상황에 도달하였다. 36수로 백 A5로 상대를 좌하쪽으로 유도하려고 하였고 37수 흑 B4, 38수 백 A3로 이어졌다. 보통 변에 자신의 돌 사이에 하나의 빈 칸이 존재하는 모양은 꺼져리기는 하지만 흑의 착수 가능한 지점이 좌측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크게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다. 흑은 여기에서 차선 +2인 39수 흑 A4를 택하였는데 최선은 H8과 D1으로 최대한 좌변에 착수를 늦게 하는 방향으로 최선 진행이 이어진다. 다음 40수로 B3로 둘 계획을 하였는데 흑 39수를 보고 나서 B3를 둘 경우 B열이 모두 백이 되고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E1을 택하였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B3, C2가 -2로 최선, E1이 -4로 차선이었다. 이 순간이 우열을 쉽게 판단하기 힘든 접전의 시작이었다. 흑은 41수로 최선 F1이 아닌 차차선 +0인 A6로 진행하였다. 42수 백 A7은 좌변을 지키기 위한 수였고, H8으로 코너를 차지하는 길이 최선인 상황에서 흑은 43수로 -2인 B7을 택하였다. 이에 바로 A8으로 들어가면 흑이 B8으로 끼워넣기를 하고 B열의 절반이 흑이 되기에 최선수인 44수 F2로 진행하였고, 45수는 흑 최선수 C1으로 진행하였다.

이 이후에 대한 기보는 복기 과정에서 정확하게 복기가 되지 않은 관계로 중요한 부분만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아직 능력이 부족하여 뒀던 오델로 판이 기억이 나지 않았고 리치 형님의 도움을 받았다. 다만 46수 이후에 진행이 D1C2B3F1G2H1G1A2A1B2B1B8A8H8G8 (기보에 나와있는 진행) 아니면 B3C2D1F1G2H1G1A2A1B2B1H8G8B8A8 중 하나인거 같다고 하셨고 전자가 맞을 것이라 추측하여 이 글에 소개를 한다.

 

46수로 백 D1을 택하였으나 수치는 +0이고 최선수는 +2 G2이다. 이 때부터 화이트 라인을 백이 차지하고 블랙 라인을 흑이 차지할 수 있으며 어느 한 쪽이 한 색깔로 바뀌게 되면 상대가 대각을 다시 자르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흑은 47수로 최선인 H8 대신 -4인 C2에 착수하였고, 백은 최선 G2 대신 차선 +2인 B3를 48수로 선택하여 화이트 라인을 차지하려고 하였다. 여기에서 G2 최선 진행과 B3 최선 진행을 비교한 결과 E4 돌 하나에 의해 2석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데 실전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보인다.

49수는 백 F1의 최선이었으나 50수에서 백 G2라는 악수가 나왔다. 추후에 G1으로 대각이 잘릴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흑은 B1이 최선인 상황에서 H1이라는 -2인 수로 진행하였고 53수 백 G1으로 끼워넣기를 한 후 흑은 54수로 A2라는 최선수로 진행하였다. 여기에서 승부의 추를 흑 쪽으로 기울게 한 수가 나왔는데, 최선수 A8 대신 A1을 택하였다. A8의 경우 하변을 내주지만 안쪽 부분에서 백의 돌을 더 지키면서 A1보다 나은 결과를 보여준다. 그 이후 55수부터 B2, B1, B8, A8, H8, G8은 모두 자명한 최선 진행이었다. 다만 이 수순 진행 중 돌 하나를 덜 뒤집어서 최종 결과는 34-30으로 기록되었다. 이 판은 5라운드 경기 중에 가장 늦게 끝났기 때문에 관전하시던 하야 누님께서 대국 이후 잘못 뒤집은 부분이 있다고 언질을 주셨다.

 

34-30 패배는 묘하게 마음을 쓰리게 하는 결과였다. 제 1회 수원 대회에서 소재영 四단과 첫 판에서 +7까지 유리했던 판을 30-34로 졌던 것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만 수원 대회 때는 유리함이 느껴졌던 순간이 있기에 안타까움이 더 컸다면 이번에는 어느 쪽의 우위가 확실히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긴장이 탁 풀리면서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만약 33-31로 질 경우 상대 돌 하나만 내 돌로 바꾸면 무승부라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이럴 때에는 돌 하나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진다.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종이 한 장이 교도소 담벼락처럼 높게 다가오게 된다. 그런데 돌 네 개 차이, 상대 돌 두 개 이상을 내 돌로 바꿨어야만 했다. 이 정도면 심리적으로는 돌 두 개가 삼국지의 역경성처럼 난공불락으로 느껴지게 된다. 만화 '미생'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반 집으로 바둑을 지게 되면, 이 많은 수들이 다 뭐였나 싶었다. 하지만 반 집으로라도 이겨보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순간순간의 성실한 최선이 반집의 승리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반 집 승에서 순간순간의 성실이라는 다른 세상을 찾는 것처럼 반 집 패에세도 순간의 방심과 실책을 찾아야 실력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국이 끝나고 복기를 해봐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자세히 살펴봐도 미세한 차이를 인지하기에는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 대국의 한 순간을 문제로 만들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풀어보라고 해도 최선수를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돌 한 두 개 차이가 수수께끼로 남아있으니 그 격차가 더 크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경험과 시간, 노력이 해결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비록 아쉬운 패배였지만 결과에 관계 없이 대회에서 가장 내 역량을 최대로 발휘한 경기는 리치 형님과의 경기라고 평가한다.

고민이 되는 부분과 미세한 차이가 존재하는 부분이 많았기에 대국이 끝났을 때에는 1분 조금 안 되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시계 반대편에는 10 몇 초 정도의 시간이 액정 상에 떠 있었다. 대국 중간에 리치 형님의 남은 시간이 1분 이하로 줄어들면서 시간패의 가능성을 염려하였다. 그 순간에도 생각을 하다가 허겁지겁 돌을 뒤집는 모습에서 경외감이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까지 생각을 쥐어짜내 더 좋은 수를 찾아내려고 하고 수에 대한 확신을 얻으려는 모습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무사의 느낌을 주었다. 

점심 먹고 난 이후 우려했던대로 4, 5라운드에서 패배하면서 어느새 3승 2패로 중간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이 때 동권 님, 리치 형님, 재영 님이 4승 그룹, 볼짱 님, 남성우 님, 하야 누님, 쿨러 님, 홍현우 님이 3승 그룹이었다. 만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정리되면서 이후 판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상위 7명에게 주어지는 한일전 참가 자격도 얻고 싶은건 오델로 기사로서 당연한 욕심이고 올라갈 수 있는 한 높게 올라가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화장실에 갔다오고 물을 마시는 등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동안 6라운드 페어링이 나왔다. 상대는 이번에 대회를 처음으로 나오시는 홍현우 님이었다.

 

다음 글 : 제 2회 전국 오델로 왕중왕전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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