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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산악회에서 원정은 원정 보고서를 쓰는 순간 끝난다는 말을 들었다. 아무리 기나긴 여정을 마무리 지었다고 해도 정리를 잘 하지 않으면 제대로 마무리 한 것이 아니다. 이 말처럼 생각하면 내 세계대회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정리를 해야한다. 세계대회에서 돌아온 이후 무기력한 나날을 보냈다. 물에 젖은 솜처럼 묵직한 느낌이 내 머리를 사로잡았다. 한 2주 정도는 정말 바빠 오델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머리 속이 혼란스러우니 되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쇠털같이 날아간 시간이 반년을 넘어갔다.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의무감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나간 대회지만 지금 이 기록이 후에 세계대회 나갈 분들에게 미약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묘한 의무감의 정체일 것이다. 예전에는 정말 신나게 글을 썼는데, 지금은 추운 날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자동차처럼 몇 번을 재촉해야 글이 써진다. 마음이 무거운 탓일 것이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내 마음에 이 경험을 그냥 기억 저 편으로 묻어버리기에는 아깝기도 하다.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희노애락이라는 모든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그 순간 순간을 글로 박제하려한다. 세계 대회 전후의 이야기를 서서히 풀어나가면서 복잡한 머리 속이 하나 둘 씩 정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계를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고 뻑뻑한 경우가 있어 기름칠을 하는 등 정비를 하게 되는데, 이 글을 시작으로 내 스스로를 정비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보통 사람들은 여름에 휴가를 쓴다. 하지만 나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휴가를 써도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일이 있다면 정반대가 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중요한 일을 위해 휴가를 쓰려고 한다. 그 예로 석사 과정 내내 휴가를 거의 쓰지 않고 모았다가 졸업할 때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모았던 휴가를 방출했다. 바로 체코에서 열리는 오델로 세계 대회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세계 대회를 나갈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대회가 열리기에 시간과 금전적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세계 대회를 나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5월에 로마 EGP 대회를 나간 것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우선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재미를 더해줬다. 한국 대회와 비교하면 참가자의 실력 범위가 넓어 경험을 쌓는데 도움이 되었다. 올해 초 한일전 때에는 실력이 많이 부족해 일방적으로 패배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쉬웠다. 그에 비해 로마 EGP는 내 실력 위 아래로 상대를 만나다보니 접전이 일어나기도 하고 한 수 위 상대를 만나 진땀을 빼는 일도 생기면서 난이도가 나에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대회의 매력 중 하나는 오델로라는 공통 주제로 서로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대회 신청 마감이 다가올 때쯤 나는 계속 주변에 세계 대회 출전하는 분이 있는지 물어봤다. 누군가가 대회를 나간다고 하면 대회를 나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쉽게 접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때문이다. 머리 속으로 계속 이번에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날 때 계속 체코로 가는 항공권과 숙소를 알아봤다. 이 때는 진짜 머리 속으로 세계 대회를 가는 상상만 했고 실제로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마침 우연히 목돈이 생기면서 세계 대회 출전을 가로막던 가장 큰 문제인 금전적인 부분이 해결이 되었다. 다시 말해 불가능의 영역에 있던 세계 대회가 선택의 영역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평범한 20대 중반 남자가 갑자기 계획에도 없던 큰 지출을 하려고 하니 고민이 많이 되었다. 세계 대회를 나가는 비용으로 두 세 달은 좀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기에 대회를 나가는 것이 돈 낭비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경력이 1년 조금 안 됐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오델로인이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숙소, 항공편을 찾아보고 세계 대회 참가자 목록을 확인하는 등 마음은 이미 프라하로 날아가있었다. 이 때, 흔들리는 마음에 불을 붙인 것은 볼짱 님의 한 마디였다. 세계 대회를 나중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래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갈 수 있는 상황이면 가는 것을 추천한다는 말이었다. 나의 경우, 앞으로 1~2년 내에 진로에 중요한 선택을 하는 시기가 오기 때문에 그 전에 세계 대회를 출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또 협회장님께서 앞으로 인생을 그냥 즐기면서 살아야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도 머리에서 떠오르면서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는 생각을 했다.


오랜 고민 끝에 마음의 무게추는 세계 대회 출전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마음이 흔들릴 수 있기에 번복을 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세계 대회 신청 마감 전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체코 행 왕복 항공편을 결제했다. 그리고 오델로 기사 단체 채팅방에 세계 대회에 출전하겠다고 선언했다. 많은 분들이 내 결정에 격려를 해주면서 힘을 보태주셨다. 이 때까지는 한국 대표가 나, 여류 대표 하야님, 어린이 대표 이미카엘 군까지 총 3명이었다. 세계 대회 출전을 번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주변 사람들에게 같이 대회 나가자고 졸랐다. 하지만 다들 본업이 있기에 대회에 참가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중에 하야 님은 회사 일정 때문에 참석이 어려워져서 아쉽게 체코까지 같이 갈 수 없었다.


대회 출전을 결정하였지만 대회를 임하는 마음은 준비가 부족했다. 오델로 대회를 나가기 시작할 때에는 수읽기하면서 깊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이 수가 맞는지 아닌지 고민과 걱정이 앞서고, 잘 하고 싶다는 의지가 약해졌다. 그러다보니 복기를 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오프닝 연습을 해도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오델로가 재미있어서 머리 속에 각인될 때가 그리워졌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시간이 지나 9월 1일이 다가왔다. 인천 대회가 있는 날이다. 세계대회 전 실전 감각을 점검해 볼 기회였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대회에 임하고자 전 날 인천에 따로 숙소를 잡을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는데 결과는 최악이었다. 2라운드 엔딩 실수 이후 끝없이 쭉 밀려났다. 5라운드부터는 연이은 패배에 진이 빠졌는지 제대로 수 읽기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2승 5패라는 성적으로 씁쓸하게 마무리 지었다. 충격을 받았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오델로에 매진하지 못하였다. 이 때는 스스로 세계대회 경험을 하러 간다고 합리화를 했던 것 같다. 둬 본 판을 프로그램으로 복기하는 것이 기본 중 기본인데 그 곳에서 나아가지 못하였다.

[출처 : Mario Madrona]


싱숭생숭한 마음에 시간을 덧없이 지나갔다. 오프닝을 조금씩 준비했지만 그냥 한 두 번 보고 마는 수준이었다. 세계대회를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대한 문제를 발견했다. 9월 중순 추석 연휴 이후 발에 통증이 있어서 정형외과에 갔는데 통풍인지 확인해보자면서 혈액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고 의사 선생님과 대면하였다. 다행이 통풍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들은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간수치가 심하게 높아져있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피로감을 느끼기는 했으나 이 정도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결과에 충격을 받아 입맛이 뚝 떨어졌고 거의 자동으로 식단과 운동으로 건강 관리를 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건강에 신경 쓴 시기였다. 확실히 전보다 피곤이 덜 하고, 건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정작 오델로 대회 준비에 차질이 생겼다. 이상하게 해외 출국 전에 일이 심하게 몰렸다. 로마 대회 때도 비슷했다. 기억으로는 대회 2주 전부터 정말 정신 없이 바빴다. 논문 두 편을 작업하고 있었고, 출국 전 마지막 출근날까지 실험 기계가 말썽을 일으켜 실험실에 틀어박혀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세계 대회 나가기 전날에 오델로 기사들과 모여 조촐한 출정식을 하였다. 오프라인에서 판으로 두는 것은 오랜만이여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뒀다. 김용범 初단, 김정수 貳단, 소재영 四단을 상대로 이기고, 협회장 님에게 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들 바쁘고 일정이 있을건데 한국에서 오델로 세계대회를 나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여서 격려해주는 것에 큰 고마움을 느끼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생각했던 시기보다 일찍 세계 대회를 나가고, 출전도 갑자기 결정했으며, 대회 전에 일이 몰리다보니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였다. 현실적으로 5~6 pts 정도 예상했기에 좋은 성적을 거둬야 된다는 생각보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조금 더 컸다. 다만 세계 대회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못한 것은 마음 한 편에서 양심의 가책으로 쿡쿡 찔러왔다.


대회 직전에 정신 없이 바쁘다보니 출국 준비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급하게 했다. 하지만 어설프게 할 생각은 없었다. 오델로 실력이 받쳐주면 대회 때 컨디션 영향을 덜 받지만 최상의 컨디션으로 대회장에 발을 들이고 싶었다. 우선 출국 이틀 전부터 잠자는 시간을 조절하면서 최대한 시차 적응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비행기 시간 역시 자연스러운 시차 적응에 맞아 프라하에 도착한 첫 날에는 평소보다 2시간 정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정도로 성공적으로 시차 적응을 했다. 일부러 대회 예선 이틀 전에 도착한 것 역시 도움이 되었다.


두 번째는 음식이었다. 2017년 벨기에 대회 때 이춘애 貳단 님께서 시차와 음식 때문에 심하게 고생하신 이야기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대회 예선이 끝날 때까지 모든 식사를 한식으로 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10월 8일에 도착하고, 예선은 10월 10, 11일이기에, 8일 점심부터, 11일 점심까지 총 10끼 분의 컵밥을 준비하고, 김치와 김을 같이 준비했다. 컵밥 포장을 해체해 종이 밥그릇은 겹쳐두었고, 즉석밥은 따로 포장했으며, 컵밥 소스나 내용물은 지퍼백으로 2, 3중 포장하니 위탁수화물로 보내도 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내 우려와는 달리 호텔 조식과 대회장 점심 식사가 괜찮아서 컵밥을 먹을 일이 많이 없었다. 결국 한국 입국 전날 한 끼에 컵밥을 2개씩 먹어야 할 정도로 남았다. 식사 외에도 감기약, 소화제 등의 상비약과 평상시 먹는 영양제를 날짜에 맞춰 준비했다.


또한 대회장으로 이동하는데 시간을 많이 소모하는 것 또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숙소를 대회장 근처로 잡았다. 대회장 역시 호텔이었으나 4성 호텔이여서 그런지 비쌌고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도보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3성 호텔을 예약했다. 프라하 도착 이후 피로가 누적될 상황을 만들기 싫어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택시까지 예약을 했다. 호텔 예약을 할 때에는 몰랐던 사실인데 숙소 근처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한식집이 있었다. 도착한 날 점심 때 직접 가봤는데 한국에서 먹는 맛과 거의 차이가 없었으며, 가격은 7000 ~ 9000원 수준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저렴했다. 이후 예선 첫 날에 한국 유소년 대표인 이미카엘 군과 미카엘 군의 어머니와 함께 방문했으며, 그 자리에서 이스라엘 대표 선수들을 만나기도 했다.


출국은 한국 시간으로 10월 7일 일요일 오후 10시 35분이었다. 오전이나 점심 시간대 쯤 비행기면 일어나자마자 정신없이 짐을 챙기고 이동해야했는데 밤 비행기여서 여유가 있었다. 다만 급한 업무가 남아있어서 집에서 출발하기 전까지 틈틈히 일을 해야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인천 공항으로 향하였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항상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여정과 미지의 세계로 향하기 때문이다. 공항철도에 내려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에 도착하니 하늘은 어둑해졌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순간 하늘은 다시 밝아질 것이었다. 오델로 세계대회라는 새로운 경험이 지평선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특별한 목적이나 업무 없이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해외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델로라는 게임이 나를 다른 세계로 인도하였다. 2017년 7월에 오델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여 17년 10월에 대회를 나가기 시작해 1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오델로가 나에게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잔잔하던 일상 속에서 내 마음을 뛰게 하는 것은 오델로였다. 오델로에 대한 애착만으로 뛰어든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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