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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수원 대회 후기도 아직 안 썼는데 이미 2회 대회까지 끝나버렸다. 전자의 경우 대회 때 있었던 일 뿐만 아니라 그 전후의 이야기를 다 포함하다보니 계속 늦어지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2회 후기를 쓰고 긴 호흡으로 1회 대회 후기를 쓰려고 한다.

2회 대회의 특이했던 점은 온라인으로 풀리그를 진행한다고 공지가 나왔다는 점이었다. 공지 올라온 직후에는 신청한 사람이 적어 오프라인 대국으로도 풀리그를 진행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였으나 학생들이 대거 신청하며 신청 인원이 10명을 넘어가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온라인 대국이여도 대회에서 10판 넘게 두면 집중력과 체력이 크게 소모될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오프라인 대국에서 좀 더 수가 잘 보이는 느낌이 있어서 온라인 대국이 살짝 꺼려지기도 했었다.

1회 대회 끝나고 난 이후 오프닝 연습을 위주로 리버시 워로 많이 뒀던 것 같다. 처음에는 레이팅이 상승하다가 1800 초반에서 1700 후반을 왔다갔다 하기 시작했고 온라인 대국에 집중이 잘 안되기 시작하였다. 몇 판 져서 레이팅 복구를 하려고 계속 두면 생각은 잘 안되고 기만 빨려서 대회가 가까워졌을 무렵에는 리버시 워 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결국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없이 대회를 맞이하였다. 대회 전 날, 주최를 맡으신 리치 형님께 대회 준비에 도움이 필요한지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는데 때마침 일찍 와서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8시 반이나 9시까지 간다면 아침을 먹고 이동할 수 있었으나 8시까지는 가야됐다. 평상 시 일어나던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 급하게 이동해야되는 일정이 빠듯하게만 느껴졌다.

다음 날, 삼각김밥 하나와 바나나 하나를 아침으로 먹고 길을 나섰다. 마치 식물처럼 햇빛에 따라 컨디션이 좌우되는 나에게 겨울 아침은 얼어붙은 세상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시맥스나 리버시 워를 키려고 하였으나 시험 전날 벼락치기 하는 학생과 같아서 금방 포기하였다. 학생들이 많이 오니 너무 많이 긴장할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과 함께 버스 안에서 멍 때리면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거의 시간에 맞게 리치 형님 집에 도착하였다. 집 안의 짐을 문 앞으로 빼보니, 오델로 판, 시계, 간식 등 물품이 큰 박스 두 개 분량이었다. 이 짐을 도서관으로 끌고 가다가 영구 님 집에 잠깐 들려 담소를 나누고 대회장에 가서 준비를 시작하였다. 참가자가 16명이여서 풀리그 진행은 불가능하고, 4명 씩 4그룹으로 나눠 그룹 내에서 리그전을 치룬 후 그 순위에 따라 그룹을 재편성하는 방식으로 3번의 소그룹 리그전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테이블 8개에 시계와 판을 배치하고 간식과 대진표를 준비하다보니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취소한 분 때문에 구세진 초단님과 영구 님께서도 대회에 참가하신다고 하여 대회가 한 층 더 치열해졌다.

대회 대진표는 1회와 동일하게 참가 신청 역순서로 원하는 자리에 배치하고 먼저 신청한 4명은 대진표 내에서 다른 사람과 위치를 옮길 수 있었다. 대회에 대한 열망이 가득차서 이번 대회도 가장 먼저 신청했기에 대진표를 수정할 수 있었고 여러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고민의 주된 골자는 1라운드 때 학생들만 만날지 아니면 기사 한 명이 있는 조에 들어갈지였다. 2라운드 때 기사들끼리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체력 안배를 목적으로 학생 3명이 있는 조에 내가 들어가는 방향을 택하였다. 그리고 그 선택이 정말 재미난 결과를 낳게 되었다.

1라운드에는 학생 3명과 같은 조가 되어 긴장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같이 둔 학생 중에 거의 속기를 두듯 빠르게 착수를 하는 학생이 있어 진정시켜주고 싶은 학생이 있었고 대국 이후 잘못 둔 부분을 물어본 학생도 있었다. 특히 다른 학생들은 착수가 빠른 반면 질문을 한 학생의 경우에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에서도 꼭 한 번씩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이 기특하다고 생각되어서 그런지 잘못된 부분을 알려달라는 말에 어설프게나마 복기를 하면서 안쪽으로 뭉치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줬다.

2라운드 대진은 죽음의 조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조합이었다. 영구 님, 구세진 초단 님, 아마 6단 신동명 님과 같은 조였다. 이 때 대진표를 짤 때 생각을 더 깊게 해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대회에 신동명 님과 입단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었기에 조금 더 부담이 됐던건 사실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죽음의 조에서 다 죽여버리고 살아남겠다는 말도 하였으나 허장성세였을 뿐이었다.

대회 전체를 통틀어 2라운드 때 가장 집중력이 떨어졌던 것으로 평가한다. 구세진 초단과의 첫 경기에서는 Rose-birth까지 진행하였다가 다른 길로 빠졌는데 산만한 상태에서 수 읽기가 분명하게 안되고 실수가 잦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우 33-31로 이긴 후 영구 님과의 대국에서는 초반에 유리한 형세로 진행되다가 중후반 상대에게 수를 내주고 벽을 만드는 수 등 악수가 이어지며 48-16으로 패배하였다. 마지막 경기는 입단을 경쟁하는 동명 님과의 경기였는데 백으로 Rose-v-Toth에서 살짝 비트는 오프닝을 준비하였는데 이후 진행에서 서로 헤맨 듯 싶었다. 중반까지만해도 넉넉하게 이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묘하게 돌을 많이 못 먹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패리티까지 뺏기면서 36-28로 패하였다. 리버시 워에서처럼 중반에 치명적인 수를 둬서 패하는 패턴이 계속 반복되었다는 것에 약간 화가 나기도 하였다.

2라운드를 끝냈을 때 영구 님이 3승, 나머지 세 명이 1승 2패로 동률이되고 돌 개수로 순위를 가르게 되었다. 내가 세 경기에서 얻은 돌은 77개였다. 세진 님은 73개였고 동명 님은 76개였다. 말 그대로 죽음의 조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가 기어 올라와 3라운드 승자조로 갔다고 할 수 있겠다. 동명 님은 아쉬워하며 아버지인 영구 님께 돌 하나만 더 줬으면 순위가 달라졌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2등으로 3라운드 승자조로 올라가면서 자동으로 입단이 확정되었다. 같은 조였던 영구 님을 포함하여 광욱 님, 세진 님, 리치 형님, 동명 님께 축하를 받으면서 한 편으로는 기뻤지만 아쉽게 진 두 경기와 돌 개수로 순위를 가르게 된 상황은 씁쓸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실력과 대회 결과는 별도라는 생각에 반성은 잠깐 미뤄두고 남은 경기에 집중하려 하였다.

입단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그런지 3라운드는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대국에 임할 수 있었다. 심리적 안정은 집중력 향상으로 이어진 것 같다. 3라운드에서는 영구 님, 볼짱 님, 리치 형님 순서로 대국이 이어졌다. 영구 님께서 대진표 상 가장 위쪽에 있으셨기에 대회 룰 상 흑백 결정권이 있으셨고 백 잡고 침니로 가서 필살기를 날리겠다는 무서운 선언을 하셨다. 그리고 나와의 첫 경기에서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침니는 워낙 경험이 적은 오프닝이여서 그런지 부담을 안고 시작하였고 7수 C4는 나름 침니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으로 연습을 했던 수였다. 그러나 여기에 영구 님은 C3를 두셨는데 이는 본 적이 없는 대응이였고 나는 C2라는 좋지 않은 대응을 하였다. 그 다음 영구 님이 최선수로 가지는 않으셨지만 내가 조금씩 좋지 않은 수로 진행하였고 19수 D1을 둘 때 수치는 -6이었다. 이 때 백이 D3를 두면 답답했던 상황이 좀 풀릴거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C1으로 진행하였고 나는 바로 D3의 구멍을 매우면서 전세는 비등비등하게 바뀌었다. 이후 24수 H3는 내가 돌 4개를 잃고 -4가 되는 진행이였으나 그 이후 백이 25수 B4로 진행하면서 내가 G2로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이후 +7에서 돌 두 세 개 정도 왔다갔다 하는 진행을 이어가다가 백 36수 H4, 38수 A6 때 +16까지 벌어진 상태에서 엔딩에 돌입하였다.

43수 A1은 최선수는 아니었지만 B7, C7 이후 진행이 그려지지 않아 안정적인 선택을 하자는 생각에 둔 수였다. 최선 차선 진행은 둬 봐도 다시 생각해낼 수 있는 수인지 의문이 든다. 그 이후 51수 A3를 둘 때는 H7을 두면 반격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였는데 수치 상으로는 반대로였다. 그 다음 53수 G8으로 갈 때 장고를 했는데 생각을 해 봐도 최선수 같은데 묘한 거부감 같은 것이 있었다. 아마 하변에 빈칸이 하나 만들어지고 우하귀 뺏기는 진행이 뻔하게 보여서 그런거 같았지만 그 길을 택하였다. 이후 +-2를 왔다갔다 하였으나 36-28로 대국을 마무리 지었다. 영구 님께서는 50수 부근부터 패배를 직감하신 듯 하였고 대국이 끝난 후 종반에 패리티보다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갔어야 했다고 평하셨다. 2라운드에 졌다가 이겨서 그런지 큰 산 하나를 넘은 느낌이었고 이겼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대국으로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 대국을 복원해주신 영구 형님과 리치 형님께 감사드리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3라운드 두 번째 경기는 볼짱 님과의 경기였다. 1회 수원 대회 때 패자조에서 만나 Rose 오프닝 이후 Greenberg/Dawg 오프닝으로 진행하였으며 28-36으로 패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볼짱 님의 대회 후기 등에서 Rose 오프닝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 길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Rose 오프닝은 제 1회 수원 대회 2주 전에 처음 알게 된 오프닝이다. 이전에는 Rose로 가는 길에 계속 악수를 둬서 피하다가 우연히 다시 두고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왠지 진행이 재미 있어서 계속 두고 복기를 해봤고, 은근히 최선, 차선 수를 잘 따라가는 것을 확인하였고 자신감이 조금 붙어 대회용 오프닝으로 준비하게 되었다.

볼짱 님께서 Rose로 가는 중간에 틀지 않을까 걱정하였으나 다행이 Rose 그 다음 Rose-birth와 Rose-birdie/Rose-Tamenori로 이어졌고 24수까지는 최선수로 이어졌다. 그 다음 25수 B3는 차선이었고 26수 A3로 수치는 0이 되었다. 다음 이어지는 H3는 G5와 고민하였는데 -7로 좋지 않은 선택이었으나 30수 H6로 다시 동률이 되었다. 백은 32수 E8에서 -7이 되었고 40수까지 흑의 우세로 이어지다가 41수, 43수에서 +8을 +2로 줄이는 수를 두었고 47수에서 0, 49수에서 -6으로 다시 떨어졌다. 아마 우세라고 생각하고 깊게 생각을 하지 않아 패배할 수 있는 상황까지 몰렸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43수 A2 대신 B6를 두는 건 생각을 조금만 더 해도 찾을 수 있는 수였는데 너무 금방 결정을 한 것 같다.

+8에서 -8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팽팽하게 진행됐던 대국은 백의 50수 A1으로 승기가 흑으로 기울어졌다. 블랙 라인과 B열이 모두 흑으로 바뀌면서 백이 좌변과 상변을 다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 놓치신 듯 하였다. 그 이후 돌 2개 정도 왔다갔다 하였다가 46-18로 대국이 마무리 되었다. 중반 이후 진행이 기억나지 않았는데 끝까지 대국을 복원해주신 볼짱 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이 경기가 끝나고 나는 2승, 볼짱 님은 1승 1패, 영구 님과 리치 형님은 1무 1패였다. 리치 형님과의 마지막 판에서 무승부만 나와도 우승이 확정이 되는 것이었고 내가 지고 볼짱 님이 이긴 경우 돌 개수로 우승자를 가리게 되는 상황이었다. 리치 형님과의 마지막 판에서 Rose로 가는 진행이 이어지다가 Rose로 가는 마지막 수를 비틀면서 진행이 되었고 유리한 진행이 이어지다가 중후반에 간극이 좁혀져 35-29로 이긴 경기가 되었다. 이렇게 3라운드 3승으로 수원 대회에서 우승과 입단을 동시에 이루게 되었다. 마지막 라운드에 전승을 거둔 것에는 이전 라운드에서 입단이 확정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원래 감정 기복이 크지 않으며, 기뻐도 크게 웃지 않고, 슬퍼도 크게 울지 않는 성향 때문에 왠만한 일에는 감흥이 별로 없는 스타일이지만 우승과 입단은 내 마음을 흔들만한 일이었다. 특히 오델로 관련해서는 1승 1패에 만족하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만족하는 생각에 혹시나 마음이 헤이해질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가 끝난 이후, 하루만 정말 크게 기뻐하고, 하루 이틀 정도는 오델로 생각을 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대회 전날까지만 해도 떨어진 리워 레이팅에 계속 신경쓰였는데 그런 식으로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계속 오델로와 함께할 것인데 너무 스스로를 몰아치는 것 역시 피하고 싶었다.

또한 살면서 이 정도로 크게 기쁘고 행복했던 경험 역시 오랜만이었던거 같다. 이는 초, 중, 고, 대학교 때 잠깐씩 스쳐지나가면서 삶에 녹아내렸고, 어느새 내 생활 속에 스며든 오델로라는 취미에서 결실의 꽃이 맺혀서 그런 것 같다. 생각해보면 다른 취미는 손을 놓거나 많이 소홀했던 적이 있었지만 대학 입학 이후 리버시 달인을 설치한 이후로는 꾸준히 오델로를 해 왔던거 같고 애착이 더 강한 것 같다.

3라운드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의 경기는 이미 끝나있었고 번외 경기와 돌 빨리 뒤집기 경기 이후 식사 장소로 이동한 상태였다. 빠르게 정리하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기분 같아서는 술을 진하게 한 잔 하고 싶었으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많이 오셔서 그럴 수는 없었다. 도착했을 때 그 분들은 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고 세진 님과 광욱 님을 제외한 성인들은 홀에서 가볍게 한 잔씩 하며 소회를 밝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승한 현실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었다. 식사 이후 술 한 잔 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맥도날드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이어갔고 그 자리에서 광욱 님과 한 판을 뒀으나 대회 끝난 이후 마음이 풀어져서 그런지 크게 패하였다. 이렇게 하루가 구름에 붕 뜬 느낌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하마터면 단증을 못 챙길 뻔하였으나 헤어지는 길에 도서관에서 다시 찾아 서울로 올라왔다. 다음 날이 월요일이여서 술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단골 카페로 발길을 향하였다. 사장님께 자랑을 하였으나 오델로를 잘 모르셔서 그런지 이야기가 많이 진행되지는 않았고 오늘의 대국을 정리하면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흑으로 많은 승을 거두고 Rose 오프닝에 익숙해진 것은 성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앞으로 많은 오프닝에 대한 경험을 넓히는 것이 남겨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온라인 대국에서 중반 이후 유리함을 이어가지 못하고 격차가 좁아지거나 역전당하는 상황을 줄이는 것 역시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한다. 엔딩이야 문제 어플이 있는데 중반이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일신우일신이라는 것처럼 좀 더 새로워진 오델로를 두고 싶은 것이 내 소망이다. 눈에 당장 보이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연습하고 복기하며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메워나가고 한 발자국 씩 더 나아가고 싶은 욕심은 여전하다. 12월 말의 왕중왕전에서 많은 유단자 분들과 부딪히면서 견문을 넓히고 싶고, 그 때까지 좀 더 새로워진 모습을 만드는 것이 내 희망 사항이자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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